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는 합의의 게임이라고 수 백번 말해봤자 애초에 서로가 플레이에 있어 기대하는 머릿 속의 그림이 다들 따로 놀면 서로 부딪히게 됨. 딱히 누군가가 마음 먹고 트롤링하려고 하면 어떤 합의라도 유명무실해지는 법이고. 하지만 일단 서로가 의도적인 트롤링을 하지 않는다고 신뢰한다고 전제하고, 그런 전제 하에 오해의 여지를 가급적 줄이고 서로 의견교환을 촉진하자는 취지 하에... '앞으로 캠페인을 어떤 식으로 플레이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획안을 같이 만들어 보는 방법이 있어.
물론 플레이하는 룰에 따라서는 굳이 이럴 필요 없을 때도 있음. D&D를 하기로 했다면 '중세 유럽 비슷하지만 괴물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주로 전투를 통해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캐릭터들이 레벨을 올리고 강력한 아이템을 얻어 강화되는 과정을 즐긴다'라는 게 이미 다들 동의가 되어 있는 거지. 반대 급부로 캐릭터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동력 같은 건 어디까지나 양념으로서 캐릭터를 보다 맛깔나게는 해 주되... 그 자체로서 이야기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거나, 개성 있고 깊이 있는 인물들 간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고. 물론 D&D로도 호러물이나 정치물, 혹은 전쟁물을 못 한다는 법도 없고, 그를 지원하는 서플도 여럿 나왔지만 D&D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소수 정예의 무장집단이 대체로 무력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며 강해지고 명성을 날리게 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며 그 본질에 충실히 플레이할 때 D&D가 가장 잘 돌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거라고 봄.
하지만 룰 내에서 자체적으로 플레이하는 방식까지 저렇게 규정되어 있는 D&D와 달리 프리폼인 겁스나 페이트의 경우에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기가 쉬움. 그럴 경우에는 같이 기획안을 짜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이 기획안이라는 건 캠페인 분위기가 어떤지, 주로 어떤 내용의 플레이를 하게 될 지에 대해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합의문 비슷한 거임. 여기에서 포인트는, '공동으로 만든다'는 거임. 보통 플레이를 이끌어 나가는 건 마스터고, 마스터가 상황을 부여하면 플레이어들이 그에 반응하는 게 일반적인 플레이 양태인데... 마스터가 혼자서 이렇고 저런 플레이를 하자고 말하고 플레이어들이 그에 동의한다고 해도 저런 양태에서는 플레이어가 주도적인 입력을 하기가 어려움.
물론 그런 플레이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재미있긴 한데... 난 기왕이면 플레이어로서도 수동적으로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리액션만 할 게 아니라(마스터로서도 모든 걸 자기가 준비하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해둬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모든 참가자들이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즐겨보고픔. 이러한 욕구를 팀원이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같이 합의문을 만들어 옆에 두고 플레이 도중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계속 참고하면 보다 방향을 잡기 쉬워질 거라고 본다. 내가 겁스를 오래 했다 보니 이런 식의 기획안에 대한 필요성을 자주 느끼기도 했고.
사실 RPG 좀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걸 만들고 있을 거임. 구체적으로 성문화해두지 않거나,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지 않을 뿐이지 개념 상으로는 머릿 속에 이런 구상을 하고 있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걸 팀원 누구나 볼 수 있게 명문화하고, 같이 첨삭할 수 있게 하자는 거.
양식과 예시는 (2)에서 풀어볼까 함. 지금은 졸려ㅇㅇ
사실 난 무슨 RPG를 하던 내가 영감을 받은 자료물을 플레이어에게 줘버림. 짤이든 영화든, 애니든, 만화든 뭐든. 그렇게 상호 이해하는걸 일치시키고 나서야 진행하지. 그게 서술이나 행동묘사도 덜하고 편하더군.
페이트 코어 룰북 안읽어봤냐? 읽어봐라. 애초에 같이 플레이 설정부터 '같이' 짜는게 기본이다.
페이트는 룰 내에서 저런거 다 지원해주는데요
ㄴ분명히 여러 번 읽었는데 내가 저 글을 썼을 때는 왜 저렇게 썼을까..............................................................
새벽에 졸려서 그랬나봉가. 본문에서 저 부분은 잘못됐다. 사과할게, 미안합니다
내가 OR에서 해보기론... 배경세계나 캠페인 전체 방향 얘길 오래 하면 참가자들이 지루해하던게 문제 ㅠㅠ 자기 캐릭터 만들고 빨리 플레이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꽤 많았음. 내 조율능력 부족일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