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서 글을 쓰자니 너무 힘들고 귀찮다. 그래서 이번 썰은 형식 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내 좆대로 씀. 출전은 BotW 1판이랑 2판, 그리고 WoR, WotA임. 흥미는 있는데 내가 뭔 헛소리하는지 못알아듣겠으면 책 봐라.


 새로 웨어울프 캠페인을 시작한 관계로 슬슬 가물가물해진 설정들을 다시 보면서 정리 중임. 당장 내가 집중해서 써먹을 소재가 펜텍스인데 심심한 관계로 펜텍스 썰 품. ㄱㄱ


 펜텍스가 뭐하는 애들인지는 WoD 조금만 해본 애들은 거의 다 알 거야. 존나게 크고 사악한 다국적 대기업임. 근데 이놈들은 단순히 돈 많고 부패하고 이기적인 새끼들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진짜로 뭔가 잘못된 놈들이다. 사실 이놈들은 직접적으로 웜의 영향 하에 놓여있는 놈들임. 근데 더 나쁜 건 이놈들 자기들이 웜의 영향 하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뱀파이어나 메이지가 배후에서 조종해서 끄나풀로 쓰이는 기업들과는 달리, 펜텍스는 그들 자신이 웜의 존재를 알고 자진해서 웜의 목적인 세계소멸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파괴의 도구라는 거지.


 뭐, 여기까진 좋아. 근데 W:tA에서 펜텍스를 써볼 생각이 있는 마스터들은 대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할 거야. 이놈들을 어떻게 쓸 거냐 하는 문제 말이야. 얘들이 에너지 개발한다고 제3세계 자원 뺏어먹고 불공정계약 맺고 중소기업들 합병시켜서 자기네 자본에 종속시키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품 만들어서 풀고 환경도 오염시키고 하여튼 개새끼들이라는 건 알겠는데... 이거 사실 실제 다국적 대기업들도 다 하는 거거든. 최근 옥시 사건만 봐도 알겠지? 이런 놈들이 나쁘다는 건 모두 인정할 거야.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런 놈들은 이 세상에 너무 많고, 사실 이런 놈들이 축적한 자본과 경제망이 이 세계를 돌리는 데다가, 우리도 그로 인한 반사적 이익이나 피해를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살고 있어. 솔직히 위에 나온 얘기 정도로는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나쁜놈"이지, "본질적으로 혐오스럽고 뒤틀린 검은 대기업"이라는 인상까지는 주기 힘든 게 사실이지. 그렇다고 펜텍스가 돈이나 벌어다가 웜의 지상무력에 물자만 대주는 애들도 아니야. 물론 프로젝트 아이네이아드 같은 것도 돌리고, 퍼스트 팀 같은 것도 양성하고, 괴랄한 괴물들 키워서 W:tA의 주인공인 웨어울프들한테 쏟아붓는 것도 사실이긴 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펜텍스가 지닌 여러 부서 중 일부의 프로젝트일 뿐이야. 펜텍스를 단지 "웜의 군수창고" 정도로만 봐도 곤란하다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는 간단하게 펜텍스가 뭐하는 놈들인가에 대해 대충 씨부릴까 함. 그런데 펜텍스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잠깐 웜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함.


