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대한 열렬한 반응에 감사하다. 내 예상보다 몇 배 이상 불타오르길래 감동했다. 완결은 3탄이다. 3탄도 읽어줄 거지? 이번 글에서 소극적 플레이를 일삼는 성향과 확산이 구조적이란 것을 지적한다.


1. 의사소통의 어려움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면서 비언어적 부분에 상당히 의지한다. 표정이나 사소한 몸짓, 다른 잡담 등으로 발화의 의도를 포착한다. 그런데 ORPG에서는 철저하게 이모지나 말투만으로 그런 비언어적 표현을 포착해야 한다. 보이스 플레이어라도 어조만 추가로 알 수 있을 뿐, 그 이상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도리가 없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의사소통이 훨배 버겁다.


 다른 사람이 침묵하는 것이, 저렇게 말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애둘러서 다른 것을 나에게 요구하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당장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고, 어쩌면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면 침묵이 최선이다. 심지어 무언가 말실수라도 하면 언제 어디서 조리돌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트위터가 주류다. 멀리가지 않고 턀갤에서도 조리돌림이 메인 컨텐츠인 것을.


 다른 취미면 이런 의사소통은 부차적인 요소에 가깝지만, TRPG에선 수 시간 내내 채팅/보이스를 해야 하니 이런 의사소통의 버거움이 부각된다. 나랑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발화의 의도를 알기가 어렵고, 내 발화가 어떻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러면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낫다는 거다.


2. 니가가라 하외이

 그러나 단순히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이 바닥이 망한 게 아니다. 네캎이든 턀갤이든 공구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노라면 다들 조별과제를 하고 있다. 플레이어 각자 자신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한 결과, 다들 입꾹닫하고 플레이하는 게 정석이다. 이런 현실을 아주 단순화해서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한다.


 주) 나는 게임 이론 전공 안 했어! 나보다 공부한 턀갤럼들이 보론/반박해줘!


1) 플레이어 상호간

(1) 플레이어의 전략은 2가지다.

- 적극: 적극적으로 플레이한다/다른 PC를 캐빨한다

- 소극: 소극적으로 플레이한다/해야 하는 일만 한다/다른 PC를 캐빨하지 않는다


(2) 플레이어의 전략에 따른 비용과 보수는 아래로 책정한다.

- 적극: 비용 1, 다른 플레이어의 이익 2

- 소극: 비용 0, 다른 플레이어의 이익 0


(3) 플레이어는 2인플을 전제하고, 내 비용과 이익은 상쇄할 수 있다.


 이때, 다른 플레이어의 이익이란 그 플레이어가 세션에 대한 재미와 흥미 등을 일컫는다. 다른 플레이어가 치켜세워주고 칭찬하고 티카타카를 하는 게 재미다. 위와 같은 조건으로 플레이어가 세션에서 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략은...


  • 본인 적극, 타인 소극: 내 이익 -1, 타인 이익 2
  • 본인 적극, 타인 적극: 내 이익 1, 타인 이익 1
  • 본인 소극, 타인 적극: 내 이익 2, 타인 이익 -1
  • 본인 소극, 타인 소극: 내 이익 0, 타인 이익 0


 이로써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0 혹은 2)지만,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면 내 이익은 (-1 혹은 1)이다. 이건 지금 돌아가는 TRPG 공구판을 아주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은 훨씬 가혹하다. 2인플보다 3-4인플이 보편적인 현실에 더불어... 내가 다른 PC와 상호작용해도 그게 다른 플레이어가 좋아할까? 도리어 그 플레이어의 적의를 사거나 세션이 지연되는 등 플레이에 지장을 일으킨다면? 다른 플레이어가 소극적 플레이를 지향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다면?


 3번째 전략, 자캐딸(게임 이론에서 흔히 말하는 배신)을 배제했어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자캐딸은 되도록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1) 플레이어 전원이 자캐딸을 하면 마스터의 이익은 낮아지지만 플레이어 전원의 이익이 높아지는 최적화된 결과가 나오거나 (2) 플레이어 1명만 자캐딸을 하면 보통 다음 플레이에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다(게임 이론에서의 보복).


 이런 딜레마가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엮이면 다른 플레이어와 나누는 대화 자체가 위험이 된다. 세션 외적이나 내적으로 내가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하면 이익이 플러스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아무 것도 안 한다면 적어도 손해도 위험은 없다. 다같이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면 플이 터지지 않냐고? 이미 여럿 마스터는 거기에 적응했거나 새로운 마스터를 구하면 된다.


 대화로 취향을 알아보고 맞추면 되지 않느냐, TRPG는 상호협력을 전제로 하지 않느냐? 초면인 사람끼리 서로 취향을 알아보고, 협력하기 위한 소통 그 자체가 비용이고 위험이다. 취미생활에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도 세션이 재밌다는 보장이 없는데, 왜 대화를 해야 하는가? 그냥 입 다물고 마스터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어느 플에서건 일단 평타는 친다.


2) 플레이어 - 마스터 간

(1) 플레이어의 전략은 2가지다.

- 협조: 마스터에 협조한다(마스터에게 집중하고 맞장구치는 RP, 기타 잡담 등)

- 비협조: 마스터에 협조하지 않는다


(2) 플레이어의 전략에 따른 비용과 보수는 아래로 책정한다.

- 협조: 자신의 비용 1

- 비협조: 자신의 비용 0


(3) 기타 규칙은 아래와 같다.

- 협조한 플레이어는 상호간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

- 전원 비협조면 마스터가 팀이나 캠페인을 터뜨릴 확률이 높아진다(반드시 터뜨리지 않는다).


 세션은 조별과제다. 마스터가 팀장이다. 무임승차를 한다면 비용 0이고, 결과 0 이상(플이 유지된다)이다. 하지만 협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효용이 있는지 미지수다(모든 플이 내 시간과 노력 이상으로 재밌을지 모른다). 나를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가 마스터를 돕지 않는다면 마스터의 피로감은 심해지고, 팀이나 캠페인이 터질 위험이 높아진다. 하지만 각 플레이어의 최선의 전략은 비협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러면 누가 마스터를 하는데? 마스터는 어떤 사람이 하는가? 세션 자체에 큰 재미를 느끼는, 가장 세션에 대한 수요가 큰 사람이 마스터를 하면 저런 딜레마가 해결된다. 그렇다. 마스터는 가장 플이 고픈 사람이 한다. 때때로 시나리오 창작이나 다른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유별난 사람이 마스터를 한다.


3. 적극적 플레이/플레이어의 도태

 플레이어의 습성이 책임 없는 쾌락이고, 그게 소극적 플레이로 연결되면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준다. 처음에 적극적으로 다른 PC와 NPC에게 관심을 갖고, 상호작용하려고 했던 플레이어도 내가 뭔가 하려고 해도 다른 플레이어의 반응에 손해본다(재미없다)고 학습한다. 그 플레이어도 소극적 플레이를 주류 전략으로 선택하거나 아예 TRPG를 접는다.


 이렇게 우리나라 TRPG는 구조적으로 적극적 플레이/플레이어를 도태시킨다. 소극적 플레이가 주요 전략인 플레이어만 계속해서 플레이를 하고, 숫자를 늘려나간다. 심지어 소극적 플레이를 장르적으로 용인하는 규칙이 있으니 바로 COC다. 책임 없는 쾌락을 바라는 플레이어의 완벽한 무대인 COC가 나오면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붕괴시켰다, 다음 글에서 TRPG 과반수(세션/플레이어와 마스터 수 등, 아마도 매출까지) 비중을 차지한 COC가 어떻게 시장을 붕괴시켰는지 마저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