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추적극을 해본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 예전에도 턀갤에서 몇 번 이야기가 나온 바지만,

던전 크롤링 시나리오가 잘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우리가 던전 크롤링에 익숙하기 때문임.


현실적으로 로그는 레인저보다 파티에 흔히 존재함.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부잣집 문을 따고 비밀 문서를 가져오는 시나리오를 경험해 봤을 거라고.

바꿔 말하자면, 로그 플레이어가 없을 경우라도 마스터 눈치를 보고 '혹시 이 집의 집사 이름을 알고 있나요?' 라고 묻고,

마스터가 '아, 그렇죠. 술집에 물어 보니, 그 사람 카지노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하던데...' 라고 받아줄 수 있다는 거임.


경험과 지식은 시나리오가 망가졌을 때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근데, 대부분의 PL들은 야생에서의 추적은커녕 보이스카웃 경험도 없을 거라고.



마스터가 몇 주 전부터 황야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추격전을 테마로 한 시나리오를 짰음.

그런데, 바로 전 주에 불의의 크리티컬로 파티에 유일했던 레인저가 죽고,

PL은 순진하게 '이번에는 몽크 좀 해 보려구요' 라고 시트를 짜 온다면, 이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겠냐?


로그 없는 도심 플레이보다, 레인저 없는 야생 플레이가 훨씬 더 난감해진다고.

레인저의 추적 능력은 약한 게 아님. 사실 문제는 그거라고 생각함.

너무 시나리오적으로 강해서, 이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짤 수밖에 없음.



설사 마스터가 엄청난 생존주의자여서, 정말 리얼하게 야생의 추적을 그려 낸다고 해도,

그쯤 되면 로그가 이런 소리 하기 시작할걸. "우린 쓸모가 없다, 가서 쌀나무나 베어오자 도시 촌놈들."

야생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플레이어는, 웬만큼 마음 맞는 사람 모으지 않고서야 한 명은 나온다고.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던전 크롤링이나 도시 하나를 모험의 무대로 삼는 류의 시나리오에 익숙함.

그리고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음. 애초에 제목이 던전스 앤 드래곤스고, 우리는 도시에서 사는걸.



사람들이 안 하는 건, 어려워서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대다수가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P.S. 그런 의미에서, 레인저를 하고 싶으면

몽골풍의 대초원에서 대족장 '칸'을 목표로 삼은 엘프 청년과, 그의 스승인 샤먼의 이야기 같은 게 낫다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