배경
아버지 펠레우스를 따라 전장에 발을 들인 하토르는 수많은 전쟁에서 공적을 세우며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아 "무적의 전쟁꾼"으로 불린다.


첫번째 섬, 브라코이
징조
여느때처럼 전쟁을 치르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중, 하토르의 꿈에 아레스가 나타나 계시를 내렸다.

"너는 수많은 전쟁에서 적군을 무찌르며 용맹함을 증명했고, 내 이름을 걸고 전장에 나서 전쟁의 신의 위상을 드높였다. 너의 활약을 높이 사, 너를 내 영웅으로 삼고자 하니, 내가 인도하는 섬으로 가 나의 임무를 수행하거라. 이 여정이 끝나면 너는 전쟁의 신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전장에서 나의 가호와 함께하게 되리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에서 깬 하토르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새벽 안개가 걷히는 사이로 거대한 바위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레스가 말한 섬이 바로 저것이라는 직감에 자리로 향하려던 하토르의 발에 부서진 방패가 부딪혔다. 수많은 전쟁을 겪어온 하토르는 그것이 호적수의 패배를 암시하는 징조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도착
하토르의 지휘에 따라 섬에 정박하려던 배의 앞을 군선 두 척이 가로막았다. 하토르는 뱃머리로 나서 두 배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코린토스의 하토르다. 아레스 신의 부름을 받아 이 섬의 문제를 매듭지으러 왔다. 그러니 너희도 이름을 밝혀라!"

두 척의 배 중 빛나는 놋쇠로 장식된 황금색의 배에 탄 선원들이 먼저 응답했다.

"우리 아케타 선장께서 명하시니, 감히 교섭을 방해하려는 배는 바로 격침될 것이다! 조금 있으면 우리 왕께서 풀려나신다!"

뒤이어 푸른 바다뱀 같은 선체 셋이 받치는 큰 배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짓말이다! 우리 지도자 엘리세가 승리하고 너희 땅은 곧 우리 손에 들어온다!"

하토르는 잠시 생각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교섭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섬에 내려 아레스 님의 뜻을 수행하려는 것이니 방해하지 마라!"

그러자 아케타의 배가 선회하며 길을 내어주는가 싶더니, 포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하토르는 재빨리 전진 명령을 내려 두 배의 사이로 배를 몰아가려 했으나, 아케타의 선원들 역시 이미 숱한 전쟁으로 단련된 병사들이었으므로 하토르의 배를 성공적으로 포격하였다.

하토르의 배는 점점 속력을 잃고, 그 옆으로 아케타의 배가 바싹 따라 붙었다. 하토르는 당장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항복하였고, 침몰하는 배에서 강제로 내려져 아케타의 배에 포로로 붙잡혔다. 하토르는 다른 선원들과 격리되어 좁은 철창 안으로 옮겨졌다.

한동안 떠들썩한 고함소리와 줄지어 이동하는 발소리가 계속되다가 잠잠해졌다. 그렇게 소동이 마무리되고 배의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하를 이끌고 하토르의 철창 앞에 섰다.

"그대가 저 배의 선장인가? 무슨 일로 이 섬에 온 것인지 제대로 밝혀라."

"그렇다. 나는 이전에 말한대로 코린토스의 장군 하토르이며, 전쟁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중 자욱한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다. 꿈에서 아레스 신께서 내게 계시를 내리기를, 이 섬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고 그분의 영웅으로 거듭나라고 하셨다."

"세카라의 병력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배가 부서진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군.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 적국에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이라 작은 위협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네. 당신 때문에 오늘 교섭은 없던 일이 된 것 같으니 우리도 일단은 숙영지로 돌아갈 것이오. 거기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은 잡혀온 다른 선원들을 챙기도록 하시오. 이분과 선원들을 풀어주어라. 그리고 우리는 숙영지로 돌아간다."

아케타를 따라온 병사들이 철창 문을 열고 하토르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풀려난 하토르는 병사들을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고, 붙잡혔던 선원들과 재회했다.

"하토르님! 살아계셨습니까!"

"그래. 너희도 무사한가? 다치거나 물에 빠진 인원은 없나?"

"포격을 맞고 다친 인원은 있지만 여기서 응급처치는 받았습니다. 죽거나 실종된 인원은 없습니다. 다만 배가 침몰했으니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너희가 무사하다면 됐다. 배는 걱정하지 마라. 아레스 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니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곧 이들을 따라 숙영지로 가게 된다고 하니, 상황을 자세히 알아본 뒤 해결할 길을 찾아보도록 하자."