 대개들 알겠지만, 만물을 소멸로 끌어당기는 파괴적인 힘인 웜은 크게 세 개의 면들을 지닌다고 간주된다. 이걸 두고 가루우들은 웜을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용에 비유하는데, 이 세 웜의 면들은 대충 삼위일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됨. 그 세 면은 각각 다음과 같다. 비스트 오브 워. 이건 물리적인 혼돈과 파괴의 웜. 가루우들이 가장 영향을 받기 쉬운 웜이다. 이터 오브 소울즈. 이건 영적인 소멸과 공허를 만들어내는 웜. 참고로 북아메리카에서 크로아탄이 자신들 부족 전체의 영혼을 희생해서 강림을 막았던 것이 이터 오브 소울즈의 머리. 마지막은 디파일러 웜. 어떻게 보면 얘가 웜의 세 성질 중에서 가장 특이한 애야. 비스트 오브 워와 이터 오브 소울즈는 각각이 물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힘이야. 파괴와 소멸은 원래 우주적인 순환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므로 어떻게 보면 웜이 본래 지니고 있던 순기능이라고 볼 수 있어(그래서 웨어울프가 아닌 몇몇 종의 변신괴물들은 웜을 "다크 파더 칼라쉬"라고 부르며 필요악으로서 존중함). 그런데 디파일러 웜은 단지 파괴가 아니야. 디파일러 웜은 오염과 부패, 타락을 관장하는 웜의 머리야. 워해머 좋아하는 애들은 대충 너글을 연상해도 됨. 사실 오늘날 가장 부각되는 오염(물리적으로든 영적으로든)의 문제는 바로 이 세 번째 머리인 디파일러 웜으로부터 나오는 거. 디파일러 웜이야 말로 가이아가 병들고 죽어가는 궁극적인 원인인 거야. 그리고 펜텍스는 바로 이 디파일러 웜의 지상직속기구라고 볼 수 있어. 주 타겟은? 당연히 지구와 인간문명임.


 그러면 얘들은 대체 무슨 방식으로 지구와 인간문명을 오염시킬까? 펜텍스는 수백 개의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계열사들을 두고 있고, 이 계열사들은 또 다시 각자 무수한 하청업체들을 두고 있어.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은 큰 그림은 보지 못한 채 위에서 내려오는 일이나 자기 이익을 쫓아서 움직이지. 문제는 대부분의 펜텍스 계열사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위에서 그린 큰 그림에 따라 조금씩 자연환경을 오염시켜서 자정능력을 상실시키고 인간문명을 퇴폐적이고 나태하게 바꿔간다는 거야.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런 정도의 문제는 실제 세상에서도 있는 것들이야. 그리고 우리들은 안락함과 쾌락을 위해서 이 정도 위험은 늘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 너네는 자연을 오염시킨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석유제품 안 쓰고 살래? 대개는 그런 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에게 위협이 될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건 알아도 당장의 이익에 비하면 먼 미래의 비가시적인 문제니까 별로 신경 안 써.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심하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고 TV는 바보상자라고 하면서도 그거 다 쓴다. 재밌으니까. 그렇게 하나둘 하자 있는 거 알면서도 쓰다보니 결국은 그런 것들 쓰는 게 사회의 프레임이 되고, 결국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때 자주 회자됐던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놈들처럼 말이야.


 하지만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식이면 솔직히 게임에서 써먹기 좆같아.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깔아주는 건 좋지만, W:tA는 그런 절망적이고 희망 없는 상황에서도 싸우는 열혈짐승새끼들의 이야기라고. "자본주의 및 물질만능주의와 싸우세요"라는 실체 없는 말은 W:tA에서 할 짓이 아니다. 그럼 W:tA에서는 기본적으로 뭘 하냐고? 가시적으로 존나 혐오스럽고 역겹고 압도적인 만악의 근원인 흉물스러운 적들이 있고, 그놈들이랑 피와 살이 튀는 혈전을 치르는 이야기를 해야지! 물론 그런 대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악의 톱니바퀴가 된 무고한 사람들도 해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야 나올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게 게임(그리고 웨어울프들)의 목표는 아니야. 저도 모르게 이용되는 무고한 이들은 PC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흑막인 적들에 대한 증오를 강화하고, 더욱 이 세계를 구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는 장치로 이용되는 거야. 그래서 편리하게도 펜텍스에는 21개의 주요 계열사 및 핵심부서들이 있다. 흑막은 이 새끼들이야. 이 새끼들이 악취나는 타락의 거미줄을 쳐서 무고한 사람들과 힘 없는 중소기업들을 옭아메고 자신들의 끄나풀로 삼는 거야. 그리고 당연히 펜텍스 중에서 가장 파워풀한 문제를 일으키고 웨어울프들과 마찰을 빚는 것도 바로 이 21개 주요 계열사와 핵심부서들이지.


