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관련 글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이기이원론, 즉 마스터랑 플레이어가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볼 것인지, 이기일원론, 즉 마스터는 플레이어를 대표하는지로 볼 건지
물론 헛소리에요. 그냥 보다가 생각났다구요.
전통적인 방식은 이기이원론이에요. 마스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플레이어들을 괴롭히죠. GM, 게임 마스터를 DM, 던전 마스터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 이 때의 영향이죠.
당연한 얘기지만 던전을 짜서 플레이어들에게 도전을 주는데 정보나 권력을 공유할 수는 없어요. 플레이어들은 그저 마스터님이 만드신 던전에 헤딩이나 하면 되는거에요.
조금 궤는 다르지만 일본쪽 RPG 룰들도 이런 방식을 사용해요. 세션의 진행이 씬별로 갈려있어서 마스터가 판을 짜놓으면 플레이어들은 씬 내에서의 자유 정도만 추구할 수 있죠.
분명 장점도 있지만 이런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나봐요. 이런 사람들이 추구하는게 합의제 마스터링이에요.
마스터는 이제 더 이상 Master, 주인이 아니에요. 플레이어들을 대표하고 플레이어의 의견을 조율할 뿐이죠.
분명히 장점도 많은 방식이고, 뭔가 진보된 것처럼 보이는지 한 때는 다들 합의제 마스터링을 숭상했어요.
지금이요? 팀 중에 합의제로 돌아가는 팀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마스터링이 대세죠.
왜일까요? 합의제 마스터링이 어려워서 그런 것도 있어요. 적당한 타이밍에 의견을 제시하고 의견을 나누는 건 뜨내기들이 모여서는 힘들어요. 합이 맞아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방식의 마스터링만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마스터가 공들여 준비해놓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놀라움,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경이,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써나간 이야기의 뚜렷한 맛 같은 것 말이죠.
사실 합의제 플레이를 하다보면 물에 물탄 이야기가 된다거나, 뻔한 이야기가 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생각해보니 오늘 일플이라 사람도 없을텐데 괜히 장문의 글을 썼어요. 젠장.
제가 봤어요. 유익했어요. 저는 전통적 방식과 합의제 방식을 적당히 섞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비율은 마스터나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서.
큰 틀은 전통적 방식으로 짜두되 소소한 설정을 합의제로 할 수도 있겠고, 반대로 세계 설정 자체를 합의제로 하면서 등장 몬스터 같은 건 전통적 방식으로 할 수도 있겠고...
전통적 마스터링의 문제는 그런 정보의 차단이 납득하지 못할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 플레이어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그렇게 독단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싸우는 일을 막기 위해서 합의제라는게 나온건데, 합의제의 문제는 플레이어도 지엠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가지 적당히 섞는게 이상적이라 본다. 순수하게 100%로 합의제 하기에는 자기랑 손발이 맞는사람 찾는게 하늘의 별따기고 순수하게 전통적인 방식만 100% 한다고 쳤을때 그냥 자신만의 캐릭터 메이킹이 가능한 쯔꾸르 같은거 만들어서 플레이 해주세요 하는게 더 나을거다. 아니 쯔구르 까지 안해도 되고 그거보다 더나은 평가점수 높은 상용 컴퓨터 게임이 즐비한디 뭐하러 하겠나.
플레이어가 단순히 수동적 플레이어들만 있다면 오히려 합의제보다 전통적 지엠이 낫다. 하지만 자신이 뭔가 캐릭터의 활동에 기대하는 장면이나 설정이 있는 플레이어의 경우는 합의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겠지
뭐읎음>생동감있는 인물과 연기한다는 요소도 있으니까요.
모 아니면 도 이런 방식은 사실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예를 들어서 클래식 d&d를 한다고 쳐도 플레이어가 마스터한테 이런저런 설정을 짜서 반영 요청을 한다던가 서로 기대하는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이미 전통과 합의가 섞이는거지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이 레일로드를 뜻하지는 않아요. 마스터가 서술권을 독점해도 진행이 비선형인건 가능하죠
결국 양쪽의 밸런스를 어느 정도로 조절하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어떤 캠페인이냐,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서 케바케가 되는거고.
