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그림자가 영주의 도시를 향한 육로를 걷고 있었다.

선두에 선 자는 실용주의의 화신 '메호라크'였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철퇴를 어깨에 멘 떡대 '볼그'가 멍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볼그는 세상의 모든 은유와 관용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내였다.
그의 세계에서 단어는 오직 하나의 뜻만을 가졌다.

그 뒤로 마법사 '파엘란'이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살폈고,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야만전사 '그락'이 묵묵히 행렬의 끝을 지켰다.

고용주가 "머리는 나쁘지만 힘은 좋다"며 붙여준 볼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락은,
그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어이, 거기 떡대. 신장은 몇인가?"

볼그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두 개요. 왼쪽 하나, 오른쪽 하나. 둘 다 아주 튼튼합니다."

그락의 미간이 깊게 구겨졌다. 이 자는 '신장(腎臟)'과 '신장(身長)'을 구분하지 못하는군.
그는 경멸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메호라크는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써먹기 좋은 멍청이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바로 그때, 서쪽 언덕에서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복면을 쓴 도적들이 길을 막아섰다.

파엘란은 겁에 질려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고, 그락은 거대한 쌍날도끼를 고쳐 쥐었다.
볼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쳤다.

"저길 봐! '쇠판고블린(홉고블린)'은 아니고… '망태곰(버그베어)'도 아닌데… 그냥 사람인가?"

메호라크는 그의 헛소리를 무시했다.
그는 이미 상황을 '제거해야 할 장애물의 등장'으로 규정하고,
화약 병과 불화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폭음과 비명, 피 냄새가 뒤섞인 지옥도가 펼쳐졌다.
살아남은 도적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자, 볼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함성을 지르며 철퇴로
그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그는 전투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파괴 기계와 같았다.

싸움이 끝나고, 그락은 메호라크가 자신의 삼촌, '시라스-루캇'의 시신에서
아무렇지 않게 돈주머니를 빼앗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불길이 타올랐다.

혈족을 욕보이는 행위는 그의 부족에서 죽음으로 다스리는 가장 큰 죄악이었다.

볼그는 그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은 사람은 돈이 필요 없으니, 산 사람이 쓰는 게 맞지요?"

그 순진한 악의에 그락은 할 말을 잃었다.
이 파티에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불편한 여정 끝에, 그들은 마침내 전설 속 'TRPG 갤러리'라 불리는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 썩은 물과 이끼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과 마주쳤다.

복도 저편에서 땅을 울리며 나타난 거대한 녹색 형체. 트롤이었다.

볼그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와! 저건 '덩치 큰 초록 놈'이다! '알깐쟁이(해츨링)'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크군요!"

하지만 파엘란의 이성은 그 순간 완전히 증발했다.

"꺄-----------------악!!!!!!!!!!!!!! 트롤이다!!!!!!!!!!!!!!"

그는 완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그의 눈앞에는 과거의 악몽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 내 캐릭터는 트롤 공포증이 있단 말이다...!"

그 광경을 본 그락의 인내심도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는 용서할 수 없는 두 개의 존재가 있었다.
혈족을 욕보인 비정한 미치광이, 그리고 적 앞에서 무기를 버린 역겨운 겁쟁이.

"내 캐릭터는 말이지..."

그락은 으르렁거리며 파엘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볼그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이, 그락. 왜 친구를 때리려고 합니까? '덩치 큰 초록 놈'은 저기 있는데."

볼그의 단순한 뇌는 팀킬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은 명백히 저쪽에 있었다.

"비켜라, 이 멍청한 놈! 겁쟁이는 적보다 먼저 처리해야 한다!"

그락이 볼그를 밀치고 파엘란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꽂았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파엘란의 비명은 영원히 멎었다.

이 아수라장을 지켜보던 메호라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했다.
그는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파엘란의 마법 완드를 줍고,
그의 시신에서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빼냈다.

그락이 피 묻은 도끼를 들고 포효하는 트롤에게 몸을 돌리는 사이,
볼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쓰러진 파엘란과 그락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덩치 큰 초록 놈'이랑 싸우는 겁니까?"

볼그가 그락에게 물었다. 바로 그 순간, 메호라크는 소리 없이 동굴 입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쓸모를 다한 도구들, 그리고 새로운 전리품. 그의 계산은 이미 끝났다.
그의 손에는 마법 완드와 두둑한 금화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등 뒤에서 트롤의 포효와 그락의 함성, 그리고 철퇴가 바위를 부수는 둔탁한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메호라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동굴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키득거리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히힉! 내 갤러리에서 아주 재밌는 연극이 벌어지는군!"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낡은 가죽옷 위에 온갖 실험 도구를 주렁주렁 매단 '쇠판고블린(홉고블린)'이었다.
그의 번들거리는 눈은 고글 너머에서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TRPG 갤러' 라고 칭했다.

"하지만 엔딩이 너무 뻔하잖아? 새로운 설정, 새로운 가능성을 추가해 줘야지!"

'TRPG 갤러'는 품속에서 기묘한 분홍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모두의 발치에 힘껏 던졌다.
유리병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자, 달콤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나는 분홍빛 연기가
동굴 전체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연기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

트롤을 향해 돌진하던 그락의 우렁찬 전투 함성이 갑자기 가느다란 비명으로 바뀌었다.
철퇴를 휘두르려던 볼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동굴을 빠져나가려던 메호라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끄...으으..."

온몸의 뼈가 재배열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과 함께, 그들의 몸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어깨가 좁아졌으며, 목소리는 한 톤 높아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락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놀라 무심코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강철 같던 갑옷 아래, 이전에는 없던 부드럽고 풍만한 감촉이 느껴졌다.

"꺄악-----------------?!"

북방의 야만전사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믿을 수 없는 비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며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넘어졌던 메호라크도 몸을 일으키려다 이상을 느꼈다.
셔츠 앞섶이 답답하게 터질 듯했다. 그 역시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고,
그 크기와 부드러움에 평생 처음으로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당황의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이건... 내 신장은 여전히 두 개인데, 다른 게 두 개 더 생겼습니다!"

볼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신의 커다란 두 가슴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진짜 기괴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분홍빛 연기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시신들에게도 스며들었다.
그락의 도끼에 머리가 깨진 파엘란의 시신이 경련하듯 상반신을 일으켰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보던 그는, 본능처럼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고는 소리 없는 비명("꺄악-!")을 지르는 듯 입을 뻐끔거리더니,
다시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메호라크의 화약에 타 죽은 삼촌, 시라스-루캇의 시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까맣게 그을린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일어나, 여성적으로 변한 자신의 몸,
특히 풍만해진 가슴을 더듬어 보고는 경악하며 다시 쓰러졌다.

동굴 안은 완벽한 침묵에 휩싸였다. 갓 여자로 변한 세 명의 모험가와 이제는 여자의 시신이 된 두 구의 시체를 앞에 두고,
각자 자신의 가슴 크기에 놀라워하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TRPG 갤러'는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