 그럼 펜텍스의 21개 주요 계열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래, 조온나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이야. 유명 담배 브랜드인 서시너스, 굴지의 투자사인 콘솔리덱스 월드와이드, 펜텍스 모기업인 프리미엄 오일의 후신이자 오늘날 펜텍스의 핵심 축이기도 한 에너지 기업 엔드론, 펄프지 제조회사인 굿 하우스, 제약업계의 거인인 마가돈 등... 오늘날의 우리 생활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을 다루는 회사들이지. 그 외에도 장난감 제조사, 게임 개발사사, 주류사, 물류사, 방송사,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등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사실 펜텍스라는 건 삼성처럼 단일한 대외적 이미지를 가진 대기업이라기 보다는 여러 기업들의 연맹체에 가까워. 물론 펜텍스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각의 펜텍스 계열사 이름를 보지 펜텍스라는 이름은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 Book of the Wyrm 2판의 언급대로라면, 길에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펜텍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어보면 대개는 펜텍스가 뭔지도 모를 거라고 하지.


 이 21개 주요 계열사부터는 슬슬 비주류 계열사나 하청업체들이랑은 다르게 놀기 시작한다. 다른 계열사들이 자판기 커피라면, 21개 주요 계열사는 티오피야. 얘들부터는 쉽게 쓰고 버리는 패도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꽤 중요한 웜의 파괴/오염작전들을 계획하고 굴리는 데 쓰임. 그러니까 당연히 얘들부터는 단순히 환경오염시키고 사람들 퇴폐적으로 만드는 사업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베인(웜의 사악한 정령)들과 관계해서 자기네 사업을 돌린다. 바로 이런 베인들과의 관계가 펜텍스가 전세계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할 수 있게 한 힘이지. 애초에 펜텍스의 전신인 프리미엄 오일부터가 강력한 베인과의 계약으로 급진적인 성공을 거듭한 회사였어.


 근데 베인이 뭐 만능패도 아니고 대체 베인을 이용해서 어떻게 돈을 버냐고? 사실 까놓고 보면 엄청나게 간단하다. 베인과의 관계 덕에 펜텍스는 두 종류의 특별한 상품들을 만들 수 있어. 바로 웜-테인티드와 웜-인페스티드 상품들이지. 뭐 시발 존나 비슷해 보이는데 이게 대체 뭐냐고 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웜-테인티드는 디파일러 웜의 영향을 받은 상품이야. 이 상품은 인간 기준에서 봤을 때는 아무 하자도 없지만 영적으로 오염된 물건이야. 이걸 사용하면 고안된 방식에 따라서 점차 사용자를 오염시킨다. 구체적으로는 쉽게 병들 수도 있고, 나태해질 수도 있고, 결단력을 잃어갈 수도 있고, 폭력적이 될 수도 있음.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굉장히 은밀히, 천천히, 영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물건 자체의 하자로 인식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실은 일반적인 물건들에 비해 훨씬 중독적이지. 웜-테인티드 물건의 사용자는 영성과 의지력이 약화되므로 해당 상품에 훨씬 의존적이 되어가거든. 물론 이렇게 오염되고 나약해진 사용자는 베인들의 영향을 받거나 빙의되기 쉬워지지. 폰 겜하는 놈들 중에 "아 시발 이번 달에 돈 많이 썼는데 이번 한정 이벤트 상품 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질러서 한 달에 200씩 쓰고 통장 거덜나는 새끼들 있지? 이거 다 웜-테인티드 게임을 한 거다. 이런 게임을 하다 보니까 주변에 있는 베인들의 속삭임에 꾀여서 까짓 거 질러버리자고 지르고, 결국 자기 통장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거야. 그렇게 점점 자신을 비참한 상태로 몰고 가다가 좌절하고 인간 쓰레기가 되는 거지. 모두 인간의 의지를 나약하게 하고 쉽게 유혹에 굴복하게 만드는 펜텍스의 계획이다. 웜-테인티드 상품을 만드는 데는 테인터라는 특수한 생산설비가 필요한데, 당연히 이건 아무나 못만들어. 베인이나 BSD, 기타 웜스폰, 혹은 메이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산공정에서부터 웜의 힘을 불어넣는 인챈트 의식을 치른다고 생각하면 편함. 하지만 일단 테인터가 완성되면 가동은 쉬운 편이야. 내가 편의상 웜-테인티드를 물건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당연히 라디오나 TV 전파 등도 웜-테인티드가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이 새끼들 하자 있는 물건만 유통시키는 게 아니라, 독 전파도 쏴서 인간들의 의식세계도 건드린다는 말임.


