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진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최대한 받아들이기 


예를 들어서 "제 짐에 잉크병이 있으니까, 그걸 던져서 녀석의 얼굴에 맞출게요! 잉크가 흘러내리면 녀석은 잠시 앞을 보지 못할 거에요!" 라는 선언에,


1. "음... 먼저, 명중 굴림은 여러분의 PC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수단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이 화살을 녀석의 미간에 맞추겠다고 선언한 뒤 화살을 명중시켰어도, 그 화살은 '활을 쏘는 그 순간,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곳' 에 명중한 것입니다. 미간이 아니라요. 즉, '어디를 맞추겠다' 고 선언하시는 건 힘들겠고... 잉크 역시, 아이템 설명에 실명 상태를 부여하는 효과가 없으니 힘들겠네요."

2. "좋습니다. 잉크병은 임기응변 무기로 취급하고, 18 이상으로 명중하면 1턴간 실명을 부여하겠습니다."

둘 중 어느 게 더 나은 마스터링인가에 대한 의견임.


예전에 D&D 입문 판델버 세션을 돌렸는데, PC 중 하나(D&D 입문자였음)가 크랙마우 하이드아웃 동굴 입구에서 커다란 불을 피우겠다고 하더라.

나는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그 분은 '동굴 안에 연기가 가득 차게 만들어서 뛰쳐나온 고블린들을 안전하게 처리하려고' 라고 했음.

그 때 나는 그 선언을 받아주지 않았음. 바람이 동굴 옆쪽으로 불어서 연기가 동굴 안으로 효율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지.


위 잉크병 선언도 그랬음. 나는 늘 1번을 택하는 쪽이었고, 룰에 없는 선언은 받지 않거나 묘사만으로 처리하곤 했음.

잉크병은 녀석의 머리를 맞췄으나 녀석이 머리를 급하게 털어내 실명하지 않았던 것이고, 동굴 안에 들어찬 연기는 너무 소량이라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는 식으로.


근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문득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음.

연기가 크랙마우 동굴에 가득 차서, 고블린들이 모조리 실명 상태에 걸리거나 피가 조금 깎인 채로 동굴 밖으로 튀어나왔으면 어땠을까?

레인저가 뿌린 소금이 비홀더의 눈에 들어가, 녀석이 따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눈을 모조리 감으면 어떨까?

데이터가 창의적이고 타당한 선언보다 우선되어야 할까?


언제부턴가 숫자에 깊이 빠져들어 버린 것 같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지 못하도록 입에 매달리고, 습격해온 고블린 하나를 인질로 잡고 당장 항복하라고 소리치고, 비홀더의 눈에 바닥에서 급하게 긁어모은 흙을 뿌리는 모험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데이터에 없으니까 안 됩니다', '그냥 공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에 매몰된 것 같음.


그럴 거면 던월을 하러 가라는 말도 뜻은 이해하지만, 그냥 데이터룰 사이에 이런 창의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 있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음.

까짓거 룰에 없는 짓 좀 한다고 위코가 잡으러 오는 거 아니잖아...

너네는 어떻게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