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갤럼이 trpg의 매력은 자유도에 있다고 말을 해 줬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임.

내 심상에서 trpg의 중심 가지는 '난관의 자유로운 해결' 이고, 해결까지 도착하는 길은 다종다양하겠지만 그 중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혹은 그렇다고 여기는) 길, '창의적인 선언'에 조금 더 눈길이 가기 마련임.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제시하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내 PC.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음?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너, 즉 GM은 창의적인 선언을 하는 쪽이 아니라 받아주는 쪽이라는 거임.

어떤 게임에서든 간에 -심지어 TRPG조차- 룰이란 것이 그렇듯이, 플레이어들은 판단자에게 룰에 기반한 공정함을 바라고 있음.

창의적인 선언을 처리하는 너는 공정해야 하고, 최소한 그렇게 보여야 함. 오늘은 그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음.






1. 기회의 공정.

공정을 보장하는 방법 중 가장 쉽고 만족스러운 것을 따지자면 '기회의 공정' 을 빼놓을 수가 없음.

창의적인 선언의 밸런스, 스포트라이트 배분, 기타 귀찮은 것들의 고려 없이, 그저 모두에게 같은 입장권 한 장씩을 쥐어주면 되기 때문임.


기회의 공정을 고려할 때 해야 할 일은 간단함. 세션 시작 전에(가능하면 면접 당시에), 모두에게 '일부 창의적 선언에 한해 어느 정도의 즉석 룰 개변을 허용' 이라고 공지하면 되기 때문임.


여기서 주의점은, 공지할 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세션이 시작되기 전의 시점에서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거임.

모두에게 야구장 티켓을 한 장씩 쥐어줘도, 누군가는 그냥 집 앞에 야구장 대신 도서관이 있기를 바랄 수도 있음. 


일단 한 번 물어나 보고, 안 되면 깔끔하게 포기하셈. 싫어하는 사람은 보통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는 경우가 잦음.






2. 횟수의 공정.

창의적인 선언이 빛나는 길이긴 하지만, 그 이유는 오로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길' 이라는 부분에 있음.

전개에 신선함을 더해 주고, 때로는 극적인 카타르시스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만약 자주 사용된다면... 그건 그냥 룰 오용일 뿐임.


'저새끼 또 그거 하겠네...' 라고 생각되는 창의적이었던 선언에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음.

그냥 그때 봤던 이득을 재현하고 싶은 pl과, '그때 해 주고 지금 안 해 주면 말 나오겠지' 라며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GM이 있을 뿐임.



이를 위해, 애초에 창의적인 선언을 받아들일 때 '후... 이번만입니다.' 하고 전제를 깔아둔 채 가는 게 좋음.

애초에 창의적인 선언으로 재미보는 것도 한두 번이 한계일 뿐더러, pl은 한 번이라도 창의적인 선언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의의를 둘 거임.


근데 그때 되는데 지금은 왜 안 돼요? 라는 질문에는 그냥 로어적으로 꾸며내든가 직설적으로 게임적 이유라고 하든가 어떤 방식으로든 안 된다고 못을 박으셈.

'색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주문의 여파로 요동친 위브는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주문을 완전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하면 GM의 방대한 설정딸을 듣기 싫은 pl은 대충 알았다고 해 줄 거임. 






3. 비용의 공정.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짜로' 데이터적 이점을 쥐어주지 마셈.

주문이라면 상위 슬롯이라도 하나 소모하게 하고, 정 뭐가 없으면 하다못해 고양감이라도 소모하게 하셈.


뭐 비전투 상황에서 lay of frost로 문에 뿌린 물을 얼려 문을 잠글게요? 상관없음.

근데 전투 상황에서 공짜로 딱 5ft 더 이동? 절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안 됨.

공정함에 누구 한 명만 누리는 공짜는 없음. 어떤 방식이든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2번에 의거해 두 번 다시는 동일하게 하지 못한다고 못박으셈.


창의적인 선언에 비례한, 완벽하게 적절한 비용이 중요한 게 아님. 명시되지 않은 데이터적 이득을 추가로 보기 위해 자원을 소모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임.

너가 적어도 공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표시를 해 주면 됨. 그 정도가 최소한도의 납득선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4. 마치며.

솔직히 창의적인 선언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누군가 시도한 것들임. 또 그중 대부분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가능/불가능의 결론이 나왔을 것이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RP 대신 해 주는 거 아니잖음? PL 자신에게 처음이라면 그걸로 충분할 거고, 또 그걸 시도해 성공시키는 데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거임.

그리고, 너는 GM임. PL이 만족한다는데, 더 바랄 게 있을까?


오늘 말하고자 했던 건 복잡한 조건을 통한 창의적 선언의 자제가 아님.

그냥, 이런 복잡한 조건을 거치고도 창의적 선언이란 TRPG에서 충분히 해 볼 만한 것이며, GM이 해야 할 것은 창의적 선언을 막는 것이 아닌, PL 하나의 만족에서 모두의 만족이 되도록 조정하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음.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