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합을 맞춰가며 즉석에서 서사의 흐름도 결정해야하고, 배경과 시나리오 전개도 깔끔하게 짜야하는 판국에, 몹들 태그에 따른 전투 연출, 행동 패턴까지 짜야하다니 너무 힘들다. 특히 이 놈의 몹들은 다른 룰복에선 세밀하게 사용법을 정해두거나, 생태 묘사를 착실하게 해줘서 감 잡기 쉬운데 이건 태그만 띡띡 던져놓고 알아서 하란다.


 던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감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더군.

 확실히 저 3가지 전부를 맛스타 혼자서 처리하려면 던월의 마스터 노동량은 그 수치적 데이타의 부족함을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많아.

 물론 3가지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힘을 줄 부분과 힘을 뺄 부분을 정해두면 노동량을 최고 절반 가량 줄일 수 있다.


 여기서 힘을 뺄 부분은 뭐냐.

 배경과 시나리오다.

 다른 시스템, 특히 D&D나 겁스류에서 단순 빌덕질이나 이능배틀 시뮬레이터 보드게임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정밀한 배경과 멋들어진 시나리오가 필요하고 애당초 이쪽 감수성이거나 이 패턴에만 익숙해져버린 마스터는

 관련 조직, 인물의 이야기에서의 행동패턴과 시나리오 어느 지점에 누가 실패하면 어떤 마스터 액션을 발동할지 하나하나 정리해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던전월드는 그런 쪽을 즐기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게임이 아냐.

 해보면 알겠지만, 저런 준비들을 아무리 해봐야 주사위에 의존하는 바람에 실제로 발동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본래 구도를 망치곤 한다.

 그래서 여기에 공을 들이면 들일 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라는 인상만 가지게 되지.

 아예, 이 부분에서 힘을 빼.

 극단적으로 가면, 아예 이 부분을 해당 마스터 액션을 발동시킨 플레이어에게 맡겨버려도 된다. 깔끔하게 수습하려면 약간 애드립 센스가 있어야겠지만.


 그리고 이걸로 남은 에너지를 몹의 전투 연출, 습성 묘사에 쏟아붓는 거야.


 사람들이 D&D 풍의 핵&슬래시 서사물. 영화로 치면 "B급 판타지 액션 영화'에서 진짜 재미를 느꼈던 건

 그 세계관이나 통수에 통수를 치는 복잡한 구조의 서사가 아니라 현실에서 보지못했던 몹들의 기이한 습성과

 그에 맞춰 화려하게 싸워나가는 주인공들의 멋진 활약상에 있다는 거지.

 (B급 판타지 액션이라기엔) 조금 방향성이 다른 영화긴 하지만 반지의 제왕 영화판에서 일반 관객들이 즐거워했던 건

 방패보드질 하는 레골라스와 하늘을 나는 드워프,

 코끼리 부대의 위용과 성화봉송하는 오크였던 걸 생각해봐.(그리고 간지나는 "나는 남자가 아니다!")

 간달프의 숨겨진 정체나, 왜 엘프들이 서쪽으로 가지 못해서 안달인지, 왜 엘프들이 절대반지를 쓰려고 하지 않는지.

 샐루먼이 왜 타락했는지, 섭정 할배가 왜 저 꼬라지인지

 그냥 대사 한 두마디로 납득하고 톨킨 덕후가 아닌 이상 그 이상 신경쓰지도 않아.(톨킨 덕후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님)

 던전 월드는 이 부분에 집중해, 실은 전투 연출, 묘사야 말로 시나리오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추구한 룰이야.

 따라서 마스터가 시나리오처럼 준비해야 하는 부분은 실은 이 부분인 거야.

 던월에서 몹 데이타에 태그만 던져주고 마는 것도,

 이 이상 제약하면 오히려 그게 D&D라면 레디메이드 시나리오나 어드벤처 북을 보여주고 '딴 생각 하지 말고 어지간한 자신 없으면 이걸 기준으로 따라하시오'

 라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


 이 감각을 깨닫는 것부터 던전 월드의 마스터링이 시작된다고, 최소한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