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치다가 결국 떨어진' 곳이 비극적인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이와 동시에 마지막에는 뭔가 자그마한거라도 이루고 끝나는게 좋음.
반대로 말해서 플레이어가 일부러 비극에 이르도록 만들어가는거나 그래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는 식의 결말은 그다지 취향에 안 맞는 편
사실 이건 마스터에게 완급조절을 떠넘기는거긴 하지만...
'캐릭터가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치다가 결국 떨어진' 곳이 비극적인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이와 동시에 마지막에는 뭔가 자그마한거라도 이루고 끝나는게 좋음.
반대로 말해서 플레이어가 일부러 비극에 이르도록 만들어가는거나 그래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는 식의 결말은 그다지 취향에 안 맞는 편
사실 이건 마스터에게 완급조절을 떠넘기는거긴 하지만...
아무 것도 못이루는 게 비극은 아니니까.
그리스신화나 켈트전승쪽을 따르자면 사실 아무 것도 못 이뤄도 비극의 한 부류임. 정확하게는 뭔가 이뤄지는 비극이여야 현대 기준에서'팔린다'라는 조건이 달성되는거겠지. Amor Fati적 관점에서 비극은 필멸의 긍정이니까 그 자체로 교훈이지면 현대와선 그게 의미있나. 초고대급 꼰대 같은게 되버리는거임 ㅇㅇ
켈트 전승은 겉핥기로 본 게 다니 따로 언급할 깜냥은 안되고. 그리스 비극에서는 '아무 것도 못이룬다'가 핵심적인 의미는 아님. 가장 신에 대한 불가항력을 강조한 아이스퀼로스조차도 "휘브리스에 대한 경계"라는 내러티브를 강조했을 지언정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통의 범주를 벗어난 특출난 인물들임. 어떻게 보면 뛰어난 인물들이고 이룬 게 많기 때문에 휘브리스에 빠지고, 그 결과 가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거나 박탈되는 결말에 도달하는 거지. 이건 아무 것도 못이룬다는 거랑은 거리가 있음.
특히 소포클레스에서는 인물이 실패를 겪고 결국 파멸에 빠지는 결말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프로타고니스트는 깨달음을 얻음. 내가 그리스 비극의 가장 훌륭한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외디포스 튀라노스에서도 프로타고니스트는 결과적으로 모든 행동이 자기파멸로 귀결되어 가진 걸 모두 잃고 파멸하지만, 종국에는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인물"이 되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포옹하지. 그가 이어지는 작품에서 폴로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유산을 칼로 나누게 되리라"고 "예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라는 분석이 있고.
정리하면 아무리 고대비극이라 할지라도, "아무 것도 못이루는 것"이 그 핵심주제는 아니고, 최소한 "의도했던 바는 실패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대체로 많다는 것. 물론 크세르크세스같은 경우는 풍자의 대상이었지만, 이 경우에도 관객들에게 교훈을 주는 방식이었고.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비극 자체를 본다면 대체로 잃는 것뿐인 결말이 많지 않나 싶어요.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절망에 빠진 채 비참하게 죽는 경우도 있고...
"성취한다", 혹은 "이룬다"는 가치부여의 문제니까.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마지못해 저주하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행위의 결과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포옹한다는 점에서 모든 행위가 부정되고 의미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 사회적 지위나 재산, 목숨의 차원에서 보면 다 뺏기는 게 맞지만.
음 그런 의미인가... 그걸 성취로 본다면 꽤나 많은 비극이 성취를 이루긴 하네요. 근데 그건 ㅇㅇㅇ님이 말한것처럼 필멸의 긍정이 자체로 교훈이다라는 의미가 되는듯한...
휘브리스라. 철학강의 때 배우고 까맣게 잊고 있던 단어를 떠오르게 하다니(...)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기보다는 이룬 것들이 무가치해지다-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긴함.
고대 그리스 비극들 중에서도 시대적으로 초기작품들은 인간의 한계를 적시하는 것들이 맞은 게 사실임. 그 역량의 한계는 곧 유한성의 한계로 내러티브되니까, 필멸성에 대한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단지 "유한한 분수를 알라" 외에도 자기 행위의 의미를 통찰하고 그 대가를 수용하는 것이기도 함. 아까 얘기한 외디포스 튀라노스 같은 단지 라이오스의 저주에서 시작된 인과에 희생되는 덧없는 인간의 운명을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이디푸스라는 한 뛰어나고 많은 업적을 이룬 영웅이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고, (모르고 한 거긴 하지만)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의기양양하게 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이야기기도 함.
이는 결국 한 인간이 파멸을 통해 자기자신을 깨닫고, 자기가 받아야 할 몫(정의)을 스스로 수용한다는 내러티브에 가깝지. 물론 모든 작품이 이런 것은 아님. 하지만 최소한 3대 비극작가의 작품들 중에는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들이 꽤 많고, 대체로 비극이라고 하면 이렇다..는 얘기를 천병희 교수랑 장영란 교수에게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닥쳐오지만 순종하는걸로는 의미가 없고 오히려 그 필연성을 긍정하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라.....완전 니체 아니냐. 이런 능동적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팔리는건 역시 힘들긴하네.
나도 저 사람들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그 의견에 동의하는 쪽임. 물론 아까 얘기한 것처럼 작중에서 프로타고니스트가 꼭 그런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님. 크세르크세스 같은 건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의 김정은 같은 놈을 다룬 거니까 좀 다르지...
