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누가 '플레이트 메일로 소총탄을 튕겨내는 소설'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사실 그런 거, 아주 '깨지'. 소설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내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바는 인정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거, 이미 나왔단 말야. 캡틴 아메리카블랙 팬서라고...



그리고 MCU의 비브라늄 설정에 대해 '아 시발 이거 말 하나도 안 되잖아' 라고 트집 잡는 사람들은 소수다.

사실 나도 트집잡는 사람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건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라는 건, 일종의 게임 세계 같은 거라고 봐서,

현실의 사물을 아이템으로, 물리 법칙을 전투력 공식으로 바꾸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다... 라고 전제를 하고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함.

아무도 그 세계의 중력 상수가 지구랑 똑같다고 하지 않았다는 거야.

원소주기율표는 대개 어딘가 미스릴이라던가 오리하르콘 같은 요상한 금속 원소가 추가되어 있고,

바꿔 말하자면 전자 오비탈을 기반으로 한 우리들의 모든 화학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소리지.




그리고, 사실 잘 생각해 보면, 판타지 세계의 갑옷이라는 게 비브라늄처럼 작동 안 하면 그것도 이상하단 말야.

거인들이 곤봉을 휘두르고, 마법사들은 고폭탄을 던져대는 게 일반적인 소드&소서리 판타지 세계관인데,

이 정도 화력을 갑옷이 감당할 수 없다면, 애초에 거추장스러운 갑옷 같은 걸 입어야 할 이유가 뭔데?

원색의 코트를 입은 마법사들이, 최대한 화력을 퍼부을 수 있도록 전열을 이루고,

이 전열을 어떻게든 망가뜨리려고 거인들이 측면에서 병사들을 밀어붙이려 시도하는 나폴레옹 시대 전쟁이 되겠지.


그리고 공중부양 마법이 있으니까 기병 전력을 상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냥 말 머리보다 높게 나는 거고,

그에 따라서 전열보병들이 허공에 붕 떠서 서로를 상대하는...

...어?




사실 개인적으로,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에 대해 합리성, 고증을 요구하는 것을,

나는 '중세 기사에게 내연기관의 구조를 설명해 준 다음, 이 기사가 2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을 떠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과 비슷한 주준이라고 본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법칙이라고는 '내연기관이 있다' 수준밖에 되지 않는 '마법이 있다' 뿐인데,

이걸 가지고 중세 기사에게 전차와 전투기를 설계하고 그 운용방법을 생각해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완벽하게 군사적으로 정합적인 판타지 세상을 외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거야?


아니, 설사 그 기사가 엄청나게 천재적이여서 중세 시대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걸 써 냈다고 생각해 보자.

중세인들이, '음속의 수 배로 날아다니는 조그마한 납 화살들을 모조리 튕겨내는, 대포를 단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 라던가

'날아다니면서 불덩이를 떨어트리는 강철 새들'을 보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할 거 같아?


아마, 내가 지금 위에서 '합리적'으로 설정한,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선이 아닌 면 단위로 전열을 만드는 마법사 전열보병들'

같은 해괴한 아이디어들보다, 한 다섯 배쯤은 더 해괴한 망상으로 받아들일 거다.

정확히, 현대인이 '소총탄을 튕겨내는 판금 갑옷'을 언급하는 소설에 대해 느끼는 것만큼 해괴하게 여기겠지.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는 문자 그대로의 '환상'이기에, 뭐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생각한다.

현실과 판타지 세계라는 건,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 같은 거다.

마린과 풋맨을 1:1로 붙일 수는 없는 거야, 애초에 게임 엔진이 다르니까.


둘을 붙여보려면 맵 에디터로 한 쪽에 다른 유닛을 옮길 수밖에 없는 거고,

그 순간, 그 데이터를 적어 넣는 건, 문자 그대로 자의적이라는 이야기.




물론 그 자의성이 몰입에 방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가 좋은 판타지 설정을 가르지.

그 말도 안 되는 비브라늄 설정이, 캡아 관객들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