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RPG는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건전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또한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합심하고 건전한 상상을 유발하는 놀이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모든 RPG의 역사는 인정투쟁의 역사이다.
우리가 플레이를 하는 목적은 마스터가 내놓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NPC를 압살하여 플레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것이고,
다른 플레이어 따위는 언제나 나의 정당한 지분을 강탈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다음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방해를 물리치고 비중을 확보하기 위한 OR에서의 몇 가지 대사 요령이다.
1. 기선을 제압하라.
새로운 NPC가 등장했을 때, 새로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주도권은 언제나 맨 처음 그 상황에 반응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언제나 매의 눈으로 주변 상황을 지켜보고, 즉시 반응하라.
이상적인 전략은 평소에 자기 캐릭터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두어, 언제라도 적절한 대사를 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더라도, 결코 망설이지 마라. 하다못해 "뭐?" "말도 안 돼!" 따위의 아무 의미없는 대사라도 걸어두라.
그렇게 함으로써 짧은 시간이나마 마스터와 다른 플레이어의 입을 막을 수 있고, 다음에 어떤 대사를 이어가야 할지는 그 시간에 다시 생각하면 충분하다.
(만약 적당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시 위 과정을 반복하라)
2. 대사는 절대 오래 생각하지 마라.
있어보이는 대사를 치겠다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는 데 골몰하지 마라.
당신이 그런 사소한 일로 끙끙거리는 동안 경쟁자는 이미 속사포같은 언어의 향연으로 당신에게 침묵을 강요할 것이다.
따옴표 하나 안에 두 줄, 세 줄이 넘어가도록 대사를 길게 치지도 마라. 아무도 줄글은 읽지 않는다.
혹여라도 긴 대사를 쳐야 하겠다면 반드시 여러 줄에 나누어 치고, 결코 마침표에서 문장을 끊지 마라.
당신의 대사가 계속된다는 암시가 있는 한, 다른 자들은 침묵 속에 당신의 말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자신에게 명백한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졌을 때 뿐이다.
이 경우라면 얼마든지 필요한 시간을 들여 충분히 생각하고 최대한 멋진 대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다른 자들의 기다림은 중요하지 않다. 참지 못하고 끼어드는 자가 있다면 매너도 없는 놈이라고 가차없는 비방을 날려주면 된다.
3. 다른 사람의 대사에 반응하지 마라.
다른 플레이어란 언제나 당신의 정당한 주목도를 강탈할 기회만을 노리는 비열한 자들이지만, 멍청하지는 않다.
그들이 당신이 말하는 것 이외의 다른 화제를 꺼내들더라도 결코 대응하지 말라.
얼마나 과장스러운 말투로 말하건간에,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눈꼽만큼도 흥미가 없다. 사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당신에게서 말할 기회를 빼앗는 것 뿐이다. 그런 무가치한 대사에 굴복하지 마라.
1번 항목에서 말했다시피 언제나 중요한 것은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선을 빼앗긴다면 당신은 다른 플레이어의 목줄에 매여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4. 다른 사람과 공모하라.
3번 항목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플레이어와 당신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녔을 때뿐이다.
몇 번이고 거듭 밝힌 대로 다른 플레이어는 개자식들이지만, 적어도 당신과 같은 편에 있을 때에는 우리 집 개자식이다.
쪽수는 힘이다. 공모자와 같은 주제에 대해 반복해서 말하고, 서로의 대사에만 반응해주도록 하라.
뭣도 모르는 마스터는 당신의 행동을 플레이어간의 우호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며,
다른 자들의 부질없는 대사는 당신이 보여주는 강력한 연대 앞에 버러지처럼 스러져나갈 것이다.
물론, 당신과 손을 잡았다고 해도 공모자는 여전히 하나의 개자식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당신의 통제 아래 둘 자신이 있다면 가끔 적당한 뼈다귀를 던져주면서 길들여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미련없이 뒤통수를 치도록 하라.
5. 가능하면 자신이 치는 모든 대사에 색깔을 넣어라.
대사가 텍스트의 형태로 전달되는 OR에 있어서, 텍스트의 시각적 형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당신의 대사가 다른 누구의 대사보다 크고 뚜렷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글자 서식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볼드체를 사용하고, 폰트 크기를 키워라.