 웜-인페스티드는 더 쩌는 상품이다. 이건 세미-페티쉬야. 즉 제한적 매직 아이템이라는 거지. 페티쉬는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물건에 정령을 깃들게 하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웜-인페스티드는 아예 상품에 베인을 밀봉해서 넣어버려. 쉽게 말하면 귀신들린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버리는 거야. 웜-테인티드 상품이 웜의 기운에 쩐 디버프 발생기라면, 웜-인페스티드는 아예 괴물을 잘 포장된 선물상자에 넣어서 줘버리는 셈이지. 웜-인페스티드 상품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거기 들어있던 베인이 스며나오고, 사용자 주위를 멤돌거나 빙의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사용자가 거의 직접적으로 웜의 지배 하에 놓이는 거지. 포모리가 되는 경우도 흔해. 물론 웜-인페스티드 상품은 웜-테인티드 상품보다 만들기가 힘들고, 극히 제한된 수량만이 제한된 시간 동안 생산되고 유통된다. 웜-인페스티드 상품은 인페스터라는 특수한 생산설비로 만드는데, 이건 테인터보다도 만들기가 어렵고 작동마저 사용횟수나 시간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음. 그래서 웜-테인티드 상품은 대량생산해서 수시로 파는 반면, 웜-인페스티드 상품은 매번 특수한 목적을 갖고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만 팔지. 아, 참고로 테인터든 인페스터든 관리/가동자는 BSD나 포모리 같은 웜의 사도임. 일반인은 이런 오염된 기계를 자주 돌리다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망가져서 죽고 말거든.


 그럼 왜 웜의 세력들은 베인을 직접 여기저기 보내서 활동하지 않고 굳이 펜텍스의 상품들을 매개로 삼느냐? 간단한 문제야. 베인만으로는 인류를 타락시키지 못해. 우선 대부분의 정령들은 물질세계에 간섭하는 데 제한이 있다. 이건 물질세계와 움브라를 나누는 건틀렛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건강한 인간들은 약한 베인에게는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기도 해.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베인은 소수 뿐인데, 그렇다고 이 얼마 안되는 애들만으로는 인류 전체를 타락으로 몰고 갈 수 없지. 탈론즈 오브 웜, 즈메이, 스톰 이터 같은 막강한 베인들이 역사적으로 몇 있어왔지만, 대개 이런 애들조차도 한 지역을 일시적으로 장악하고 황폐화시킬 수 있었을 뿐이야. 즉 베인들의 활동만으로는 인류를 타락시키는 데 늘 실패해왔어. 그래서 웜의 세력은 물질세계에서 베인을 물질화된 형태로 정제하고, 물질세계에 조직적으로 유통하고, 인간문명을 약화시켜 여러 부정적인 영향들에 쉽게 굴복하게 될 만한 환경을 조성해줄 도구가 필요했던 거야. 이 도구는 베인들과 직접 소통할 정도로 웜과 가까우면서도, 인간 사회에 깊숙히 파고들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고, 전세계 규모로 일사불란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조직됐어야 했지. 이 도구는 단지 웜의 세력이 물질세계에서 활동하기 수월하게 지원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 욕망의 취약한 틈을 파고드는 여러 유혹적인 상품들로 무장한 채 전세계로 웜의 독을 흘려보내는 매개가 되어야 했어. 그게 바로 펜텍스인 거야. 이 목적을 위해서 웜의 세력은 19세기 중반부터 펜텍스를 키워왔어. 펜텍스는 디파일러 웜의 오염을 물질세계로 매개하는 주체다.


