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RPG 경력이 너무 짧아서, 애초에 하나의 룰에 대해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할 능력이 없다.
기껏해야 '이렇게 해 보니 더 재미있더라' 정도의, 경험적 이야기밖에 할 수 없고.
더더구나, 나는 이미 갤에서 '정답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같은 오글거리는 소리를 대놓고 한 사람임.
이런 내가 '던월의 올바른 형태는 이거다!' 하고 결론을 내 버리면, 그거야말로 황당하지 않겠어?
사실 내가 던월까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감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떠한 '좋은 RPG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 기준에 벗어난 플레이들을 '씹덕들 소꿉놀이'로 일축하려 드는 거.
나는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좋은 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 왔지만,
나한테 '좋은 책의 절대적 기준'을 설정해 달라고 하면,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단언할 거임.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나에게 좋았던 것들'과, '아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들' 밖에 없더라고.
개인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완성도가 끔찍한데, 나 자신은 너무 재미있었던' 인터넷 소설을 하나 읽어본 게 있다.
그 때 느낀 게 뭐냐면, 결국 소설을 읽는 독자는 '개인'이라는 거임. 어떤 거대한 여론의 정언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개인.
그렇기 때문에, '테라진 주의' 간판 걸어놓고 자기들끼리 던월로 노는 사람들보고 뭔 욕을 해 봤자 의미가 있나 싶다.
턀갤에서 뭔 욕을 하던 간에, 이 사람들은 그렇게 놀면서, 자신들만의 재미를 실컷 즐길 거임.
개인적으로 만약 뭔가 RPG에 대해 정답이 있어야 한다면, '다 같이 즐겨라!' 이상의 정답은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함.
그 즐기는 방법에 대한 호불호가 있으면 있었지.
그렇다고 해도, '나 자신이 좋아하는 던월 플레이'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대략적인 상을 말할 수는 있을 거 같다.
말하자면, '걸즈 운트 판처 극장판 같은 플레이'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던월 플레이다.
걸판 극장판의 전차도는, 말 그대로 규칙이 없다.
스포츠니까 실제 전차전과는 달라도 되니 어쩌고 하는데, 내 보기에는 그 이전의 영역이다.
세상의 어느 스포츠에서 관람차를 굴려서 개판을 내는 게 허용이 되며,
대체 물리 법칙이 어떻게 되먹었으면 전차로 롤러코스터 레일을 한 바퀴 도냐.
근데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걸판 제작진들이 어떤 '일정한 기준'을 두고 작품을 전개해 나갔다면,
이런 식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쑤셔넣을 수는 없었을 거 아냐?
RPG로 바꿔 보자면, 세상에 어느 룰에서 '쓰러져 있는 아군의 바퀴를 이용하여 날아가는 전차에 대한 룰'을 만들겠냐고.
그렇기 때문에, 서사주의형 룰은 모든 상상력을 수용할 여유가 있고,
이 '상상력'의 플레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아까 말한 자주박격포 칼 말인데, 사실 애초에 전차가 아니라 커다란 박격포라서 그런 뻘짓 안 해도 그냥 멀리서 뿜뿜하면 터짐.
근데,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걸판 제작진들은 굳이 하늘로 날아가는 전차라는 전개로 오아라이 팀을 몰고 갔음.
왜냐하면, 그 편이 더 재미있거든.
그렇기 때문에, 던월은 어떠한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의도적으로 결여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자주박격포는 왠지 엄청 튼튼해 보여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어떤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상황을 설명해야,
'그러면 우리는 하늘로 날아서 공격한다!' 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PL들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물론 이건, 빈말로도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 거임. 태그는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서 붙여질 뿐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PL도 마스터도 더 재미있어졌잖아? 날아다니는 전차 같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볼 수 있었으니.
거꾸로 말하자면, 던월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어질 것인가?' 라고, 항시 아이디어를 쥐어짜내야 하는 룰이라고도 할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던월이 쉬운 룰이냐면, 솔직히 아니라고는 생각함.
그리고 던월이 다른 서사형 룰들과 비교해서 이런 '아이디어'를 좀 더 잘 토해내는 룰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난 잘 모르겠음.
하지만,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RPG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함.
왜, 댄디만 하더라도 백 오브 홀딩에 휴대용 구멍을 넣어서 와장창 일으키기 등,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 적잖아 있잖아?
던월은, 모두가 자신만의 백 오브 홀딩과 휴대용 구멍을 만들어나가는 룰이라고 하면 적당할 거 같음.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훨씬 더 즐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함.
P.S.
솔직히 내가 봐도 이 글은 도움이 별로 안 될 거 같긴 하다.
그냥 성의를 표현하는 것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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