"네!!"



난관
인원을 확인하고 피해 정도를 살펴본 후, 섬에 도착할 때까지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하였다.

"너희의 왕이 적국에 포로로 잡혀 있다는 것이 사실이냐?"

선원들은 하토르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립니다.

"당신도 포로로 잡혀온 것 아니오? 우리네 일에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이오만."

하토르는 그 퉁명스러움 뒤에 숨은 두려움과 무기력함, 장군을 잃은 패잔병들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겨내는 법을 터득해 온 터였다.

"장군이 포로로 잡혀갔다한들 부하들이 용기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지기 전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왕을 안전하게 모셔올 생각을 해야지, 낙담한 채 주저앉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이냐!"

꾸짖듯 외치는 하토르의 목소리가 마치 제우스의 천둥 소리처럼 선실에 울려퍼졌다. 이 말을 들은 선원들은 하토르의 위세에 압도당한 듯 했다.

"우리도 포기하지 않았소. 다만 폐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대치 상황의 결말이 뻔히 보여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 뿐이오. 폐하를 돌려받기 위해 아케타 선장님이 교섭에 나서시기는 했지만, 폐하께서는 선장님을 믿지 않으시오. 선장님께 교섭을 맡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실 분이시지."

선원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불평섞인 수군거림을 내뱉으며 사라졌다. 그러던 사이 배는 뭍에 도착했고 하토르의 부대는 아직 경계를 완전히 풀지 않은 아케타의 병력 사이에 섞여 숙영지로 안내되었다.


"여기가 우리 숙영지요. 당신의 배에서 건진 물품은 따로 분류해 두었으니 다시 찾아 가시오. 오늘밤은 사과의 의미로 우리가 대접하겠소. 긴장을 풀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시오."

"고맙소. 당신이 아케타라는 사람이오? 아직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것 같네만."

아케타는 하토르에게 술잔을 건네며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아, 그렇지. 반갑소. 나는 프리소스의 아케타라고 하오. 지금은 폐하를 되찾기 위해 교섭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소."

"이해하오. 항상 성공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때로는 실패도 하겠지만, 훌륭한 장군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오.

아케타는 살짝 빈정이 상한 듯 술잔을 내려놓고 하토르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훌륭한 영웅이라면, 나와 판크라티온으로 겨루어 보지 않겠소? 마침 우리 병사도 지쳐 있던 참에 좋은 동기부여가 될 듯 한데..."

난관
판크라티온. 레슬링과 복싱이 결합된 피비린내 나는 운동경기이다. 전사들의 신체 능력을 겨루는 시합으로 하토르 역시 고향에서 즐겼던 운동이다.

"좋소. 지금 바로 가세."



아케타는 부하들을 이끌고 숙영지 중앙에 있는 큰 천막으로 하토르를 안내했다. 천막 안에는 경기장이 준비되어 있었고, 양쪽의 병사들이 삽시간에 경기장 주위로 둘러앉아 관중석을 빼곡히 채웠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아케타는 번뜩이는 창을 경기장 가운데에 꽂고 관중들에게 외쳤다.

"자, 이 분은 코린토스에서 오신 아레스의 용사 하토르시다! 오늘 아레스의 이름으로 그 용맹함을 보여주고자 기꺼이 판크라티온 시합에 응해주셨으니 다들 함성으로 호응해주기 바란다!"

"우와아아아!!"
"아케타! 아케타!"
"하토르! 하토르!"

경기장은 순식간에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하토르는 아레스 신에게 간단한 기도를 드린 뒤, 경기장에 들어가 아케타와 마주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잠깐의 찰나 동안 두 선수는 탐색전을 펼치다가, 아케타의 펀치로 접전이 시작되었다. 하토르는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 아케타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것을 이용해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하였다. 하지만 아케타 역시 전쟁으로 단련된 터라 쉽게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하토르의 팔을 붙잡아 반대로 힘을 실었다. 하토르는 모래밭 위로 넘어졌고, 아케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토르의 위로 올라타 얼굴에 주먹질을 갈기려 하였다. 그 순간, 하토르가 사자의 울음소리 같은 기합을 내뱉더니 아케타의 목에 팔을 걸어 단숨에 몸을 뒤집었고, 이제 하토르가 아케타의 위에 올라탄 상황이 되었다. 하토르는 아케타의 목을 놓지 않고 팔로 계속해서 압박하며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이는 경기장 바닥을 두드리는 아케타의 손바닥을 신호로 하여 하토르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하토르 장군님 만세!!"
"아레스 신께 영광을!!"

