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백색의 풍경이 펼쳐졌다. 숨막히는 러시아 스텝 평원의 안개와 대지를 가르는 지평선이 사라진 세계. 독일 국방군 소속 디트리히 뵐링 상병은 한 때 22 전차 사단의 자랑 거리였던 전쟁 기계를 살펴보았다. 백색 도료로 칠해진 그의 4호 전차는 홀로 놓인 채 눈 더미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찰나 동안 추위를 몰아내며 타오르는 독일 국방군 모병 전단지엔 병사들이 전차 주위에 있는 모습이 등장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전차 사단의 생존자들은 볼고그라드 서쪽으로 150 킬로미터 떨어진 치르 강 만 근처에서 연료가 고갈되고 말았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교살하고 물어 뜯는 한기가 온기를 사방으로 흩어 놓기 시작하던 삼일 전, 스탈린그라드 전역의 러시아군은 총 반격을 개시했다.  포들이 숨죽인 분노를 폭발 시키며 고함 쳤고 교전 중인 전차들은 시야가 가려진 채 서투른 발레를 추며 서로 부딪쳤다. 공기는 젖보다 더 뿌옜고, 러시아 제 8 기병대는 포위된 22 전차 사단을 에워싼 채 저격수들과 T-34 전차들을 동원해 그들의 목숨을 하나씩 앗아갔다. 디트리히의 일행은 전날 마침내 포위망을 뚫고 스텝 평원 속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채로 러시아군을 기다리는 신세에 놓였지만, 포성과 전차들의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아침이 되자 사라졌고, 오줌으로 얼룩진 눈더미에 덮인 적막한 풍경만이 남았다.


홀덴 - 디트리히의 사수이자 그를 제외하고 남은 4호 전차의 유일한 생존자인 - 이 눈보라의 장막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턱에 자라난 손질하지 않은 솜털 다발 때문에 그는 히틀러유겐트에서 갓 징집된 듯한 모습이었고, 기름때 묻은 그의 얼굴이 젊은 아리아인의 풍채를 무색케 만들었다. 허벅지 길이까지 오는 갈색 양가죽 오버코트가 그의 앙상한 어깨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그는 커다란 줄타래에서 견인용 밧줄을 풀어내고 았었다.


“뭐하는 건가?” 디트리히가 물었다. 그는 희끗해진 수염과 덜 여문 주름을 돋보이게 하는 먼지로 뒤덮인 얼굴에, 검은 야전 상의를 걸치고 양가죽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만일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아마 꽤 번듯한 외모를 지녔을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20미터 떨어진 티거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서로 떨어진 전차들끼리 밧줄로 갈고리를 걸어 연결해 두었습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 말입니다. 합스만 소위님께서 지시하셨-”


“합스만? 그 쥐새끼가 아직 살아있었나?” 디트리히가 침을 뱉었다. “그 자가 다른 유태인 놈들과 함께 배에 태워져 폴란드로 실려가지 않은 게 놀랍군.”


“하지만 디트리히 상병님. 그 분은 유태인이-”


“그 자식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나도 알아 이 멍청한 녀석!” 디트리히가 분노했다. ”하지만 놈은 아리아인이 아니야. 그 자는 분명 제국 가계 단속국을 속인 게 틀림 없어. 자네도 볼 수 있듯이 그 자에겐 셈족의 피가 흐르고 있네. 그 자의 경사진 이마나 검은 곱슬 머리, 매부리코를 보면 알 수 있지. 히틀러유겐트에서 가르치지 않던가?”


“예. 디트리히 상병님. 분명 히틀러유겐트에서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합스만 소위님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 둘보다 상급자 아닙니까. 또, 그 분은 자기 티거로 다른 모든 부대원들을 불러들이고 싶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 한 곳에 모인다면, 그만큼 동사할 확률이 줄어들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홀덴의 말은 디트리히의 기대를 산산조각냈다. 그는 묵묵히 견인용 밧줄을 전차 정면의 밧줄 갈고리에 묶었다.


“보고나 마저하게. 그 쥐새끼 합스만 말고 그 곳에서 발견한 다른 것이 있나?”