색깔을 넣는다면 검은색이나 남색, 보라색 따위의 수수한 색깔은 결코 선택하지 마라.
당신의 브릴리언트한 대사에 어울리는 색깔은 네온 그린이나 핑크, 오렌지 등 최대한 명도가 높고 모니터의 RGB 단자를 혹사시키는 색이다.
이는 본래의 목적 외에도, 모니터 너머로 당신의 대사를 보는 자들에게 강력한 눈갱을 시전함으로써
그들의 사고능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는 부가적인 이득이 있다.
* * *
물론 위 소리는 대놓고 헛소리로 한 말이긴 한데.
진지하게 자기 비중을 높이고 다른 사람의 비중을 낮추는 파워 게임을 벌이고 싶다면
(저게 과연 좋은 플레이 스타일인지를 떠나서)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왕도는 알아서 다른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띄워줄 만큼 좋은 RP를 하는 거지만요.
사실 1.2번 항목은 정도만 적절하면 OR 환경에서 대사를 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무슨 대사 쳐야할지 머릿속으로만 고민하고 끙끙 앓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결과적으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경우를 제법 봤거든요.
명대사가 멋지긴 한데, 어차피 평범한 문장 하나하나에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단어, 완벽한 타이밍을 고르느라 끙끙거리는 시간에 한줄이라도 더 치는게 자기 캐릭터 어필에 도움이 됩니다.
3번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너무나도 멍청한 소리를 해서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내 대사가 너무나도 멋져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적어도 귀를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세요.
관심은 상호적인 것이라서 자기 대사에 아무 관심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은 반발심 때문이라도 상대하기 싫어집니다.
4번은 조금 미묘한 점이 있어요.
저렇게 공통 관심사를 설정해놓고 함께 대응하면 서로간에 상호작용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주목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인데.
저게 지나쳐서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도 없고 자기들끼리 일종의 카르텔화하는 광경을 제법 봤어요.
그 카르텔에 마스터가 끼어들면 편애, 차별로 이어지기 쉽고요.
공모하는 플레이어들의 사이가 개인적으로도 특별히 친밀한 경우(연인 관계라거나, 오랜 지인이라거나, 열렬한 추종자라거나)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5번은 절대로 NG입니다. 텍스트에 서식 적용하는 게 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아닌 프로그램도 있는데,
자기 대사 눈에 띄게 하겠다고 대여섯명이 제각각 색깔 넣기 시작하면 알아볼 수 있는 대사가 없습니다.
특히 형광색 쓰는 사람 있으면 강력한 살의가 솟구칩니다.
ㄷㄷ
진지하게 말하자면 각자 다른 색깔 쓰는 건 괜찮아요. 눈아프지 않은 색으로. 형광색이나 지나치게 밝은 색은 당연히 NG고, 파란색이나 청록색, 황토색 이런 것들로.
많이 배우고 갑니다
ㄴ알아볼 수 있는 한에서는 사실 별 문제는 없지요.
근데 사실 저러고 싶을 정도로 비중을 차지하고 싶으면 차라리 싱글 게임을 추천...
다만 저희 팀원 중 한 분이 글에 색 넣는데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셨는데, 알고 보니 눈을 다친 적이 있어서...
저런...근데 녹색은 검은색만큼 눈이 편하지 않나요?
아.. 근데 1 2번은 상황에 따라선 덕목이기도 하지않음? 서로 쭈뼛대면서 이도저도 아닌것보단... 아. 난 물론 빠르게 움직여서 1:1 결투할 사람 뽑을때 빠르게 한걸음 뒤로 감. 파티에 전사류가 없는 기형파티라.(..)
felis/네, 형광생 풀컬러가 아니라 검은색/청색/녹색을 썼는데도 불편하다고 하시더군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뭐 이런 경우도 있다는 정도로...
121/네, 1,2번은 "사실 다른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겠다"는 사악한 의도만 아니라면 오히려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121/눈치 보면서 서로 쭈뼛대는 것보다는 뭐라도 한마디 하는게 플레이에 도움이 되니까요.
3번은 캐릭터성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팀에서 제외하기 딱 좋은 사람이네
천하제일 스포트라이트 대회 열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