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릴레이 소설 쓰기" 해본 딸피들 있음??
내 앞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가 쓸 내용도 바뀌게 됨..
앞사람의 소설을 예상할 수도 없고... 내가 쓸 내용을 미리 준비할 수도 없음..
앞사람이 쓴 소설을 읽고, 그 내용에 맞춰서 소설을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임.

롤플레잉 게임도 그것과 같아서.. 내 PC의 앞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예상할 수 없음.

"저희 위자드가 쓴 화염 주문으로 오우거가 당황한 틈을 타 공격합니다. 레인저가 소환한 까마귀가 오우거의 오른 눈을 공격해 실명을 걸었으니, 오른쪽에서 접근해 목을 향해 검을 휘두릅니다."


오우거를 노리는 위저드의 화염주문이 빗나갈 수도 있고,
레인저의 까마귀가 오우거를 실명시키지 못할 수도 있음.
내 턴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마스터가 준비해두었던 강제이벤트가 발생해서 오우거가 실명했던 눈을 회복할 수도 있음.

전혀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준비를 할 수도 없고, 미리 생각을 하고 있거나 메모장에 적어둘 수도 없음.
내 PC가 오우거를 어떻게 죽였는지 묘사하려면.. "딱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애드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거임.




근데 이 애드립이라는 것도... "딱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라는게 중요한 점임..

위에서 내가 예시로 든 "릴레이 소설 쓰기"도.. 하다못해 소설을 쓰기전에 10분 정도 천천히 생각을 좀 해보고나서 써도 됨.
근데 TR이나 OR에서 자기 PC가 적을 죽이는 묘사를 멋지게 하겠다고 10분 정도 생각한다..?? 그건 존나 빌런새끼지 ㅋㅋㅋㅋㅋ

결국 마스터가 "어떻게 막타를 때리시나요?"라고 질문하는 딱 그 순간에 머릿속에 좋은 애드립이 안 떠오르면....???

"오우거의 머리를 칼로 베어냅니다." 정도밖에 할 수 없는거지 뭐 ㅋㅋㅋㅋ




내가 2주에 한번씩 열리는 장기세션 TR에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음.
플레이를 하면서 녹음을 하고.. 그 녹음된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비스무레한 걸 써서 팀원들끼리 돌려보기도 하고 그러고 있음.

소설 비스무레한 걸 쓰고 있으면... 아 여기서 이렇게 묘사를 하면 더 멋지겠다~ 아 여기서 이런 서사를 이어가면 더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나기도 함.
그래서 쓰다보면... 내 마음대로 팀원들의 대사나 묘사에 약간씩의 MSG와 양념을 추가하기도 함..

근데 막상 플레이를 할때는 그게 잘 생각나지 않을때가 많거든 ㅋㅋㅋㅋ

그렇기 때문에 소설 비스무레한 것의 내용을 읽어보면......

<조금 전까지 지면 위에서 서있던 PC는 재빠르게 뛰어올라, 마치 창 처럼 들고 있던 길고 긴 칼을 뽑아든다. "기술 이름 어쩌고저쩌고!!!!" PC의 검이 청명하고도 맑은 곡선을 허공에 그리며 적NPC의 한쪽 날개를 향해 휘둘러졌다. 날개의 어깨죽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날카롭게 베어낸 PC가 휘리릭 몸을 회전하며 바닥에 착지하고, 날개에 절상을 입은 적NPC는 바닥을 뒹군다.>


....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플레이 현장에서 내가 뭐라고 말했나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어쩌고저쩌고"라는 기술을 써서 적NPC의 날개를 베었습니다>

.......라고 하는 걸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함 ㅋㅋ

결국 내가 <기술을 써서 적NPC의 날개를 베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내가 묘사를 대충하고 싶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기 턴할때 딴짓하고 있어서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도 아니라....

"딱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애드립" 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이런 간극이 생길수밖에 없다는 거임...






그래서 결론은... "죽음을 묘사하는 법" 그거 존나 어렵다곸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