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도 쨍은 존나게 철학적인 겜이고 그런 걸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음


내가 처음 접했던 건 VtM이었고,

'이걸로 대체 뭔 게임을 어떻게 하는 거야?' 할 때 목격한 게 뱀프 극단이라고 라이브액션으로 노는 거였는데,

당연히 라이브액션에서 할 수 있는 게 말로 주절주절하는 것뿐이지 뭔 활극을 하겠음?


쨍 국내에 소개하다시피 했던 양반들도 거기서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VtM은 그런 겜인 줄 알았지



그리고 그런 인식을 가지고 실제로 플레이에 도전해 봤더니

정치적 다툼과 정신적 고뇌와 철학적 명제에 대한 논의로 가득한 게임… 당연히 안 돌아감


그래서 쨍에 대해 이딴 겜 대체 어떻게 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은 상관없는갑다 하고 있다가

생각이 바뀐 계기가 셋 있는데


하나는 워울프

얘들도 당연히 복잡한 고뇌가 있고 어쩌고 하지만

아무튼 적당히 답이 안 나오는 순간이 되면 레이지 터트리고 감정 폭발시키면 알아서 끝이 남

내가 죽든 니가 죽든 우리가 다 죽든 아무튼 그럴싸하게 끝이 남

심지어 현대인으로서 애매한 감상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환경 문제도 와일드 웨스트 돌리면 신경 쓸 거 없음

모든 사람에게 강력 추천함 ㅇㅇ



하나는 메이지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고자 만드는 주문 연구하고 있었음

승천이 어쩌고 패러다임이 어쩌고 알 게 뭐야 고자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마지막 하나가 VtM 블러드라인인데,

VtM 게임이라길래 뭐 존나게 심오하고 철학적인 얘기하는 겜이려니 했는데

어쨌든 기본은 '저기 가서 오크 대가리 깨고 와라' 하는 게임이랑 다른 게 하나도 없는거임


처음엔 당황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까 너무 당연한 거임

RPG 하는 계층이란 게 뻔한데 그 사람들이 그 심오하고 철학적인 게임을 하는 숫자가 얼마나 되겠음

상당수는 D&D에서 '히히 까고 부순다' 하던 사람들일 거고,

거창하고 대단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이라도 자기들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즐기겠지


물론 아마 그 게임이 원작이 가진 주제와 매력 조금도 살리지 못했다 이런 사람도 있겠지만

VtM이 그 게임에서처럼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의외였거든


그러고 나서 쨍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좀 많이 줄었는데,

결국 게임의 시스템과 설정은 게임을 하기 위한 것이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는 거라는 걸 인식한 게 컸음




그런 다음에 짧게나마 VtM을 다시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플레이어 한 명만 데리고 하니까 내가 예전에 VtM 처음 할 때 생각했던

정치적 다툼과 정신적 고뇌와 철학적 명제에 대한 논의? 이런 거 하는데 별로 지장이 없더라고


주역이 되는 인물이 소수라면 각 개인의 드라마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인물의 내면이 부각되고 세계에 대한 해석을 논할 여지가 많아지고,

주역이 되는 인물이 다수라면 각 개인의 드라마보다는 집단으로서의 이야기가 중시되니까

상대적으로 인물의 내적 요소는 좀 덜 드러나고 활극성이 강조되는 것뿐이란 걸 좀 늦게 깨달은 거임


내가 초반에 했던 실수는 다인 플레이에서 1인 플레이 시에나 가능할 것들을 억지로 욱여넣어야 한다고 느꼈던 거고

(물론 지금 한다고 해도 PC 4~5명 데리고 사이코드라마 찍으면서 진행할 자신은 없음)


대충 이런 체험들 덕분에 여러모로 쨍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음




물론 설정과는 별개로 룰이 애매모호해서 취향이 아닌 데다가,

당시엔 영어를 정말 못 했기 때문에 그 설정조차 깊게 판 적도 없고,

어지간한 RPG와는 압도적으로 비율 차이가 나는 '제 캐릭터는 안 그런데요…'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안 하게 되긴 했지만


쨍=철학적이어야 한다? 이런 인상을 갖고 있어서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RPG를 할 때 '다른' 인물들 여럿을 한데 섞어 놓으면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겨나는 법이고,

쨍은 독특한 세계 설정으로 그런 차이가 생겨날 요소를 유난히 많이 만들어 놓은 게임들이며,

개인의 드라마가 약해지고 활극성이 강조된다고 해서 작중 세계가 가진 개성이 소멸하느냐면 그렇진 않거든

그 세계에서 그 세계의 주민답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세계의 특징은 강조되기 마련임


뭐 그럼 된 거 아님?


어차피 진짜 철학적 논의 한다고 해 봤자 선현들이 다 해 놓은 고민보다 신선하고 대단한 결론을 낼 것도 아니고,

그냥 식상하고 뻔한 해답이나 반복할 게 뻔한데 철학적이란 말에 집착할 것도 쫄 것도 없다고 생각함




결론:

쫄지 말고 걍 해도 된다고 본다

이게 쨍다운 거 맞나 이런 고민할 것도 없다

근데 룰 특성상 '내 캐릭터는 원래 이래서'가 존나게 많이 나오니까 그건 조심해라




결론2:

RPG 기반으로 나온 CRPG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겜이라고 하면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를 얘기하는데,

사실은 쨍보다 댄디가 더 철학적인 겜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