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연극의 성격과 일치한다는 느낌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화장실이 나오고 거기에 들어가야 화장실이라고 생각함
근데 연극에서는 줄긋고 거기가 화장실이라고 하면 화장실이 됨
이는 연극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지만 동시에 관객과 암묵적인 합의를 하는 거임
trpg도 그런 부분에서는 같음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지만, 토큰을 놓으면 드래곤이라 보기로 합의함
이는 환상임
그리고 문학 역시 이러한 환상에서 탄생함
흔히 극적이라고들 하잖음
극이란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생김
환상이지
정확히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데 어떠한 사유로 인해서 거기에 닿을 수 없을 때
이때 환상이 생겨나고 극이 시작됨
그래서 trpg는 먼치킨 스토리가 되기 어렵지 않나 싶음
환상에서 비롯한 결핍이 중심이기 때문에
TRPG에 뭔가 환상을 품고 있으신 듯하지만 개병신같은 연극을 짜는 각본가의 숫자만큼 좆병신같은 TRPG 스토리를 짜는 마스터의 숫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쓰레기 같은 작품이 있다고 소설이 쓰레기가 되지 않는 거처럼 쓰레기 같은 마스터가 있다고 해서 trpg가 쓰레기가 되진 않지 이상한 애들 많긴해
갠적으로는 스토리를 바라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함 스토리는 경험이 아니라 소설의 그것을 상정하고 쓰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이런 경우 좋은 각본이 되기 어렵지 레일로드도 사실 선택지에 따른 변화가 꽤 있는 편이니까 trpg는 사람이 직접 플레이해서 경험을 얻는 유희임 선택지를 통해서 어떤 것을 체험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인데 그 선택지를 비우거나, 결과가 의미없다면 선택 역시 가벼워질수 밖에
선택이란거 병신아님? 어차피 어떤 문을 열건 그 결과는 마스터가 정할수 있잖음 이런 말을 할수도 있는데 언제 문을 열자고 할지는 플레이어의 권한이지? 마스터가 문 너머의 괴물을 준비한다면,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문까지 끌고가니까 이런 특성과 합의를 고려해야 좋은 각본이 나온다고 생각함 결국 각본도 각본이지만 사람이 중요한 거지
퀄리티가 낮다고 매체의 성격이 바뀌는건 아님.
연극적 부분에선 동의함 Trpg는 연극의 4요소인 배우, 무대, 관객, 희곡에서 배우와 관객이 합쳐졌고 희곡은 가이드라인 정도로 희미한 극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 그런데 먼치킨 스토리가 어려운 이유는 결핍보다는 상호간의 존중 때문이라고 생각함 마스터가 주는 난관 다 때려부수면 마스터는 허탈하니까
지나가다가 이 댓글보고 나도 동의함. 먼치킨이 안 생기는 이유는 "환상에 결핍이 어쩌고"가 아니라.. 그냥 상호존중이라고 생각함... 누군가가 먼치킨이 되면, 다른 누군가는 (마스터든, 다른 플레이어든) 쩌리가 될 수밖에 없음. GMPC라고 하는 메리수 먼치킨이 설치는 세션에 참가해본적도 있고, 마스터가 편애하는 어느 PC가 혼자만 먼치킨급 사기템을 가진 세션에 참가해본적도 있는데... 마스터가 원하는 스토리는 잘 뽑혔는지 모르겠지만.. 저 먼치킨을 위한 병풍 쩌리가 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음
나도 마지막 빼고는 동의함. 다만 나는 먼치킨 안되는 이유를 그런 이야기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임. 사람의 욕망은 끝이없어서 '도파민'만 들어오면 그것을 디폴트로 생각 하게 된다고 봄. 그러면 결국 더 많은 '도파민'을 추구하게 되는 데 이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함. 그래서 먼치킨 짓만 으로 얻을수있는 재미에는 한계가 있다고 봄.
@ㅇㅇ(118.235) 결론은 고통과 도파민을 적절히 섞어 줘야 오래가고, 그건 먼치킨으로는 힘들다.
t"rp"g
초기 tsr 서적들 보면 당시 작가들이 의도한 이건 무슨 지식과 지혜와 상상력을 강화시켜주는 주술적 의례 같은 거였던듯 - dc App
마르시, 빨리 나가. 넌 죽었잖아! 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