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 있었던 일이다.


매일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방탕한 대학생이었던 나지만 그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보람찬 하루 일과를 보내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때는 22시에서 23시로 넘어가는 심야. 곤히 자고있던 나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젊은 남자 두 명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였는데 이새끼들이 술이라도 처먹었는지 건물 외벽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 목소리로 처 웃고 떠들고 있었다.


곤히 단잠을 자던 참에 깨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어떤 새끼들이 밤늦게 떠드는가 싶어 창가로 가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놈들 떠드는 소리는 귀에 박히도록 쨍쨍하게 들리는데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말이 중국어나 일본어, 혹은 영미 유럽 쪽 언어나 동남아시아 쪽 언어였다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내가 들어본 언어는 아니었다.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였고 기숙사 사감 일을 하면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간단한 회화정도는 알아들어야 했거든.


그 때 얄팍하게나마 여러 외국어를 배우기까지 했는데 그 두 놈이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 소름끼치는 건 그 놈들이 구사하는 억양이 분명 한국어였다는 것이다.


억양이나 말투는 한국어랑 흡사한데 도무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두 번 정도 겪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100편이 넘는 아니메를 주구장창 보다가 게슈탈트 붕괴 비슷한게 일어나서 한국말이 한국말 처럼 들리지 않았을 때.


다른 한 번은 군대 있을 때 경기 북부 사투리(파주나 의정부 쪽)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 때랑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회화를 듣더라도 그 속에 담긴 감정이나 분위기가 파악되면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흐름이 읽히는 법이다.


심지어는 벙어리들이 수화를 하는 모습을 봐도 대화 분위기나 감정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창 밖에서 들려오는 그 대화에선 그런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하는 말을 기계적으로 흉내내는 것 처럼 모든 것이 어설프고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다.



내 방에서는 자취방 건물 마당이 내려다보인다.


마당에는 시멘트 바닥의 작은 공터가 있고 그 위에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통들이 늘어서있다.


한 밤 중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취생들이 많아 공터 위에는 가로등 불이 밝혀져있다.


덕분에 한 밤 중에 떠들던 그 놈들 모습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에 사람은 커녕 사람 비슷하게 생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터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고 공터에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 만 하거나 그보다 약간 작은 뭔가가 네발로 기어다니며 넘어진 쓰레기통에서 쏟아져나온 쓰레기들을 처먹고 있었다.


그것들은 쓰레기 속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둘이 번갈아가며 고개를 처들고는 그 알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현기증이 나서 창문을 모조리 닫아버리고 냉장고에 굴러댕기던 소주 한병을 단숨에 나발 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 때 본 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