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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죽을 만큼 힘든 시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걸러 화내고 미안해하고 웃고 울고 세상이 아름답다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이 세상이 싫어서 죽고 싶다고도 했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인 제가 다 위태롭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 불안정하게 휘청거렸죠.

가까운 사람의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주는 것뿐이었죠. 해결책을 제시해주기엔 가진 게 쥐뿔도 없었고, 그렇다고 정신을 치유해주기엔 아는 것 배운것이 쥐뿔도 없었거든요. 그냥 옆에서 욕하는 날은 같이 욕해주고, 신나는 날은 같이 신나주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죠.

특정 상황에서는 만병통치약처럼 작용하는 시간에 의해 조금씩 정신적 스트레스가 완화되어가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제게 이렇게 이야기해왔습니다.

"내가 너랑 한두 해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짜증 나는 거랑 비슷하게 짜증 날 만한 상황을 너도 수도 없이 겪은 걸 옆에서 봤는데, 이상하게 넌 항상 괜찮아 보인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냥 남자라 그런가?"


1. 

사람마다 육체적인 능력이 다르고, 그로 인해 '맷집'이 다르다는 걸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길을 걷다가 똑같이 넘어져도 평소 운동을 거세게 하던 종국이는 멀쩡하게 일어나서 가던 길을 걸어가고, 윤석이는 뼈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개인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서 버틸 수 있는 내구도 역시 전부 다릅니다. 윤석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듯이, 조금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줘도 매우 큰 상처를 입는 타입의 사람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내가 평소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괜찮은 행위가, 누군가에겐 이미 역치를 한참 넘어선, 살을 에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가해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발화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야 넌 고작 그걸 가지고 뭘 그렇게 애처럼 질질 짜냐?'
'그럼 이제부터는 종석이가 걔들을 왕따시켜보는건 어떨까?'
'한마디 한 거 가지고 더럽게 뭐라 그러네! 그까짓거 뭐라고 난 더한 소리 백번도 더 들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한 법. 저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널리고 널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맷집도 개인마다 다르다는 아주 간단한 상식조차 몰라서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걸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UFC나 프라이드, K-1 같은 거 열심히 보신 분들 중에 토토는 몰라도 가까운 사람과 내기조차 한 번도 안 해보신 분들은 드물 거에요. 사람과 사람의 육체적 능력을 가장 원초적으로 겨루는 스포츠인 투기 종목에서, 누가 이길지 예측한다는 것은 곧 두 사람의 육체적 능력을 예측한다는 뜻이죠. 그 예측의 근거는 크게 분류하면 직접적 변수에 의한 근거와 간접적 변수에 의한 근거로 나뉩니다.

직접적 근거는 말 그대로 싸움 결과에 직접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이야기합니다.

[신장 / 체중 / 싸움 실력 / 정신력 / 골격의 단단함 / 근육량] 등이 직접적 변수가 되겠죠

간접적 근거는 저런 직접적 근거에 특정한 경향성을 주는 변수들을 이야기합니다.

[나이 / 성별 / 경력 / 전적] 등이 간접적 변수가 되겠죠.


3. 

저 위에서 말한 '야 고작 뭘 그걸 가지고 질질 짜냐' 류의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이 논리를 정신의 영역에도 적용한 사례들입니다. 육체적 강인함을 재단하듯이 상대의 정신적 강인함을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내가 뒤에서 등을 팡 하고 때려도 아빠는 다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아빠의 등을 때리는 어린 딸마냥, '내가 이 정도 이야기해도 저 사람이 정신적으로 상처받지 않겠지.' 하고 본인이 재단한 기준에 따라 말을 하고, 그렇기 때문의 상대방이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때, '고작 이 정도로' 라는 이야기를 하는거죠,

사실 육체적 능력에서는 간접적 변수를 뛰어넘는 이레귤러가 많지 않습니다. 즉 최홍만이 조혜련을 이길 거 같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최홍만이 조혜련보다 크고, 근육량도 많고, 골격도 단단하고….' 라고 세세하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최홍만이 조혜련보다 격투 경력도 길고 전적도 좋고 나이도 젊고 결정적으로 남자잖아' 라고 말해도 그것이 오판될 확률이 거의 드물죠.

