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는 천천히 길을 따라 나아갑니다. 덜컹덜컹, 길이 험해서 그런가, 마차가 자꾸 흔들리는군요. 며칠 전만 해도 길이 아주 잘 닦여 있었는데, 이쪽은 길의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차는 갈 곳이 있었고, 그곳으로 가는 중이지요. 푸르릉, 말들이 투덜거리듯 소리를 내지만 마부는 개의치 않습니다.

마차를 몰고 가는 마부는 상인 폴 자크 씨입니다. 자크 씨의 마차에는 포도주 부대를 담은 상자가 꽤 많이 실려 있네요. 그는 이 포도주를 팔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주 북쪽까진 가지 않습니다. 마차는 라이히스베르크에서 멈출 예정입니다. 하지만,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 중에는 그보다 더 멀리 갈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있네요. 성 이세니아 교단의 파견사제인 레오나 양입니다.

마차는 레일론드 왕국에서 출발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자크 씨는 라이히스베르크까지 가는 길이 험할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 마차를 지켜줄 이들을 구했습니다. 양손검을 휘두르는 마리우스와 쇠뇌를 쏘는 올리비에는 마침 그곳에 가야하기도 했고, 돈도 준다기에 자크 씨의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우스와 올리비에는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말했지만, 자크 씨는 역시 치유사도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우스와 올리비에는 어쩔 수 없이 주변에서 사제를 찾았는데, 레오나 양은 마침 북방으로 향할 예정이었기에 그들에게 자신이 함께 가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레오나 양은 자크 씨가 줄 자신의 몫을 마리우스와 올리비에 둘이서 나누어 가지라 말했고, 이 말은 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마리우스와 올리비에는 레오나 양을 자크 씨에게 데려갔고, 이렇게 이 셋은 포도주 부대가 담긴 상자와 함께 마차에 타고 북방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마차가 레일론드에서 출발해 제국으로 들어서자 길은 아주 넓직하고 깨끗했습니다. 주변에는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죠. 마치, 레오나 양의 고향 마을의 풍경처럼 말입니다. 레오나 양은 그 광경을 보며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겨우 열셋이었을 때 몰래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군화를 몰래 가져가고, 그 자리에 예배당의 사제님께 더듬더듬 배운 글자로 쓴 편지를 남겨두고요. 그 예배당도 성 이세니아의 것이었습니다. 떠올려보자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은총을 받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레오나 양의 고향, 바인은 보리밭과 맥주로 유명한 곳입니다. 물론, 그곳에 사는 농민들은 꿈도 못 꿀 것이었지만요. 바인은 비록 자유농들이 사는 곳이었지만, 귀족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레일론드 땅 어디가 그렇지 않던가요. 저 먼 귀족령의 영주가 자기 동생을 이리 보내와 양조장을 책임지게 했고, 그 동생의 조카는 방앗간 주인이었죠. 자유농이 농노와 다른 점은, 이름 뿐이었을까요. 아니, 돈을 귀족들에게 간접적으로 낸다는 점이 농노와의 차이점이로군요.

아무튼, 그 맛있다고 소문난 맥주는 매우 비쌌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모험가들은 술집에 마구 돈을 뿌리며, 나무 바닥에 그 황금빛의 액체를 흘려대며 들이키곤 했습니다. 레오나 양은 지나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험가들을 볼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키려나 마음을 졸이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동경했습니다. 그래요, 그랬던 일이 있었죠. 레오나 양과 마을 아이들이 마을 뒤편 언덕에 올라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레오나 양과 친구들은, 이젠 그 정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악의 피조물들에게 붙잡혔었지만, 그 날도 마침 맥주의 소문에 홀려 바인을 방문한 모험가들이 있는 덕에 아이들은 그들의 손에 구출되었습니다. 그들이 부모님들에게 맥주값을 받아갔다는 찝찝한 뒷이야기가 있었지만.


해가 저물어가고, 마차가 멈췄습니다. 하루 종일 마차를 끈 말들도, 뭔가 나타나지 않을까 계속해 주변을 둘러보던 자크 씨도 쉬어야 했지요. 묶고 있던 끈이 풀린 상자와 씨름하던 이들도 마차에서 내렸습니다. 상자를 묶은 끈이 풀려서 상자가 나뒹굴어 다니며 이들의 발목을 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시 묶어두어도 마차가 흔들려 끈은 풀리기 일쑤였고, 결국 포기해 상자가 오면 발만 치웠지만요. 자크 씨는 마차와 말을 나무에 묶어두고, 모닥불을 지피는 마리우스, 올리비에, 그리고 레오나 양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일주일 간 수고 많았네. 아직 사흘은 더 가야할테지만 말야. 앞으로도 이렇게 별일 없으면 좋겠건만..."