“아.” 홀덴이 긴장한 투로 말을 이었다. “저희 인근 전차들의 상태 점검을 완료했습니다.하지만 그걸 기록할 종이가 없습니다.”


디트리히는 그의 하급자의 말을 무시했다. 그럴 종이가 있었다면 그의 사수는 진즉에 자기 바지 속에 끼워 넣어 조금이라도 추위를 막을 용도로 썼을 것이다.


“...다섯 대의 전차가 일대에 흩어져 있고...”


이 전쟁에는 감춰진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 어느 것도 남은 연료는 없었고...”


디트리히는 홀덴이 죽은 루마니아 군인의 시체에서 주워 쓰고 있는 발칸 양가죽 군모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홀덴도 하사 계급장이 붙어 있는 디트리히의 검은 야전 상의에 대해 묻지 않았다.


“...3호 전차 한 대엔 죽은 병사들의 사체만이 있었고...”


이 곳은 우크라이나를 훑으며 이지움이나 스바토보 같은 땅들을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구해낸 자랑스런 독일 국방군의 대오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이었다. 기근에 시달린 주민들은 적그리스도 스탈린을 뼈로 쌓아 올린 그의 옥좌에서 끌어 내리기 위해 당도한 국방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은 독일의 흑십자 표지를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디트리히는 그 희망이 곧 승리를 가져다 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스탈린그라드의 제단에서 스러졋다.


“...얼굴이 뜯겨져 나가...”


“뭐라고? 다시 말해보게!” 디트리히는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칠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물었다.


“죽은 루마니아 병사들의 시체로 뒤덮인 3호 전차를 발견했습니다. 그 시체들은 해치를 막고 있었고 말입니다. 전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병사들의 시체를 치우려 했지만 금속에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그 중 한 명의 얼굴이 뜯겨져 나간 것 같습니다.”


“나간 것 같다?”


“아, 예. 제 말은, 원래 얼굴이 뜯겨져 나가 있던 건 아닐테니 말입니다.”


“전차 안에 누가 더 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얼어붙은 시체들이 해치와 저장고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치워버리면 되지 않나.”


“하지만… 저… 그래도 그들의 얼굴을 뜯어내면서까지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디트리히 상병님?”


“자네 토끼를 잡아 가죽을 벗겨 본 적 있나?”


“어, 예… 예, 그렇습니다.”


“그거랑 다를 것 없어. 최소한 토끼들은 쓸 데라도 있지. 돌아가서 그 시체들은 뜯어내고 안에 있는 건 뭐든 챙겨오게. 바닥 밑 연료 탱크를 살피는 것 잊지 말고. 이런 데서 죽어 버려서야 총통을 섬길 수는 없지 않나.”


홀덴은 잠시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서있더니,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눈의 장막속으로 발걸음을 옮겻다.


“그리고 홀덴,” 디트리히가 덧붙였다. “합스만에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말게. 자네가 뭘 찾든 간에, 아마 우리 둘에게나 겨우 충분한 양일 거야. 알아 듣겠나?”


***


두 시간이 지나도 홀덴은 돌아오지 않았다. 뵐링 상병은 그의 하급자가 합스만에게 붙어 그를 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디트리히는 지휘관석에 앉아 주포의 포미 난간(recoil guard)에 두 다리를 대고 쭉 뻗었다. 자리 위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지만 그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터렛 해치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 베스터마이어 중위가 저격수의 탄환에 적중당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굴러떨어져 전차 안에 피를 흩뿌릴 즈음엔 그는 이미 죽어 았었다. 그 때, 디트리히는 자신의 옷에 묻은 피를 무시하고 조종을 계속했다. 지난 주 일이지만, 매우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졋다. 디트리히는 시시각각 유혈에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제 그의 옷에 말라 붙은 핏자국 따위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혹독한 밤의 한기가 주위에 내려 앉았고, 디트리히는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전차의 보다 어두운 안쪽 부분으로 들어가야 했다. 해치와 권총 구멍, 큐폴라의 관측 구멍이 전부 닫혀져 있었음에도 온기는 체를 통과해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디트리히는 러시아군의 총탄과 포탄도 막아낸 이 국방군의 병기가 소비에트 제국의 가장 위대한 군인 ‘동장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디트리히에게 얼어 죽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고, 머지 않아 온기가 모두 사라질 터인 차에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라이터 하나 뿐이었다. 살기 위해선 그의 전차를 벗어나 인근의 다른 전차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홀덴이 말한 다섯 전차 중 한 대엔 뭔가 쓸만한 것이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합스만의 전차에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디트리히가 44구경 슈투름게베르 기관 권총의 탄창을 점검하고 해치를 열어 밖으로 나가려던 그 때, 뭔가 거뭇한 것이 회전 포탑의 관측창을 가렸다. 디트리히는 본능적으로 낮은 천장 칸 쪽으로 물러나다가 운전석에 부딪혔다. 홀덴이나 다른 사단 병사일리는 없다고, 디트리히는 생각했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전차 승무원에게 머리가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누구든 해치를 열고 들어오기 전에 렌치나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신호를 내게 마련이었다. 누군가 안쪽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가 누구인지 자세히 살펴 보기엔 너무도 어두웠다.