하토르는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고는 아케타를 일으켜 주었고, 두 선수는 서로를 가볍게 끌어안고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누었다.

"멋진 경기였네! 감히 자네를 포로로 잡아뒀던 내가 부끄러워지는군."

"나야말로 오랜만에 시합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네. 아까도 말했지만, 패배에서 배우는 장군이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법이지."

아케타는 이번에는 호탕하게 웃어 넘기고는 이내 결의에 찬 눈이 되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하, 그렇지. 하지만 폐하의 목숨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이 교섭에서는 패배해서는 안 되네. 그랬다가는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일단 오늘은 편히 쉬고 내일 자세한 내막을 설명해 주었으면 하네. 아레스 신께서 말씀하신 문제가 자네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도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줄 테니."

"고맙네. 일이 잘 끝난다면 배와 항해 물자는 내가 잘 구해보도록 하지. 그럼 자네의 병사들과 좋은 밤 보내시게."

그렇게 경기의 열광으로 후끈거리던 숙영지에도 깊은 밤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하토르는 여전히 전 날의 시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쳐 아케타의 천막으로 향했다.

"이제 자네의 왕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을 들어볼 수 있을까?"

"그러지.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프리소스는 메돈 왕의 통치 아래 찬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지. 하지만 이웃나라 세카라와의 분쟁만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어. 국경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 도중 측면에 매복해 있던 병력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바람에 우리는 양쪽에서 협공을 당했고, 폐하를 포로로 빼앗기고 말았네. 나도 그 전투에 지휘관으로 참여했는데, 당장 더 큰 손실을 감수할 수 없어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것을 선택했어. 그러니 폐하를 잃게 된다면 그건 내 책임이겠지..."

아케타는 한탄에 찬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과거의 실수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되네. 자네의 실수일 수도 있었겠지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거야. 그러니 지금은 전황을 분석하고 교섭에 도움이 될 만한 전략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해."

"그래, 그 말도 맞아. 이 섬은 교섭을 위한 장소로 지금 섬의 반대편에 세카라의 주둔지도 위치해 있어. 그쪽의 지도자는 엘리세 장군이며, 아마 메돈 왕께서도 감금되어 계시겠지."

"나는 외부인이니 이 교섭을 중재하러 왔다는 명분으로 삼자대면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국왕을 포로로 잡고 대치하는 상황은 저쪽에서도 그렇게 오래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

아케타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부관에게 지시하여 곧 교섭 장소로 나와달라는 전갈을 보내놓도록 하지. 자네도 최소한의 인원만 무장시켜 이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세."

하토르는 아케타와 악수를 나누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부관을 포함한 정예 병사 대여섯 명만을 추려내 상황에 대해 간단히 전달하고 아케타의 천막 앞에서 집결하였다.

아케타와 하토르가 선두에 서 프리소스와 세카라의 전력 및 대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교섭 장소에 도착하였다. 잠시 뒤 엘리세 장군도 호위 몇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엘리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하토르를 쳐다보며 호위병에게 손짓하였다. 호위병은 칼집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순식간에 고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분이 말씀하신 중재자인가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시킨 건지 저로선 알 방법이 없군요."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이 분은 아레스의 뜻에 따라 이 섬에 찾아오신 손님이니. 전쟁의 신께서 우리의 전쟁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소?"

"허, 아레스의 사자인지 웬 떠돌이 거지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니면 저를 속여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기 위해 데려온 암살자일지도 모르죠."

그 말에 대답한 것은 헤토르도 아케타도 아닌, 하늘에서 들려온 아레스의 목소리였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세카라의 엘리세야. 네가 감히 아레스의 부름을 받은 영웅을 조롱하는 것이냐?"

섬을 뒤흔드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에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은 가만히 얼어붙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토르야, 너는 이미 아케타와의 경합에서 승리함으로써 나의 총애를 샀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듯 하구나. 그러니 내가 직접 그 답을 알려주겠다. 아케타는 형편없는 패장이다. 전투에서 패했을 뿐 아니라 주군을 버리고 도망친 겁쟁이다. 그런 부끄러운 장군에게 걸맞은 벌이 주어져야 합당할 것이다."

아케타의 주먹이 수치심으로 부르르 떨렸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아레스의 말이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이었으며, 자기 스스로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패배였기 때문이다.