"별 일 없을거요. 하지만 아쉽군. 내 칼 솜씨를 못 보여주겠어."

마리우스는 그리 농담하며 작은 나뭇가지로 불을 후볐습니다.

"정말 아쉽네요, 형제님. 저도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서 꽤 슬퍼요."

"아가씨가? 그 철퇴를 그렇게 잘 다루나?"

"신앙의 힘도 실력이랍니다, 형제님. 이세니아께선 제게 은총을 내려주시지요."

"뭐, 그렇겠지. 아가씨는 신을 믿고, 나는 내 칼을 믿고."

마리우스는 그리 대꾸하곤 불이 커지자 좀 더 큰 나무가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자크 씨는 레오나 양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더 북방으로 가야한다고? 개척지에 가는게지? 그곳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네, 레이븐스 마운드에 갑니다. 그곳에 새 교회를 세우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저 같은 파견사제가 할 일이 바로 그거지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 힘을 빌려주는 것."

"흠, 그래. 개척지에는 필요한 것이 많겠지. 지어야 할 건물도 아직 한참 남아있을테고. 알겠네. 자네들, 내일도 수고해주게."

상인답다고 할 법한 질문이었습니다. 사업에 정보는 정말 중요하지요. 자크 씨는 그렇게 말하곤 마차의 앞쪽, 마부석 아래에 마련된 자리에 몸을 뉘었습니다. 슬슬 잘 시간이었죠. 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지만, 레오나 양도 잠을 자기 위해 마차 짐칸에 올랐습니다. 공정하게 하자면 마리우스, 올리비에, 레오나 양 셋이서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서야겠지만, 레오나 양이 치유를 비롯한 주문을 쓰기 위해서라면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하니 불침번은 둘이서만 서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레오나 양이 보수를 받지 않기로 한 것도 있겠지요.


모험을 시작한 레오나 양이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큰 도시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정말 크게 놀랐습니다. 온갖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고, 또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레오나 양과 친구들은 일을 구하려 했지만, 이 어린 친구들을 써주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상인을 겨우겨우 설득해 후불로 받아낸 가죽갑옷과 무기를 들고, 의뢰를 따라 도시 근처 강 건너의 정체모를 악의 존재들을 염탐하러 갔습니다.

놀. 강 건너에 있던 이들은 놀이었습니다. 당연히도 냄새를 맡은 이들이 주위를 둘러보자, 레오나 양과 친구들은 도망쳤습니다. 놀들은 금세 발자국을 찾고선 이들을 따라왔고,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강을 성큼성큼 건너오는 놀의 무리를 보고 레오나 양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지요. 성 이세니아는 그녀의 기도에 응답한 듯 했습니다. 놀들이 강의 절반 즈음을 지나자 물살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네, 열셋 소녀 셋이 놀 무리를 학살하는 기적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한 기적이 있은 뒤, 레오나 양과 그녀의 친구들은 곧장 도시로 돌아가 성 이세니아 교단에 사제가 되기를 지원했습니다. 3년 뒤 무사히 교육을 끝마치고 사제가 되자, 그녀들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떠도는 파견사제가 되었습니다. 일단 따져보자면 모험가 출신이기도 했고, 그녀들이 그것을 원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마차가 출발한 지 여드레, 말들이 이상한 냄새를 맡았습니다. 흥분한 말들이 마차를 끌고 달려나갔고, 마차는 미친듯이 흔들립니다. 자크 씨는 고삐를 잡으며 말들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마차 안의 셋은 상자를 피해 몸을 뒤틉니다. 마차가 멈췄을 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네요. 상자도 전부 무사합니다. 자크 씨가 앞을 보자, 길 위에는 통나무가, 마치 누가 일부러 그리 놓아둔 듯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말들은 아직도 흥분해 있지만, 앞이 막혀있자 그저 제자리에서 콧김만을 거칠게 뿜어낼 뿐입니다.

그 순간, 마차에 화살이 박힙니다. 자크 씨는 몸을 마차 안으로 날려 들어오고, 마리우스, 올리비에, 레오나 양은 몸을 숙입니다. 화살이 말들은 무시한 채, 마차에만 박히는 것이 분명 도적들이었습니다. 드디어 화물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 일을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화살 세례가 멈추자, 자크 씨를 제외한 모두가 마차 밖을 슬쩍 내다봅니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을 보고 있었지요. 오크 다섯이 이들이 보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마차로 다가왔고, 그걸 알아차리곤 마리우스와 올리비에가 자신이 바라보던 방향으로 마차에서 뛰어내려 마차 자체를 엄폐물로 삼았습니다.

