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교양 수준에서 짧게 이야기함
19세기는 근대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지만 19세기 초반(대충 1801~1840년)까지 외과 의사는 돌팔이 아니면 사람 잡는 도살자 정도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엄청나게 높은 수술 후 사망률 때문이었다. 당시 수술 후 사망률은 국가별 병원에 따라 다르게 집계되었는데, 프랑스는 60%수준, 영국은 40%, 그 외 국가들은 대충 30%선으로 집계되어 있는데, 현대에 와서 판단하기에는 당시 평균적으로 95%정도가 수술 중간이나 그 후에 사망한 걸로 판단하고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1.위생 문제
당시 외과의사들은 의사 가운이 더럽다 =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찾아서 바쁜 의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피딱지가 덕지덕지 앉아있는 의사 가운이 베테랑 외과 의사의 상징이었음. 수술도구 재사용은 거의 일상이었고.
반대로 미신의 산물로 여겨졌던 산파, 전통 약사, 주술사 등은 손씻기를 철저히 하고 환자를 돌볼때 항상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었다.
빈종합병원 산부인과의 조교수 이그나즈 필립프 제멜바이스 박사가 산파와 산부인과 의사의 습관차이와 사망률을 통계낸 결과 손씻기와 옷 갈아입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고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자고 주장했는데, 완전 씹혔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죽을때까지 학계에서 매장 당했음. 미신 믿는다고. 자기도 왜 그런지 원인을 설명을 못했거든.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루이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계속 씹혔음.
2.마취제와 항생제가 없음
마취제인 에테르가 발견된 것이 1846년이고 클로로포름이 발견된게 1847년이다. 그리고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발견된건 1920년.
마취제가 없으니 환자를 묶어놓고 의식이 있는 가운데서 수술하기 일수였고, 쇼크사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
그리고 항생제가 없었으니 패혈증이나 상처감염 등 2차감염으로 쉽사리 죽었고.
이때 외과의사들은 수술 후 상처부위에 생긴 고름의 모양으로 수술의 성공 여부를 판단했는데
연쇄상 구균에 의해 붉게 부풀어올라 원형으로 퍼지는 고름의 경우 성 안토니오의 불이라고 불리며 사망률 100%를 달리는 고름이었고 반면 포도상 구균이 번식 할 경우에는 찐득거리는 하얀 고름이 일주일 정도 분비된 후 차차 상처가 아물어 갔는데 이건 건전한 고름이라고 불리며 성공적인 수술의 증거로 여겨졌다.
(사실 현대에 와서는 포도상구균도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키는 해로운 균으로 분류되는데, 당시에는 다른 균에 비해 포도상구균 감염시에 사망률이 적었다고 함)
그렇다고 합니다.
미안, 그냥 심심했어.
성 안토니오의 불 이야기는 처음 봤네. 알려줘서 고마워!
재밌게 읽었엉!
위대한 과학자 갓스퇴르님 ㅠㅠ
무조건 죽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