떨리고 있는 것은 아케타의 주먹만이 아니었다. 섬 전체가 아레스의 호령 아래 울리듯이 떨리고 있었다. 바위 절벽이 무너지고 돌덩어리들이 하나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해안으로 달아나면 살 수 있겠지만, 포로로 잡힌 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결전
"엘리세야, 감히 내 이름을 더럽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겠다. 이 자리에서 아케타를 죽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 다시 전쟁을 시작하거라. 그러면 그 피의 제물을 내가 기쁘게 받겠다."


위기
순간 엘리세의 눈이 핏빛으로 번뜩였고, 단숨에 칼을 뽑아 아케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엘리세의 대담한 기세에 아케타는 공격을 피하려 했으나, 칼날이 팔을 스쳐 자신의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욱이 자신을 패장이라 비난하는 아레스의 말에 마음이 무너져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케타, 안 돼! 어제도 내게 패배했지만 오늘 다시 일어나 이 자리에 오지 않았나! 패배를 극복하고 승리해야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하토르의 아케타가 정신을 차린 그 순간, 엘리세의 칼이 아케타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케타가 겨우 입을 벌려 하토르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나는 아무래도 승리할 수 없는 모양이야. 자네는 꼭 아레스 님의 가호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네..."

기세
그 말의 끝은 피에 잠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우르릉거리는 섬의 진동 속에 하토르는 혼란에 빠진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아레스의 뜻에 따라 도착한 섬에서 훌륭한 위업을 세울 것이라는 기백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대단원
하토르는 절망하여 부르짖었다. 이 잔혹한 운명이 아레스의 뜻이라면, 그의 용사답게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맞섬으로써 최후를 맞이하리라 다짐하였다.

"이것이 진정 당신이 원하시던 것입니까, 아레스시여! 아케타는 비록 그 한 번의 전투에서는 패했을 지라도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당신의 이름을 널리 칭송받게 하였던 훌륭한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최후를 맞는 것이, 정녕 당신의 뜻이라는 말입니까?"

비록 뛰어난 말솜씨는 아니었지만, 죽음을 앞둔 전사의 용맹함이 문장에 서려있었다. 등 뒤에서 고고히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그에게 강인하게 맞설 용기를 북돋아주는 듯 했다.

"네가 감히 나에게 맞서려 하는구나, 하토르야. 네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너의 힘만으로 이루어 진 줄 아느냐?"

"제가 어찌 그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그렇기에 이렇게 맞서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전투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 길을 아레스 님, 당신께서 이끄시는 것을 알았기에 죽음을 불사하고 전장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제가 존경하고 따랐던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다. 무릇 훌륭한 장군은 실수와 실패를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지, 한 번의 실수에 버려지는 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순간의 자존심을 굽히고 퇴각 명령을 내린 아케타의 결단은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찌 그런 용감한 장군의 목숨을 당신의 손으로 거두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이 잠잠해지고, 아레스의 목소리는 한층 진정되었다.

"네 말이 맞다, 하토르야. 네가 감히 나의 잘못을 일깨워 주는구나. 아주 용감하다. 네 말대로 아케타는 명장이었다. 숱한 전투에서 조국과 국왕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싸워왔다. 그러니 그의 영혼은 엘리시움에서 영원히 칭송받을 지어다. 그러나 세카라와 프리소스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엘리세야, 너는 돌아가 나의 명령을 받들어 전장으로 복귀하거라. 가서 나의 이름으로 승리하거라."

그렇게 섬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신의 기세에 짓눌려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병사들과, 모든 기백을 토해내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하토르, 그리고 땅을 피로 물들인 아케타의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하토르가 아케타의 시신을 수습해 숙영지로 돌아가 보니, 바윗덩어리에 깔려 죽은 희생자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부관에게 아케타를 인계하고 부하들을 추슬러 모았다. 아케타가 지휘하던 황금 갈레온 호는, 그를 결투에서 꺾은 하토르가 이어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여론에 따라 하토르는 물자를 배에 싣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아케타의 시신은 섬 꼭대기의 참나무 아래에 묻혔다.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좋은 취급은 받지 못할 것이니, 여기에 묻히는 것이 더 나을 터였다. 지진의 영향으로 참나무는 뿌리가 다 드러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병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선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케타의 검과 방패가 무덤에 장식되었다. 방패는 엘리세의 검을 채 막지 못하고, 부서져 있었다.

하토르는 아케타의 장례가 끝난 뒤 부관에게 감사를 표하고 출항하였다. 다소 찝찝한 이틀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무사히 이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의 등에는 아레스가 친히 하사한 망토가 드리워져 있었다. 섬을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참나무의 모습은 너무도 처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