눈이 휘몰아치는 흐릿한 소리 가운데 찬 공기가 쉭하고 전차 속으로 새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가 큐폴라 해치를 연 것이다. 디트리히는 배가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밑으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어떤 오래된 본능 같은 것이 그의 두개골 뒷편에서 그더러 당장 도망치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사냥꾼에 가까웠다.


조심스레, 디트리히는 그의 뒤쪽으로 손을 뻗어 천장의 움푹 들어간 곳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큐폴라 해치는 이제 완전히 열려 있었다. 작은 눈발의 회오리들이 안으로 들어와 적갈색으로 물든 전차 내부에 내려 앉았다. 디트리히의 손가락이 마침내 그가 찾던 자물쇠 걸쇠에 닿았다. 그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고통스러울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것을 살살 밀었다. 마침내 해치가 양호한 수준의 작은 소음을 내며 열렸고, 더 짙은 한기가 흘러들어와 앞쪽 칸을 완전히 메웠다. 숨을 죽이며, 디트리히는 출구 밑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순간 우윳빛의 새하얀… 두 손이… 첨단으로 갈 수록 가늘어져 톱니 형상을 이룬 손톱들이 큐폴라 해치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곰인가? 아니면 영악한 늑대? 어떤 짐승이든 보통은 머리를 가장 먼저 들이밀었을 것이다. 디트리히는 그것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운전석을 밀고 해치를 빠져나와 털이 곤두서게 만드는 혹한의 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다.


시야는 모두 가려지고, 울부짖는 바람이 모든 소음을 섭취해 소화시키며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있었다. 디트리히가 눈으로 뒤덮인 포탑을 뒤돌아본 바로 그 때 검은 군홧발이 해치를 통해 빠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디트리히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티거 전차로 이어진 견인용 밧줄을 잡고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더미를 헤치며 더욱 거세지는 폭풍 속으로 나아갔다.


***


눈더미는 더욱 두꺼워지며 디트리히의 발걸음을 늦추었지만, 그는 게속해서 혹한 속을 뚫고 나아갔다. 영원하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흐른 뒤, 디트리히는 마침내 티거 앞에 도착했다. 만족할 줄 모르고 연료를 잡아 먹는 팀욕스런 기게가 그의 눈 앞에 서 있었다. 딱히 우아한 외형을 지녀 ‘가구 마차’로 불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조차 켜켜이 쌓여 가는 눈더미 속에 반쯤 파묻힌 그것의 모습은 거추장스럽고 추해보였다. 반 자기 기뢰용 반죽 조각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회색의 반점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회전 포탑의 사이드 해치는 완전히 열려 있었다. 디트리히는 눈더미에서 빠져 나와 티거의 하단 덮개 위로 올라간 뒤 텅 빈 전차의 내부를 엿보았다. 분명 승무원들은 모두 죽었을 거라고 디트리히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로선 그들에 대한 동정심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 소속이었던지에 상관 없이. 디트리히는 그 자리를 벗어나 티거의 네 견인용 밧줄 중 자신의 전차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전차로 뻗은 것처럼 보이는 밧줄의 갈고리를 풀었다. 그는 그 느슨해진 견인용 밧줄에 의지해, 끌어당긴 부분들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가며 바람이 휘몰아치는 눈밭 속으로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를 쫓아오던 간에 그것은 티거와 연결된 다른 전차들 쪽으로 발걸음을 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디트리히는 도착한 전차 속에 홀로 안전하게 숨어 눈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부대원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다른 부대원들이라도 자신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그를 희생시켰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 그들 중 독일에 충성을 바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로, 병사들은 선전부의 주간 정훈 교육을 받는 내내 남몰래 코웃음치곤 했다. 전황이 불리해졋다면, 그건 히틀러가 열등한 종족들을 독일인들과 함께 싸우도록 허용하고 나약한 피를 가진 나약한 자들이 최전방에서 싸우도록 지시한 것 때문일 것이다. 분노를 곱씹으며, 디트리히는 눈밭을 뚫고 나아갔다. 그의 꿈을 배반한 제국을 저주하면서.


