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그 재미가 매우 달라진다. 특히 마스터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은 일반적인 RPG의 마스터역량과는 좀 다르다.


한글번역된 룰 몇개를 얘기해보겠다. COC나 누메네라는 시나리오가 딱 있다. 마스터를 처음 해보는 사람도 그 시나리오만 따라가면 어떻게든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좀 익숙해지면 정리되어 있는 몬스터, NPC, 장비 등등 온갖 데이터를 넣고 빼거나 하는 식으로 변주해 차근차근 익힐 수 있다. 가끔 힘들때가 있지만 온갖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전투에서는 플레이어가 타도해야될 대상이 얼마나 강한지 뭘 쓸 수 있는지 아주 명확해서 적당히 수치 +,-해서 던지면 된다. 탐문이나 자료 찾을때도 난이도 12니 역경이니 뭐니 해서 데이터상으로 이미 확립이 대부분 되어있다. 따라서 이런 RPG에서는 대개 정립된 데이터를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가 마스터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플레이어의 실력을 파악하고 적절한 루트를 되도록 맞아떨어지게 준비하는 거다.



그런데 던전월드는 그런 데이터가 없다. 괴물과 장비는 적혀있지만 누메네라, 13시대, 겁스, COC 등등과 비교하면 정말 새발의 피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데이터도 참 껄쩍지근하다. 


예를들어 던전월드의 용은 데이터적 면에서만 보면 HP16에 장갑5, 데미지다이스가 d10이다. 데이터로만 따지면 1렙 전사나 성기사보다 약하다. 이걸 용답게 해주는게 태그나 본능이다. 


그런데 태그, 본능을 사용하는게 참 힘들다. 원소의 피, 지배한다, 날개...이런거 읽어봐도 팍 와닿는게 보통 없기 때문이다. 아래 예시를 보자.


던전월드의 몬스터:


나가-HP12, 피해d10, 장갑2, 본능(이끈다), 외톨이, 조직적, 지능적, 보물지기, 마법적, 거래를 제안한다, 옛마법을 사용한다.



누메네라의 몬스터: 


라스터-4레벨, 체력18점, 피해4점, 장갑1, 스킬:에너지 방출(6피해), 전리품d6-2 사이퍼, 

이동거리(비행시 장거리 육상 단거리), 3~5마리 동시출현, 마스터개입(난폭해져서 한턴에 두번 공격), 

위험에 빠지면 날아서 도망침, 

사용법(작은 마을 인근에 라스터가 살고 있다. 촌장이 이들을 처리해주길 원한다. 도적단 두목은 잡아서 팔길 원한다.)


초보 마스터나 데이터가 풍부한 룰에 익숙한 마스터가 던전월드 몹을 보면 진짜 감이 안잡힌다. 뭐 어쩌란 말인가? HP가 12면 2레벨만 되도 직업에 따라서는 운좋으면 원킬 내는 스펙인데?? 외톨이면서 조직적은 뭐지? 마법적은 또 뭐야? 마법을 쓴다는 건가? 그러면 d10은 마법을 써서 주는 피해라는건가???그리고 나가를 언제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거지?하수도?바다?동굴?


물론 던전월드로 룰북에서 태그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다 해주고 심지어 몹을 만들거나 사용하는 법도 설명해주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갈피를 못잡겠는 사람은 못잡는다. 왜냐하면 데이터가 아니라 태그나 본능을 통해서 사리에 맞는 묘사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게 던전월드이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자면 던월에선 용의 데미지 다이스가 d10이라고 해서 용이 뿜는 불길을 맞을때 d10을 굴리지 않는다. 용의 브레스 정도면 엄청난 위력인데 d10으로 끝날리가 없지 않은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이때는 걍 바베큐되는거다. 근데 수록된 데이터에는 이런 얘기가 없으니 내성이 없으면 헛다리 집고 감이 잘안잡히게 된다. 


그리고 무슨깡인지 몰라도 룰북도 정독안하고 마스터링한다고 까부는 사람이 유독 던전월드 마스터 중에 많기 때문에 던전월드의 태그, 본능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곤한다.


결국 데이터기반룰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시 익숙한 세계로 돌아간다. 과정이 매우 힘들긴 하지만 데이터만 잘 다를 수 있다면 아주 재미있고 데이터를 좀 못다룬다해도 기본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데이터 기반룰은 데이터가 확실한 지표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상황에서 마스터와 플레이어 모두 합의하기 용이하다. 고블린의 화살은 A상황에서는 5데미지, B상황에서는 7데미지다. 왜냐? 데이터가 그렇기 때문이다. 혹시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고 해도 괜찮다. 데이터를 기준으로 합의하면 된다. 이건 훌륭한 장점이다. 명확한 룰, 데이터처럼 선명한 지도도 없다.


룰북 정독 안하고 띵까띵까 노는 사람들은 "아 던전월드는 좀 한계가 많은 룰이죠ㅎㅎ;;" 이런말 하면서 빈약한 룰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자캐딸과 자작설정딸을 치며 개드립을 치면서 서로를 빨아준다. 


그런데 이런 마스터는 종종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억지로 던전월드에 데이터를 끌고 오는 것이다. 그것도 대개 자작설정을 끌고 온다. 플레이어와 소통을 거부하고 혼자서 꼬리문뱀처럼 노는 것이다. 이러면 정말 미치게 된다. 데이터 기반룰은 마스터, 플레이어 모두 합의가능한 기준점이라도 있다. 하지만 던전월드는 그런 데이터가 부재되있기에 마스터가 작정하고 주화입마에 빠지면 수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어서 대충 결론을 내겠다.


던전월드는 꽤 괜찮은 룰이다. 다만 데이터기반 룰은 아니다. 그래서 그 데이터의 공백을 말이 되게 채워 줄 마스터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던월 마스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던월을 데이터기반 룰처럼 접근한다. 또는 룰북도 정독안하고 마스터링을 한다.


전자는 취향이니 존중하지만 후자는 그냥 병신이다. 어쨌든 제대로된 던월 마스터링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던전월드는 제대로 즐길 준비만 한다면 나름 고유의 재미가 있는 좋은 룰이다.


즉 던전월드 플레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룰북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발생한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볼것은 TRPG의 본가인 아메리카에서 던전월드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창작물이 나오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개는 D&D 아류에 지나지 않지만 가끔 정말 기똥찬 것도 나오곤 한다. 어쨌든 아메리카의 TRPG인들이 단체로 머리가 헤까닥 돌아버린게 아닌 이상 던전월드의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는걸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