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났다. 나는 왜 TR을 시작했는가. 나는 발게이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를 하면서 자라난 세대였고, 뒤늦게 그것이 TRPG D&D룰을 기반으로 한 PC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D&D에 입문했고, 시간을 들여 설딸을 치면서 D&D에 푹 잠겼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TR에 입문한 사람들은 꽤 많을 것 같다. WOD같은 경우는 나무위키(WOD 항목은 오류도 많고, 뇌피셜도 많지만 여튼 보기엔 뭔가 있어보이는 것들이 많아서 뉴비 유입에는 효과적이라고 생각함)같은데서 설딸치면서 하루하루 지새우다가 용기내서 각종 TRPG 커뮤니티에 WOD 팀 구한다고 글 싸면서 입문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정리해보면 TRPG 입문하는 여러 방식 중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어떤 룰의 특정한 부분에 꽂혀서 입문하는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드리즈트의 일대기라든가, WOD 특유의 중2병 넘치는 비장함이라든가. 그리고 그런데 꽂혀서 진흙탕 속에 발을 들이미는 거지.


 그렇지만 TR을 해보고 싶어서 왔는데 룰 좀 추천해주세요, 라는 말은 위의 입문 과정과 정 반대이다. 어떤 룰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접하고 싶어서 TR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마치 보드게임장 가서 알바한테 '둘이서 왔는데, 할 만한 게임 추천해주세요.'와도 같은 느낌이다.

 이 같은 경우에는 같은 상황이라도 입문자의 성향에 따라 그가 처음 접하게 되는 룰이 달라질 것이다. 룰북 별로 안사고 싶어하고, 외우는거 별로 안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던전월드를 추천할 것이고 반대로 다소 빡빡하고, 빌드 짜는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D&D를 추천해야겠지. 뭐 그 외에도 여러 추천할만한 룰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한다. 근데 탈갤 꼬라지를 보면 그 뉴비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뉴비가 할 만한 룰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빠는 룰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던전 월드 빠는 놈들은 던전 월드 추천하고, D&D 빠는 놈들은 D&D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 룰을 추천하는 알바 새끼들 둘이서 치고받는다. 조기 축구회 아조씨들을 보는 것 같다. 처음 모임 나가서 '축구화 추천해주세요'라고 하면 그날 축구는 물 건너간다. 두 목소리 큰 아재가 축구화 브랜드 가지고 서너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는 거 보면 축구화를 벗어서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다. 여튼 두서없지만 요새 탈갤을 보며 느낀 점을 주절거려봤다.


 한가지 더, TR하고 싶은데 룰 좀 추천해주세요, 라고 오는 뉴비들은 정중히 돌려보내주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TRPG라는 마이너한 씹덕 취미에 좆같은 독점욕을 갖거나, 자부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그냥, 서로를 위해 그것이 좋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