***


3호 전차는 디트리히의 전차보다 6톤은 더 작았지만, 50mm 구경 주포로 개수되어 있었다. 눈더미는 이제 하단 덮개까지 쌓여 있었고, 이듬해 봄이 오면 그 밑에 진창이 펄쳐질 터였다. 백색으로 뒤덮인 그것은 이제 눈보라 속에 거의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이제 루마니아군 병사들의 주검만이 시체 위의 구더기들처럼 표면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엎어져 있었고, 전차의 맨 강철 표면에 달라 붙어 있었다. 디트리히는 그들이 공기 배출입구를 따라 전차의 네 주 해치들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저 시체들을 고의적으로 저렇게 위치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디트리히는 그런 행동을 필요로 한 냉정하고 잔혹한 논리에 동의했다.


“제 발로 사자굴로 기어 들어온 꼴이 됏군.” 디트리히가 중얼거렸다. 그의 사단 병사들을 뒤쫓던 것이 무엇이던 간에, 그것은 이 전차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은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눈폭풍이 그의 발자국들을 모두 덮어버렸기에, 디트리히는 되돌아갈 길을 찾을 희망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이 전차만이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게다가,” 디트리히는 혼잣말을 이었다. “분명 해치를 막은 건 어떤 이유가 있어서겠지.” 만일 저것들이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거라면, 그가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디트리히는 밧줄을 내려놓고 지휘관용 해치에 달라붙은 병사의 시체 위로 기어 올라갔다. 주검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디트리히는 그것을 전차에서 떼어냈다. 시체의 안면은 뻣뻣한 가닥들이 되어 떨어져 나갔고, 쇠붙이 위에 살점 조각들을 남겼다. 하지만 전신을 다 떼어내기란 무리였다. 마치 무언가가 그 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내려친 것 같았고, 그 자의 상의와 방한복은 무참히 뜯겨져 나가 있었다. 노출된 그자의 흉부와 복부가 금속 표면에 얼어 붙어 있었지만, 디트리히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붙어 있었다. 노출된 살갗들이 금속 모서리 사이로 녹아 들어가거나 걸려 있어, 그 병사는 마치 금속 표면에 뿌리 내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쩄든 그저 루마니아 놈들일 뿐이지 않은가.


디트리히는 그의 나이프를 꺼내 살점을 잘라내고 시체를 해치에서 떼어넀다. 마치 토끼 가죽을 벗겨내듯. 연이은 수 회의 칼질 후 그는 칼끝으로 금속 모서리 사이의 살점들을 파낸 뒤 큐폴라의 해치를 열었다. 따스한 공기의 파도와 도축장에서나 풍길법한 내장 냄새가 그를 엄습했다. 내부는 축축했다. 반쯤 얼어붙어 동상을 입기 직전이 되자, 디트리히는 바로 전차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가 내려가는 와중 해치가 거칠게 닫히며 크게 울리는 소리를 넀다. 온기가 그를 감쌌다.