 괴물 키우고 핵폐기물 투기하고 아마존 미는 거?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단이야. 펜텍스는 수천가지의 역겨운 작은 음모와 계획과 공작을 벌이지만, 그건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거야. 펜텍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구의 황폐화와 인류문명의 퇴락이야. 이걸 소위 오메가 플랜이라고 하지. 오메가 플랜은 3단계로 진행돼. 지금의 펜텍스는 아직 1단계를 진행 중에 있어. 얘들의 큰 그림은 대충 흔한 디스토피아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기업이 국가를 대체하고 물질적 욕망과 수요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을 만드는 거야. 그 과정에서 펜텍스의 유도 하에 인간문명은 스스로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을 파괴시키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궁지에 몰리다 이내 도태되서 소멸의 길을 걷게 돼. 그리고 인간에 의해 가이아는 극도로 병들어 황폐화되고, 그걸 되돌리거나 막을 수 있는 자들도 모두 사라지는 거지. 그럼 웜이 가이아를 겁탈하고 찢어발겨 종국에는 소멸시킨다.


 이 오메가 플랜은 펜텍스 중에서도 오직 극소수만 알고 있어. 당연히 이건 대부분의 펜텍스 간부들이 들어도 개소리거든. 아무리 펜텍스의 악당들이라고 해도 웜을 위해 기꺼이 자기존재까지 소멸시킬 놈들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오메가 플랜에 대해 아는 건 오직 중요 부서의 부서장들을 비롯한 소수 임원들 뿐이야. 심지어는 오메가 플랜에 대해 아는 놈들 중에도 2단계(펜텍스를 정점으로 하는 기업제국이 나약해진 전인류를 통제하고 지배한다)까지만 부분적으로 아는 애들도 있어. 일부는 오메가 플랜에 대해 알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고 자기만의 계획을 몰래 갖고 있기도 해. 오메가 플랜은 아무리 봐도 정신나간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메가 플랜을 전적으로 따르는 임원들은 대개 그들 자신이 웜의 사도(BSD나 포모리, 베인 등)거나, 이 계획을 충실히 따르면 자신만은 어떤 식으로든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미치광이들이지. 어쨌거나 오메가 플랜은 어디에도 서류화나 전산화되서 존재하지 않고, 오직 최고 임원 및 핵심 간부들 사이에서만 암묵적으로 공유될 따름이야.


 그래 솔직히 병신같고 허황된 얘기지. 하지만 펜텍스를 직접 움직이는 게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세 힘 중 하나인 웜이다 보니, 이 계획은 천천히, 그러나 착실히 실행되고 있어. 그래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봤을 때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얘기야. 그게 웨어울프들이 결코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펜텍스에 대적할 수 없는 이유지. 인간들에게 있어 사악한 정령은 미신일 뿐이고, 펜텍스는 그저 부패했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축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일 뿐이야. 펜텍스가 세계를 오염시켜서 죽이는 중이라고? 그냥 미친소리지. 많은 웨어울프들이 어머니 가이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촌인 인간들을 위해서도 분노하고 싸우지만, 정작 인간들은 웨어울프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미 영성이 병들어 가이아의 비명과 정령들의 절규를 들을 수 없게 된 인간들에게서 인정과 이해 따위는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웨어울프는 딜리리움이 있든 없든 혼자 싸워야만 해.


 아마 메이지 좋아하는 갤럼들 성격이면 이쯤에서 "그럼 왜 테크노크라시는 개입 안 해?"라고 할 거 같다. 의외로 이건 꽤 중요한 질문일 수 있어. 비단 테크노크라시만이 아니라 WoD에 존재하는 여러 잘난 괴물새끼들이 있는데, 얘들은 왜 펜텍스가 이렇게 오염의 손길을 뻗치는 와중에 손놓고 있냐는 건 타당한 의구심이거든. 하지만 사실 답은 간단해. 테크노크라시는 생각보다 펜텍스에 대해 잘 모른다. 펜텍스는 뱀파이어 이상급으로 자기네 정체를 숨기는 데 신경쓰는 기만의 달인들이야.