올리비에가 먼저 석궁을 쏘았습니다. 석궁은 오크의 어깨에 맞았지만, 그리 큰 타격은 입히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마리우스는 올리비에의 반대편에서 뛰어내려, 양손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오크가 이쪽으로 뛰어오자 그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고, 오크의 왼쪽팔은 그 주인과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오크 하나는 마차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바로 앞에는 자크 씨가 있었고, 레오나 양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오크가 마차로 들어오자마자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철퇴는 오크의 배를 강타했고, 무언가 짜부라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오크는 못해도 인간보다는 튼튼합니다. 오크들은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석궁에 맞은 오크는 창을 쥐고 올리비에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창은 올리비에의 다리를 꿰뚫고는 다시 뽑혀나왔습니다.

"올리비에!"

올리비에가 큰 비명을 지르자 마리우스가 외치며 그쪽을 돌아봤습니다. 그 때, 팔을 빼앗긴 오크가 마리우스를 자신과 같은 꼴로 만드려 시도했습니다. 그래도 마리우스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팔을 들어올려, 옆구리가 베였을 뿐이었습니다. 팔을 잃은 오크 외에 또 하나가 마리우스의 앞으로 오자, 마리우스는 그래도 일행 중 사제가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제를 향해, 또 다른 오크가 마차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레오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철퇴를 휘둘러 오크의 쇄골을 부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올리비에는 고통으로부터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 오크의 머리를 쏘곤, 머리에 화살을 맞은 오크가 쓰러지자 올리비에는 마리우스와 대치하는 오크들에게도 쇠뇌를 쐈습니다. 마리우스를 피해서 쏘느라 화살은 오크를 맞추지 못했지만, 오크들은 움찔했고 이는 마리우스에게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새로 다가온 오크의 턱을 무게추로 쳐서 밀어내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습니다. 오크는 허리가 동강나 쓰러졌지요. 팔을 잃은 오크는 그것을 보고 마리우스에게 죽을 힘을 다해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얻은 새로운 신체 균형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볼품없게 쓰러진 오크의 머리를 마리우스는 힘껏 짖밟아 과일처럼 으깼습니다.

마리우스가 마차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배가 너덜거리는 레오나 양이 오크 하나의 턱을 까부숴 마차 밖으로 쫓아내는 광경이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그녀를 향해 망치를 들어올리는 오크를 차냈고, 레오나 양은 그대로 철퇴를 오크의 머리로, 그가 그녀에게 하려 했던 일을 마무리해주었습니다.


열흘, 마침내 마차가 라이히스베르크에 도착하자 자크 씨는 마차를 지켜준 세 명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선 보수를 지불했습니다. 레오나 양은 약속대로 그 돈을 마리우스와 올리비에에게 나누어주었지요. 마리우스와 올리비에는 치유를 해준 레오나 양에게 인사를 하고, 쉬기 위해 여관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 양은 아직 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넘기고 새로운 상품을 마차에 실던 자크 씨가 그러던 레오나 양을 보았습니다.

"자네, 마차에서 나를 지킨 건 정말 잘했네. 사실 내가 죽어도 말은 남았을테니 자네들은 그걸 타고 이리 왔으면 됐을거야."

"아닙니다, 형제님. 태워주고 보수를 받는 대신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으니까요."

"자네는 보수를 모두 저들에게 주었잖나. 내가 대신 또 다른 걸 주겠네. 말 한 필을 주지. 그걸 타고 개척지로 가게. 나야 말은 새로 사면 되니 말야."

"자비에 감사합니다, 형제님. 말은 봉헌하신 것으로 생각하지요."

"뭐, 그리 받고 싶으면 그렇게 하게. 그럼 내게도 복이 있겠지. 그리고 다음부터 이렇게 사람 살리려 뛰어들기 전에는 꼭 방패부터 들게."

"개척지에 도착하면 방패부터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형제님."

레오나 양은 말을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석양은 갓 스무살이 된 처녀의 등을 고향의 보리밭과 같이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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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한테 물어보니 올려도 된다길래 올려봄

시트 마저 다 쓰고... 10월 24일 즈음에 공개될 9시대 1.2 버전 번역할 준비 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