내장들의 유독한 혼합물이 칠흑같은 전차의 내부를 온통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디트리히를 크게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여름마다 베를린 남쪽의 쿠메리츠 양 농장에서 일하곤 했기에, 죽음의 냄새에 익숙했다. 오히려 그의 신경을 긁은 것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갸냘픈 신음과 흐느낌 소리였다. 디트리히는 더듬 거리며 라이터를 찾아, 불을 켰다. 그림자가 깜밖이는 불꽃의 너울 속에서 춤추었고, 전차의 내장들이 자리한 틈과 구멍, 구석들을 모두 어둠으로 물들였다. 그가 다른 생존자들을 발견한 것은 그 때였다.


전차 안은 그야말로 악마의 도살장이나 다름 없었다. 홀덴, 합스만, 그리고 최소한 네 명의 다른 부대원들이 장비, 의자, 탄약통, 벽, 천장, 그리고 바닥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의 몸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비계로 서로 이어져 있었다 - 축 늘어진 채, 흐늘거리면서. 마치 사탄이 엄지를 들어 우주의 면전에 그들을 마구 문질러 바른 것 같았다. 오장육부들이 땋아 내려진 듯 서로 엉켜 있었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살은 온통 벽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안에서 밖으로 뒤집힌 꼴이 되었음에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포미 난간에 걸린 채 아래로 의자까지 늘어 뜨려진 장기들이 꿈틀거리며 그들의 귀중한 체액을 뿜어냈다. 갸날픈 신음 소리는 다름 아닌 홀덴과 다른 부대원들의 납작해진 면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오므라든 입술과 성대들이 마치 세탁한 리넨 천처럼 늘어져 있었고, 그들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그저 흐느끼는 소리와 꾸르륵거리는 소리 뿐이었다. 적어도 그들이 성 수태 고지 축일에 참가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은 분명했다.


디트리히는 경외감에 젖어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이 모든 살육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래전 전장에서 사라져버린 기능성의 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디트리히는 수많은 절단된 사지와 포탄 파편에 갈려나간 전우들의 주검을 봐왔지만, 그것들은 그저 버려져 나뒹구는 개개의 시체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순수한 기능성과 냉정한 탁월성, 그 자체였다. 디트리히의 아버지는 그에게 고대 사냥꾼들이 눈보라 속이 갇힐 때면 사슴을 갈라 그들의 내장 속에서 체온을 지키며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 있었다.이것은 그러한 기능성이 극한까지 치달은 형태였다. 전차의 내부는 장기가 온통 끄집어내졌음에도 살아 숨쉬는 병사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내장과 핏줄이 끊임없이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전차 바깥의 병사들은 온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열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는 정교하게 게산된 완벽한 실용주의의 정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독일 군대가 가지지 못했던, 천년 제국을 이끌어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바로 그것이었다.


“상관에게 경례하지 않을 셈인가?” 느릿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음성이 물었다.


 디트리히는 뒤로 몸을 돌렸고, 그 탓에 라이터의 흐릿한 불혓바닥이 사그라질 뻔했다. 낮은 천장의 그림자에 가려진 통신수 자리에, 친위대 여단 지휘관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그 남자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검은 제복 아래의 흰 셔츠, 검은 옷깃이 달린 암회색 독일군 코트, 두 가닥의 번개 문양이 수놓아진 소매 옷깃, 총의 번쩍이는 약실, 그리고 젖은 검정 군화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자의 허벅지 위에는, 해골과 교차한 뼈들이 조각된 은제 핀이 부착된 암회색 군모가 놓여져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럤을 겁니다.” 디트리히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이 절 죽일 거라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아니, 이미 진작에 절 한번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넌 미꾸라지 같은 놈이야. 그건 인정하지. 네 전차에서 빠져나간 방식은 꽤 영리하더군. 하지만 내가 가장 감명 받은 건 네가 이 전차까지 밧줄을 따라 온 과정이었다. 넌 내가 다른 자들을 쫓길 바럤겠지. 그렇지 않나?”


“절 봤습니까?” 디트리히가 의심에 차 물었다. “어떻게? 나는 당신을 두고 도망쳤는데.”


“자네가 이 폭풍을 불러낸 건 아닐테지. 그렇지 않나?”


“그러면 당신이 그럤다는 겁니까?” 디트리히가 비웃었다.


