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뻘글의 주제는 존 카멕 선생님의 명언. 그리고 뭐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음.


"Story in a game is like story in a porn movie. It's expected to be there, but its not that important." 한 번쯤은 들어봤을, 존 카멕 선생의 명?언이다. 아니 그게 ㅅㅂ 말이 되냐? 뭐 그런 반응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직장 동료가 한창 개발 중이던 둠에다가 100페이지 넘는 설정 들고 와서 넣어보자고 하니까 개까면서 한 말인 거라고 함. 아무튼 존 카멕 선생은 2011년에 레이지 낼 때 했었던 인터뷰에서는 대충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또 다르죠 ㅎㅎ"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레이지가 망한 것과는 별개로,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말임. "Historically, we were able to get on for a long time at id without addressing story specifically, because it was all about gameplay mechanics, the core experience of what you’re going through, and showing people things they’d never seen before on their systems." 그리고 난 이쪽을 더 좋아해. 개인적으로는.


응, 존 카멕 선생이 둠 개발 당시의 게임에 대해서 "게임플레이 메카닉, 플레이어가 겪는 핵심적인 경험, 사람들에게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본 적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고 평가한 말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왜 이걸 턀갤에 굳이 떠드냐?고 묻는다면 그야.... 나는 "단편플"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은 대체로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게임플레이 메카닉 - 너 주사위 안 굴림? 아, "이 룰은 그런 거 안 굴리는 룰이에요"도 게임플레이 메카닉 맞음.

플레이어가 겪는 핵심적인 경험 - 단편 플레이의 "내용 그 자체"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본 적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 - "다른 플레이와의 차별화 요소(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밖의 것들은, 이것들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생각해도 되는 부차적인 것이 되는 거임. 단편 플레이니까, 그만큼 시간 등의 자원이 부족할 거거든. 따라서 딱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해 놓고(굳이 위에 제시된 것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음), 거기에 우선 집중해서 목표치를 달성해 놓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임.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인 부분에서 뭔가 부족하니까, 플레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 하는 이 플레이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임. 그러면 셋 중에서는 뭐가 가장 중요할까?


당연히 "플레이어가 겪는 핵심적인 경험"이겠지? 게임플레이 메카닉? 어차피 자작룰 아닌 이상은 룰북의 룰 갖다 쓰니까 "일단"은 틀리지만 않으면 됨. 다른 플레이와의 차별화 요소? 플레이어들이 뭘 누구한테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로 해봤나 정확히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기준 정도 이상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이상은 당연히 동일 수준을 포함한다), 플이 끝나고 뭔가 부족하다고 까이면 그만큼 경험을 쌓은 걸로 치자고 생각하는 게 편한 부분임. 쉽게 말해서 저 둘은 "내가 일정 수준을 달성하기 용이한 기준"이 어느 정도 제시되어 있고, 기준을 넘겨 "초과 달성"을 하기에는 또 까다로운 구석이 있음. 대신 "그 기준 만큼의 달성이 안 되면" 충분히 플 끝나고 까일 수 있는 요소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는 못 하는 거지.


하지만 저 둘과 달리 "플레이어가 겪는 핵심적인 경험"은 일단 온전히 마스터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에 가깝다고 생각함. 응? 나는 그냥 공식 시나리오 따라하는데? 야 ㅅㅂ 그거도 니가 읽어보고 골랐을 시나리오잖아...... 누가 굳이 특정 시나리오 해 달라고 머리에 총이라도 들이댐? 아, 트위터 쪽 CoC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쪽에서 특정 시나리오 돌려 줄 마스터 구한다고 본 적 있어. 그러니 방금 말은 취소 ㅎㅎㅋ....


아무튼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객관적? 대중적? 기준만 맞추면 그럭저럭 플레이어들도 넘어가 줄 여지가 충분한 나머지 둘에 비해서 이게 단편플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더 많이 준다고 생각함. 솔직히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마스터가 룰도 잘 모르는 거 같고, 준비도 허술해도 플레이하면서 "내가" 재미있었다면 일단은 나쁘지 않은 플레이였던 거잖아? 그런 거야. 그리고 플레이어가 재미있었다고 느끼려면, 플레이 중의 경험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졌어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 따라서, 그런 부분을 재미있게 스스로 꾸밀 능력이 부족하다면 굳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플을 돌리기보다는, 본인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가져와서 돌리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됨. 물론 마스터 입장 말고, 플레이어 입장에서 재미있을 /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걸로.


비슷한 예로 진짜로 단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PbtA 계열에서 세션 1의 시작이 개판 5분 전 내지는 이미 개판인 상황이 추천되는 이유도, 이것저것 설명이 부족한 첫 세션에 플레이어들이 겪을 "핵심적인 경험"을 제공할 토대를 대놓고 깔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임. 이 개판을 수습 or 개판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으로 세션 1을 대강 끝내면서 그 과정에서 이번 세션의 "핵심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이후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룰이니 세션 0에서의 질문 및 답변과 이번 세션 플레이를 통해 알아낸 것들을 풀어내려가며 플레이어들이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서서히 제공해 나가면 된다 이거지.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겠다고? 스카이림 초반만 보면 주인공이 국경 넘다가 잡혀서 뒤지게 생겼는데 용이 나타나서 난리가 난 틈에 런하잖아....? 좀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인거임.


아무튼 그래서 단편 플레이는 굳이 별 쓸 데 없는 디테일적 요소에 신경 쓰기 보다는 일단은 이번 플레이 내에서 플레이어들이 겪게 될 핵심적인 경험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여 줄 수 있을까를 기본적으로 생각하면서 플레이를 구상 / 진행하는 쪽이 아무래도 모두의 정신건강에 낫다는 결론.


3줄 요약

존 카멕의 그 "게임의 스토리 어쩌고~"는 사실 "그보다 다른 본질적인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의 발언임.

당시 게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 나온 말인데, TRPG 단편 마스터링에도 통한다고 생각함.

즉, 단편 마스터링에서는 일단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충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쪽이 좋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