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ith Herrin의 『Byzantium』, Warren Treadgold의 『History of the Byzantine State and Society』, Shaun Tougher의 The Eunuch in Byzantine History and Society』, 그리고 Georges Duby의 글 몇 개를 보고 대충 짜집기한 내용임. 대체로 Herrin의 글에 일부 내용만 보강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문서가 섞여서 이게 최종본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군. 전공이 비잔틴사인 건 아닌데 그냥 취미 삼아서 보다가 플레이에 쓰려고 정리해뒀던 거.


오래 전부터 로마인들은 거세를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동로마 제국 초기에 환관은 주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된 이민족들로 충당되고는 했다. 그러한 관행은 제국 내에서 거세하는 것을 불법화시킨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게 해서 거세된 하인에 대한 수요는 외국인 포로를 국경 밖에서 거세하여 데리고 오는 방식으로 충족되었다. 중앙아시아, 아랍, 발칸 지역의 포로들은 거세를 당하고 콘스탄티노플의 노예시장으로 끌려와 동로마 제국 곳곳으로 팔려갔다. 동로마 제국의 부유한 대가족들은 거의 모두 집 안에 고자 하인을 두고 있었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안주인 수발, 아이들 교육, 매개자 역할이었다. 크리소발란톤 수녀원의 성녀 이레네와 에우프로시나도 거세된 하인들을 매개로 해서 친척 및 황궁과 연락을 취했다. 이는 물론 고자의 성적 불능이 그들을 보다 믿을 만한 존재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자들은 자기 자식을 낳을 수 없었고,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데도 지장이 있었으므로, 애정 문제로 주인을 속이거나 배신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확산으로 칼리프 궁정에서도 노예와 환관의 수요가 급증하자 거세된 노예의 공급은 분산되기 시작했다. 로마 교회의 교황이 노예무역을 금하는 칙령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10세기에 프랑스 북부에서 에스파냐까지 이르는 거세된 노예를 밀매하는 무역망(노예상들은 베르됭에서 노예 소년들의 고환과 음경을 절제한 후 이베리아의 우마이야 왕조에게 데리고 가 판매했다)이 생겨났던 것은 거세된 노예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 정도로 증가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곧 환관의 희소적 가치를 증대시켰고 동로마 제국 환관들의 출신성분도 크게 바꾸어놓았다. 일부 그리스인들은 아들이 황궁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불법적으로 거세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환관이 된 이들은 전통적인 환관들과는 달리 자유민인 데다 그리스어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또한 어떤 환관들은 고결한 핏줄을 타고 난 이들이기도 했다. 퇴위된 황제나 반역자의 어린 남자 자식과 친척들은 역적의 대를 끊는다는 이유로 때때로 거세를 당했다. 황제는 계승자를 배출할 수 있어야 했으므로 거세는 이런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황제 후보군에서 배제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환관들은 차츰 잘 배운 자유민 출신의 그리스인들로 대체되었다.