여단장은 그의 얼굴이 불빛 아래 드러나도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아리아인의 전형에 가까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석고와 같은 피부 위에 금색 비단 같은 머리칼이 내려 앉아 있었고, 그의 코와 입술, 턱은 황족과 같은 고귀함을 풍겻다. 그의 두 볼은 마치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 같았고, 라인 블루 색상의 눈동자는 늑대의 눈빛을 품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완벽했고, 흠집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친위대장인 히믈러가 그토록 자랑스레 신봉해온 이상적인 북구 전사의 전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디트리히를 뼛속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잔혹한 심성을 가진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시선이었다. 그 순간, 디트리히는 이 자에게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이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디트리히는 헤르만 라우슈닝의 히틀러에 대한 연설을 인용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들에게 비밀을 밝힐 것이오. 나는 새 인류의 화신을 보았습니다. 담대하며, 위대한...”


“...나는 그의 앞에서 주눅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단장이 그의 말을 대신 끝맺었다.


“그 연설을 읽은 적 있습니까?”


“뭐 나름… 볼만 하더군.” 여단장은 수긍했다.


“총통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수 있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럼 지금은?”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러시아와의 싸움은 앞으로 우리가 겪을 무수한 패배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히틀러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향한 그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방금 한 말은 반역죄 감이군.”


“그리고 우리 둘 다 사선에 서있지요.” 디트리히는 홀덴과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씩 웃어 보였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마침내, 그가 물었다.


“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여단장이 음산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너희 선조들의 피를 이은 영혼이다. 지상에 현현한 북구의 핏줄이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디트리히가 다가갔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적당한 때가 되면 드러날 것이다. 너를 살려두기로 마음을 바꿨다. 너의 약삭빠른 면을 높이 샀으니까. 그게 언젠가 우리 둘 모두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히틀러의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우리의 전쟁은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 이번 러시아로의 전진은 러시아를 휩쓴 붉은 폭풍 이래 우리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 싸운 너희 족속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했지. 그리고 그건 결국 잘못된 믿음이었다. 이제 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지. 네 말이 옳다. 히틀러, 히믈러, 그리고 그들을 포함한 모두가 너를 배신했지. 하지만 그들은 중요치 않아. 그들은 그저 그들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이 황량한 곳에 홀로 떨어진 겁니까?”


“나는 러시아인들이 총 반격을 시도했을 때 나의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체온을 유지하면서 나의… 힘을 회복하는 동안 이 곳을 지키고 있었다. 난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다. 너는 내 마지막 식량으로 쓰일 예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자네는 그보다 좀 더 쓸모 있는 병사란 사실을 증명해 보였지. ‘상병’.”


“기꺼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이를, 무슨 이유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까?”


“때가 되면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네게 네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 순수를 손에 넣을 기회를 주려 한다. 너도 나와 같이 그 어떤 결함도 불순함도 없는 육신이 될 수 았다. 나는 네게 사고의 완전함을 주겠다. 그게 네가 지금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하지만 제가 군을 저버린다면, 저는 반역자로 총살 당할 겁니다.”


“아니,” 여단장이 대답했다. “그들은 네가 오늘밤, 바로 이 곳에서 죽었다고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그것이 곧 진실이 되겠지.” 순간, 여단장이 디트리히가 들고 있던 라이터의 불꽃을 꺼뜨릴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 때문에 어둠이 전차 안을 적셨다. 그는 상병을 거칠게 넘어뜨렸다. 뜨거운 바늘들이 디트리히의 목을 파고 들었다. 그는 그의 피가 그 상처를 통해 타오르는 -하지만 무서우리만치 황홀한- 급류가 되어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홀덴이 그의 귀에 대고 갸날픈 울음 소리를 넀다. 하지만 디트리히는 그저 그의 머릿 속에서 우레처럼 울려 퍼지는 피의 폭포성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우레는 안개 속의 러시아 전차들과 같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디트리히는 그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비현실적 한기가 그의 뼈를 움켜쥐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 그는 죽음의 문턱에 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여단장이 그의 입술을 디트리히의 입술에 짓누르며 피를 흘려 넣었다. 디트리히의 세게가 비명 속에서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