 물론 테크노크라시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거대 괴물 조직은 대부분은 펜텍스가 뭔가 뒤가 구린 놈들이라는 건 안다. 테크노크라시도 펜텍스가 초자연적 새끼들이랑 엮인 거 알고, 일부 사바트 간부들은 몰래 펜텍스랑 동맹까지 맺었음. 근데 이놈들도 펜텍스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서는 몰라. 이상한 스피릿이나 디먼이나 뱀파이어나 하여튼 괴물 새끼들이 간부 중에도 좀 있고, 아마 임원들이 얘들이랑 계약 맺어서 자기네 사업을 굴리는 거 같다는 정도는 알지. 근데 그런 기업이 전세계적으로 따지면 한두 개가 아니야. 게다가 펜텍스와 연관된 계열사와 하청업체들은 다 따지면 수천 개가 넘는다. 그 중 뭐는 괴물의 영향을 받았고 뭐는 안 받았는지, 받았다면 어느 정도로 받았는지를 다 파악하는 건 테크노크라시에게도 몹시 힘든 일이야. 그렇다 보니 대개의 경우 괴물의 영향을 받은 부분만 핀포인트로 찾아서 종양 절제하듯이 깨끗하게 잘라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펜텍스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일단 자원소모와 인사개편도 극심할 뿐더러, WoD 세계에서 펜텍스 계열사들이 전세계 경제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한 번 건드리면 전세계 경제가 존내 휘청거린다. 당장 마이크로소프트랑 록히드 마틴이랑 BMW랑 소니 같은 회사들을 동시에 여럿 흔든다고 생각해봐. 테크노크라시 타임 테이블 아작나는 건 물론이고, 걔네의 확고한 패러다임에도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생긴다. 자기네 패러다임을 견고히 해준다는 이유로 뱀파이어도 잘 안 건드리는 테크노크라시가 과연 펜텍스를 함부로 건드릴까? 절대 아니지. 테크노크라시는 펜텍스의 정확한 실체를 알기 전에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손을 댈 만한 조직이 아니야. 당장 큰 문제 안 일으키는 펜텍스의 뒤를 캐는 것보다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도 많고. 그렇다 보니 당장 무작정 조진다기 보다는 요원들을 펜텍스 총괄부서나 임원회에 꽂아넣기 위해 애쓰는데, 여기 들어가게 된 애들 치고 온전히 남는 애들은 별로 없음. 대개는 웜의 영향을 받아서 맛이 가기 시작하지.


 게다가 원래 테크노크라시가 보이드 엔지니어 제외하면 정령 방면으로 좀 후달리는 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펜텍스 배후에 있는 흑막이 너무 뜬금 없이 거대하다는 거야. 아무리 테크노크라시여도 인간 대기업들 뒤에 우주적 파괴/소멸/오염이라는 개념적인 힘이 존재하고, 이 힘이 직접적으로 인간과 손을 잡았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 그래서 테크노크라시는 신디케이트의 일부를 제외하면 펜텍스를 "실체에 비해서는 과소평가(절대 하찮게 본다는 뜻이 아님)"하고 있고, 자신들의 세계를 이루는 충실한(그리고 허용 가능한 범위 내의 하자를 안고 있는) 부품이라고 생각해. 그에 반해 펜텍스는 테크노크라시의 존재를 알고 최대한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있지. 펜텍스도 쓸 데 없이 힘을 소모해서 오메가 플랜에 차질이 생기는 걸 원치 않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서로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면? 아마 테크노크라시는 펜텍스를 용납 못할 거다. 타겟 1순위가 될 거임. 자기네 패러다임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독을 퍼뜨리던 네판디(라고 보겠지) 놈들을 가만 둘리가 없어. 하지만 싸움이 쉽지는 않을 거야. 그 이유 중 하나는 우선 펜텍스를 잘라낸다는 건 테크노크라시가 자기네가 구축한 세계의 일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므로, 스스로 출혈을 내야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야.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누가 뭐래도 펜텍스 뒤에는 웜이 있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