그래서 그 습관을 상대방의 정신적 강인함을 재단할 때도 그대로 써먹습니다. 동갑인 여자랑 남자랑 주먹질하고 싸운다고 했을 때 남자가 이긴다는 것에 걸어서 틀린적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남고딩이랑 남초딩이랑 싸운다고 했을 때 초딩이 이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똑같을 거야. 어른이니까 이 정도는 버티겠지, 남자니까 이 정도는 버티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거죠


4. 

개인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틀에 박힌 정신적 활동을 확고히 거부합니다. '남자'와 '남자가 아닌 자' 둘로 충분했던 성별이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생겨나더니 어느새 평범한 사람들은 외우지도 못할 만큼 많은 종류의 젠더로 분화하고, 집이 숲이면 나무를 베고 평원이면 농사나 짓고 밀림이면 동물이나 잡는 게 고작이었던 직업 활동도 픽업 아티스트나 발렛 파커같은 예전이었으면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만한 직업들이 생겨나 개인의 통찰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을 만큼 다양해졌습니다.

이렇게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다원화되면서, 이제 더는 남자니까, 돈 많으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같은 이유로 상대방의 정신적인 능력을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남자고, 23살이고, 집이 어느 정도 사는지 정도만 알면 이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해 대략적인 실루엣을 그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저 정도는 유의미한 판단을 내릴만한 근거가 되지 않아요.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남자지만 괜찮지 않을 수도 있고, 성인이지만 아이보다 더 약한 감수성을 지녔을 수 있습니다. 여자고 미성년자여도 개인이 타고난 성향과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에 따라 모비 딕에 나오는 노인보다도 더 강인한 정신력을 갖췄을 수도 있죠.

따라서 현대에는 개인의 정신적 강인함을 재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적인 변수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상담사들이 사소한 사례 하나하나까지 직접 이야기하기 요구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본인이 상담지에 적은 간접적인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개개인의 삶의 경험을 재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 

왜 똑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힘들어했고,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을까요?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것도 영향을 주었겠죠.
그런데도 어릴 적부터 충격적인 일에 많이 노출된 것도 영향을 주었겠죠.
원래 정서 자체가 둔한 편이라서도 영향을 주었겠죠.
자기애가 강하다는 것도 영향을 주었겠죠.
불가항력에 의해 함부로 재단된 경험이 적다는 것도 영향을 주었겠죠.

남자라는 점이 저런 제 직접적인 경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고, 그래서 저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많은 점에서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정적인 빚 때문에 심지어 단순한 남혐조차도 마냥 시원하게 증오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망가지는 이유가 너무나 심정적으로 절절하게 와 닿거든요) 

그러나 성별은 저를 규정하는 수많은 정체성 중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복잡한 존재고, 정말 많은 것들이 제 삶에 영향을 미쳤겠죠. 그래서 제가 스스로를 남자라서 강하다! 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사실 그것은 틀린 생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6.

최근에 메갈리아 사태로 남녀의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굉장히 자주 보게 됩니다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 남자라 갖는 이점과 여태까지 살면서 득을 본걸 생각해보면, 이 정도 과격한 발언은 이해하고 넘어가야죠, 실자지 한남충 재기해 소리 들어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이 정도가지고 무슨 대단히 심한 가해행위를 했다고 몰아가는것은 비겁한겁니다'

저는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이렇게 본인이 괜찮다고 해서 본인과 공유하는 공통점이라고는 남자라는것뿐인 사람들에게 괜찮음의 당위를 일반론적으로 강요하는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당신이 저런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웃으며 그럴수도 있지 하고 말할 수 있을만큼 강한 이유는 당신이 남자라서가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사회에서 너희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라는 약자들의 메시지에 호응하려는 사람이 남에게 비슷한 아픔을 그대로 전가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