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하고 숨 들이키는 소리.


반파된 마을에는 침묵과 매캐한 탄내만이 감돌았다.



그 한가운데서 위저드 소녀는 다시 비명 같은 고함을 짜냈다.



조용히 서 있었다간 자신이 만든 침묵에 자신이 으깨져 죽을 것 같아서.



"기껏 목숨 걸고 지켜줬더니, 뭐? 죽은 게 내 탓이라고?"
"육십 명이 죽을 걸 일곱 명으로 줄여준 거잖아, 우리 덕분에 살아서 나불댈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런데 너희 촌놈들은 은혜도 모르고...!"



이를 악물었다. 멋대로 흘러넘치는 눈물을 억지로 안으로 삼켰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깡촌에 들어온 뒤 마음에 드는 일이 단 하나도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무지렁이들을 구하겠다고 고블린 대군과 선뜻 맞서기로 한 병신들도.



그 병신들이 혹여라도 다칠까, 사흘 내내 피가 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은 자신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는 파이터도.



장승처럼 굳게 선 채 마을 촌장의 속삭임을 듣는 팔라딘도.



...내 곁이 아닌, 마을 사람들 쪽에 서 있는 그 두 머저리의 모습도.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당신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요?"



마을 주민 한 명이 멍하니 물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였다.



품에는 숯덩이가 된...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내 아내한테 불덩이를 쏜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결국 시선을 내려버렸다.



뭐라고 반박해야 할까?



반박을 할 수는 있을까?



솔직히, 기억나는 건 많지 않았다.



덜 그린 유화처럼 혼란스럽고 흐릿한 몇몇 장면들 뿐.



누군가 '놈들이 사람들을 잡아 간다'고 외쳤던 게 기억난다.



얼핏 봐도 스무 마리는 넘는 고블린 떼거리가 기억난다.



인간 장정보다 훨씬 큰 괴물 전사들, 거대한 늑대들, 그리고 피에 젖어 시뻘겋게 물든 놈들의 무기가 기억난다.



...앞뒤 재지도 않고 그 쪽으로 돌진하던 파이터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게 기억난다.



"......."



아니, 텅 빈 공백만은 아니었다.



예전, 고블린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모험가의 시신을 본 적이 있다.



...위저드는 그 때, 그 시신을 다시 보고 있었다.


파이터의 얼굴을 한.



"...안 해."



입술이 멋대로 움직였다.



"후회 같은 거 안 해."



왜냐면 나는... 친구를 구한 거니까.



"같은 상황이 와도 쐈을 거야."



염치 없이 우리에게 목숨을 걸어달라고 부탁할 만큼 소중한 너희 가족들처럼,

나도 내 친구들이 너희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사과 따위는 바라지도 마."



"......."




모자를 꾹 눌러써서 얼굴을 가렸다. 누구라도 시선을 마주쳤다간 다리가 꺾일 것 같아서.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마을 사람들은 홍해바다처럼 좌우로 갈라서서 길을 터주었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자. 그 병신들은 분명 따라와줄 거니까. 벗어나서, 동료들에게 상황 설명을-



퍽.



그 순간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땅이 솟아올라 얼굴을 때렸다.



피 묻은 돌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얼핏 보였다.



"붙잡아! 붙잡아!"



"입을 못 쓰게 막아!"



냄새나는 헝겊이 입 안에 쑤셔박혔다.



저항할 새도 없이, 억센 두 팔이 손목을 꽉 잡아 바닥에 찍어눌렀다.



공황에 빠진 발버둥과 꽉 막힌 비명.



수인과 언령이 봉인된 위저드는 여느 마을 소녀보다 나을 게 없었다.



더운 숨결이 얼굴에 확 퍼졌다. 코앞까지 다가온 핏발 선 눈동자를 보고 소녀는 얼어붙었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 씨발년아?"



짐승의 눈동자였다.



새끼를 잃은 짐승의 눈동자.



"우리 마을에서는 너 같은 년에게 딱 한 가지 형벌만 부과해."



짐승은 이를 갈며 속삭였다.



"네 년이 일곱 명을 죽였지."



"-죽인 만큼 낳아라."



찌이익. 찍. 검은 로브가 거칠게 찢어졌다. 두 손목이 억센 밧줄이 감겨 머리 위 말뚝에 고정되었다.



아주 짧은 찰나, 팔라딘은 찢어진 로브 아래로 창백하고 가냘픈 몸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완전히 그 위를 뒤덮기 전까지.





그 날, 파이터와 팔라딘은 마을에 묵지 않고 떠났다.








텍섹각은 언제나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