  환관은 믿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신뢰에 따라 동로마 제국의 황족은 점차 자신들과 관계된 은밀한 임무를 환관에게만 맡겼다. 물론 이 역시 대체로 환관이 사욕에 휩쓸리지 않고 황실에 충성을 다하리라는 가정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동로마 제국의 황실은 다양한 종류의 환관을 보유하고 그들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다른 직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 거세된 환관은 '수염 없는 남자'로 불렸다. 성인이 된 뒤에 거세된 환관은 당연히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이러한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직무를 맡기는 했지만, 어느 경우든 동로마 제국의 환관들은 대개 황실에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동로마 제국의 환관들은 유독 사회에 통합이 잘되었다. 그들은 궁정에서 일하는 것 외에도 제국 전역에서 교회, 행정부, 군대, 명가(名家)의 주요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환관들은 황제를 제외한 모든 직위에 임명될 수 있었다. 심지어 몇몇 환관들은 고자는 나약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군대의 지휘관으로도 임명되었다. 환관 출신의 사령관에 대한 언급은 14세기와 15세기에만 뜸할 뿐 동로마 역사 시기 내내 등장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세에 이탈리아 정복을 완결지은 아르메니아인 나르세스 장군의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슬라브족과의 전투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 페테르 포카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오기 전에 이미 거세된 노예 출신의 환관이었지만, 니케포로스 2세 밑에서 근위대 대장을 지내고 그 후에는 동부전선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0세기 말에는 바실리우스 2세가 귀족 출신의 환관 니콜라오스를 A.D. 995 알레포 공격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성직은 군사에 비해 환관들이 자주 진출하는 분야였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A.D. 325 니케아 공의회에서 스스로 거세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교회법이 발포된 후로는 이러한 관습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는 여전히 거세된 사람도 성직자와 수도사로 받아들였다. 거세된 이들 중에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거나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가 있었다. 거세된 사제와 수도사는 종종 수녀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일요일에 성찬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수도원의 설립 헌장에는 수녀원에 봉직하는 성직자의 자격을 거세된 남자로 제한하는 조항이 명시되기도 했다. 물론 어떤 환관들은 때때로 카스트라토 성가대에서 음악적 재능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러나 환관들의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분야는 단연 궁정의 업무였다. 궁정의 몇몇 직책들은 오직 환관들만 맡을 수 있었다. 예컨대 황제의 시종장으로 모든 중요한 행사를 준비했던 프로토프라이포시스토스(protopraipositos)는 주로 환관장이 맡게 되는 직책이었다. 그 외에도 황제의 침실 문간에서 잠을 자며 황제의 침전을 담당한 파라코이모메노스(parakoimomenos), 황제의 의상을 담당한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protovestiarios), 황제의 마부장인 프로토스트라토르(protostrator)를 비롯하여, 황제 부부의 식당과 술 저장고를 담당하는 등의 황실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직책에는 대개 환관들만 진출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환관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황제에게 임의적으로 접근하고 쉽게 직접 말을 걸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황제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도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환관을 '결손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존재들로 인식되게 했다.

 실제로도 일부 과도한 힘을 가진 환관대신들은 황제를 압도하고자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9세기의 사모나스, 10세기의 바실리우스 레카페노스, 11세기의 요한네스 '오르파노트로포스,' 로마노스 1세의 서자였다 하여 '노토스(nothos; 서자)'로 불리는 바실리우스 레카페노스 등 정치적으로 야심만만했던 환관들은 부지기수였다. 이들은 황제 직속 기구들을 통제하며 실질적으로 제국을 통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능한 환관들이 궁정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황실이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탓이었다.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환관들은 예술의 후원자, 외교관, 장군, 행정가, 교사, 작가, 신학자, 성직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실무권한까지 손에 넣었다. 동로마 제국 내에서 환관이 누린 높은 위치는 10세기 초 레오 6세가 반포한 칙법들에도 반영됐다. 이 칙법들에는 환관이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양자를 들여 상속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환관에 대한 대우를 점진적 개선해야 했을 정도로 그 수요와 의존성이 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록 궁정에서의 입지도 튼튼하고 사회에서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며 법률적으로도 신분을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에서도 환관들은 공공연한 차별의 대상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환관들은 단지 다른 제국의 환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는 것일 뿐이었다. 환관들이 지닌 정치적인 힘은 누구도 이들을 앞에서 무시할 수 없게 했지만, 많은 이들이 환관이 지닌 도덕적 약점, 탐욕, 음탕함, 야망, 유약함, 가증스러움,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했다. 이러한 환관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은 오랜 세월 동안 토론거리가 되었다. 많은 환관들은 거세도 순결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자신들이 거세를 통해 타인들에게도 순결에 대한 의식을 각성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환관들은 자신들을 성징을 잃었다는 점에서 무성의 존재인 천사에 비견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적으로 환관에 대한 인식은 호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동로마 제국에 있어 환관은 필요악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