합의형 룰을 완벽하게 보완할 방법에 대한 서술이 여기에 있다!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1615
개추드림
본문 글 + 첫 댓글까지, 듀나 글 읽는 것 같다...
시..벌 토깽이 새,끼덜이 탈.갤을 잠식하고 있다,,,
취향
개인적으로, 합의제 중심으로 가는 TRPG 판도가 TRPG 판을 더 좁히지 않을까 우려스럽긴 하다. 티알피지 하는 사람들이 CRPG에선 즐길 수 없는 매력을 원하다보니 합의제 플레이가 대세로 떠오르고, 합의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또 합의제를 플레이하는 인구 감소의 순환이 일어나는건 아닐지.
근데 뭐 우려는 우려고, 티알러 중에 합의제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걸 어쩌겠나. 합의제 게임이 나쁜 것도 아니니깐.
합의제 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경험한 팀들은 고전적인 방식의 마스터링에 약간의 플레이어 의견을 더한 정도가 많았으니까요. 물론 개인의 경험일 뿐이지만요.
이런 소리들 보면 전통적 방식은 갓마스터를 전제로 얘기하더라.
알피지에서 추구하는 건 서사적으로 우수한 이야기라는 결과물이 아님. 그건 영화제작이나 소설 집필의 목적이고.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는 게 중요한 거지. 대부분의 마스터는 작가로서는 이류도 못 된다. 갓마스터가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 이라는 게 어떻게 보편적인 플레이 방법론이 될 수가 있어?
작가로서 이류라도 상관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일류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통적 서사가 필요한거죠. 이류도 안 되는 작가 다섯명이 모여서 만드는 얘기는 더더둑 맛이 옅어지기 쉬우니까요.
혼자 이야기를 만드는 건 전통적인 작가의 일이지. 전통적인 서사를 전통적인 작가의 입장에서 마스터가 하는데 이류조차 못 돼도 괜찮다는 건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음. 소설과 영화 같은 전통적 서사 패러다임 하에서 완성도를 추구하면 순전히 마스터의 작가로서의 자격에 의해 플레이의 질이 갈리는 거고,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들은 거기에 방해가 되는 존재인 건데, 이게 알피지의 올바른 모습이라는 이야기인가?
이류 작가 다섯 명이 얘기를 하면 적어도 서로 놀라게 해 줄 수는 있고, 현장에서의 흥이라도 확보할 수 있지. 이건 피아스코가 증명함.
기존 방식에서 마스터가 서사를 독점해도 괜찮았던 것은 플레이의 초점이 서사에 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야. 캐릭터 성장시키고 전투하고 아이템 모으는 게 게임플레이의 핵심이었으니까. 그걸 컴퓨터 게임이 완전히 잡아먹었기 때문에 알피지 디자인도 현재의 추세를 이루고 있는 건데, 이미 다 잡아먹힌 "공들여 준비한 서사의 경이감"을 전통적 방식의 이점으로 꼽는 건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 옛날에도 그런 공들인 서사를 원하면 상용 시나리오를 사다 썼어.
음... 오늘 새벽에 쓴 글에도 약간의 부연이 있는데, 전통적 마스터링이라고 해도 플레이어가 하려는 행동을 마스터의 의도에 묶어두는 건 아니에요. 전통적 방식과 합의제를 가르는 건 서사의 주도권과 플레이에 대한 정보를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로 갈리는 거지 서사의 독점 여부가 아니니까요. 영화나 게임에 비해서 경쟁력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매체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나요? 물론 요즘 게임은 선택지 시스템도 꽤나 잘 되어있고 npc의 반응도 다양한 편이지만, 여전히 RPG의 그것과 비교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전통적인 마스터링에서 플레이어들이 서사에 방해가 된다거나 CRPG에 비해서 장점이 없다거나 하는 얘기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네요.
물론 전통적 방식에서 마스터의 역량이 더 중시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합의제에서는 모두의 역량이 고루 좋을 것을 요구하죠. 어느 쪽이 더 갖춰지기 힘든 조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합의제가 한 때의 유행처럼 지나갔던 걸 보면 제가 보기에는 합의제가 더 힘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