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의 룰이라는 건 법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법 없이도 산다는 말 있는 것처럼, 매사에 팀원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룰이 없어도 되겠지. 하지만 이건 굉장히 이상적인 상황이고, 실제로 플을 하다 보면 팀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룰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회에서 합의되지 않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법에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지.

 

법언 중에 악법도 법의 불비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불만스러운 법이더라도 법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소리다. 실제로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개연성이 없어 납득이 안 되는 똥룰이라도 있는 것이 룰 자체가 공백인 것보다는 낫다. 악명 높은 wod의 봇치 판정도 일단 명확한 메커니즘이 룰로 정해져 있으니 예견가능성이 있고, 회피가능성이 있다. 즉 불만스러운 룰이나마 어떠한 상황이 되면 이렇게 판정이 되겠군, 하고 예상할 수 있고, 그러한 상황 자체를 회피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예 그런 룰마저도 없다면? 플 자체가 멈춰 버릴 위험이 있다.

 

물론 법이라는 게 그렇듯 룰도 모든 상황을 미리 상세해 정해둘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어떤 룰을 적용해야 할지 아리까리한 상황에서는 팀원들 사이에서 합의하는 경우도 많고.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어느 정도 정비된 룰을 가진 RPG라면 기존 룰을 유추적용할 여지가 있다. 즉, 명백한 적용사안이 아닌 경우에도 잘 정비된 룰은 플레이에 있어서 하나의 해석규준으로 작용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던월은? 내 생각엔 이건 유추적용할 원칙이 될 룰 자체가 공백인, 룰의 부재에 가깝다. 이런 룰을 팀원들 사이에서 '합의'해서 잘 플레이한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팀내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 던잘알이 GM을 맡아 권위적으로 게임 진행을 결정한다면 모를까, 수평적인 관계에서 팀원들이 원만히 합의하여 플을 진행한다는 건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