니체라... 좀 다른 얘기긴 한데 도덕의 계보 보고 존내 짜식었던 게 기억나네. 다른 것들은 그래도 대체로 참고 봤는데 도덕의 계보는 못참겠었음.
연민은 "치명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사악함을 볼 때 촉발되는 고통의 일종이며 그것은 그럴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서도 일어난다.- 수사학이었나? 감정이입(Empathy)에 관해서 브레히트의 거리 두기 관련해서 수업들은 내역이 기억나네. 극에서 사건들이 아무리 연민스럽고 무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정서가 쾌를 파괴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그게 그리스인들의 필연에 대한 사랑의 정체라고.
히익!
저는 그리스 비극을 좋아하기는 해요. 그런데 rpg에서는... 흑흑, 아직 입맛이 어려서 그런지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행복한 결말이 취향. 진부한 비유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무너졌더라도 자신이 추구한 목표는 이뤘다던가, 누군가 의지할 사람은 남는다던가, 이도저도 아니면 좀 더 구체적이고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성취라도 이뤘거나 말이죠.
입맛이 어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쪽이 훨씬 더 보편적인 정서가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저도 요즘 연기 배우면서 다시 브레히트랑 스타니슬라브스키를 좀 보고 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예전에 연극연출 교양 들을 때 조금 본 게 다였던지라...
사실 저는 나이들면서 점점 비극에 끌리고 있거든요. 그리스 비극이나 세익스피어 비극같은 것도 예전에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비교적 최근에는 좋아하게 됐죠.
RPG 얘기를 다시 하자면... 저런 종류의 비극은 마스터가 플레이어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정확히 알고 이야기를 전개해줘야한다는 점에서 소통과 시간이 필수적인데, 요즘은 바빠서 플레이 시간 이외에는 따로 시간을 많이 내기가 힘들다보니 점점 무난무난한 얘기만 하게 되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네요.
저도 그런 갈증이 있었는데. 또 찾아보니 비슷한 갈증을 느끼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던지라... 열심히 찾아서 영입해다 같이 자주 애기해서 플레이 돌리고 있습니다.
218.146.*.* / 그 부분이 플라톤과 제자 아리 뭐시기랑 부딫친 이유임. 둘다 진정한 지식은 개별자가 아닌 보편자에 있다고 했지만 제자놈은 'ㅆㅂ 모방을 수단으로 연민과 공포에서 비롯하는 쾌는 있다고 쳐. 하지만 그걸 관객이 누구나 갈망한다고 생각하냐!?'라고 따졌지. 그래서 나온게 Transition이고 유머, 풍자같은 감각활동만으로도 충분히 Kalliste(美)=완성쾌를 얻는다는 주장이지. 모로가도 성장하고 즐기는데 꼭 비극이 그럴 필요는 없다라는거.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론이 아니어도 이전부터 역경 끝에 행복을 얻는 부류의 작품들이 사튀로스극이 아닌 비극의 궤에서도 조금 있었는데... 덕분에 오늘날의 비극 분류에 혼란을 주고 있지. 나도 알케스티스를 보면 혼란스러워짐.
오레스테이아 정도면 전통적인 그리스 비극이면서 제 캐릭터가 겪어도 즐길 수 있을법한..그 정도의 비극인 것 같은데, 이것도 사실 결말 부분은 당시 사회 통념상 결말을 내리기 힘든 부분이라서 얼버무린 덕에 비극이 완화된 느낌이 좀 있죠.
알케스티스는 다른 비극들과의 연계성 차원에서 예외적인 게 좀 있지. 자체적으로 놓고 보면 완결된 의미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인간의 정념과 의지로 정당한 계약이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게 통상적인 비극의 주제의식과 거리감이 있으니까. 잘못은 깨달았지만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렇다고 정당화되지도 않는 게 특이하지.
오레스테이아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스퀼로스의 버전을 더 좋아합니다. ㅎ.ㅎ;
아가멤논을 다루는 비극은 여럿 있지만 오레스테이아라는 삼부작은 아이스킬로스가 쓴 것 뿐 아닌가요? 다른 것도 있나...?
정확히는 제목이 오레스테이아는 아닌데,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도 썼던 걸로.
엘렉트라였던가... 그건 오레스테스에게 포커스를 좀 덜 두는 편이라, 저도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이 더 좋았던 것 같네요. 끝부분은 좀 날치기같지만...
아. 그러고보니 에우리피데스랑 소포클레스는 제목이 엘렉트라였나. 오랜만에 떠올리니 가물가물하네요. 엘렉트라였던 거 같기도.
그리고보니 오레스테이아의 결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는, 그리고 전에 듣기로는 그리스 비극의 교육적 목적상 저걸 정당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파멸로 끝낼수도 없어서 극 내에서 판결 유보에 가까운 결말을 낸지라, 끝부분은 약간 날림이 된 느낌이 있는데 이것도 나름의 맛은 있지만 전 좀 찝찝하긴 하더라구요.
(그리스 시학 공부는 했지만 원전은 읽어본적이 없다. 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제 취향으로는 오레스테스가 에뤼니에스한테 쫓겨서 미쳐 죽는 게 더 좋습니다... 아이스퀼로스도 성향상 그쪽을 더 좋아했을 거 같긴 하네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아이스퀼로스 때 이미 아테네가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요구가 달라졌고, 그게 비극 시나리오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본 듯하네요.
히익 사디스트!
제 생각에도 개연성 있는 구성은 그 쪽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