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기운이 있어서 일찍 잤다가 너무 일찍 깨버린 김에 뻘글ㅇㅇ


나는 나이가 드니까 캐릭터의 과거 설정 디테일하게 하는 게 귀찮아졌음. 그 대신 마스터에게 내가 생각해봐도 좀 귀찮겠다 싶을 정도로 캠페인의 분위기랑 전형적인 갈등 구조 같은 걸 어떤 식으로 구상하고 있냐고 샅샅이 캐물음. 예를 들어서... '판타지성의 농도'나 '현실성' 같은 문제. 한국 막장 드라마랑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를 비교해 보자고. 전자는 마법 같은 거 없어(임x한은 그런 거 좋아하지만 일단 제끼고). 후자는 드래곤과 마법이 나와.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 양상이 현실적인지를 따지면 후자 쪽이 압도적이거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스터가 의도하는 그림과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최대한 일치시킴.


그런 다음에 캐릭터의 핵심 컨셉(예를 들어... WOD 뱀파이어라면, '추하게 뒤틀려 버린 자신의 외관과는 대비되는, 영원히 변치 않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스페라투 예술가')을 하나 잡음. 그걸 기반으로 해서, 마스터가 설명해 준 정보에 따라 이 캐릭터의 주된 감정적 동인이 무엇인지(이 노스페라투의 경우 불멸의 미에 대한 집착), 캠페인에서 자주 나올 만한 요소들 중(뱀파이어 사회의 정치적 암투와 배반, 음모 등)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이 캐릭터를 강하게 자극할 만한 게 무엇인지, 자주 제시될 만한 윤리적 딜레마의 예를 두 세 가지 들고(이거 중요. 만일 마스터가 저기에 딱 맞는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았어도 이걸 보고서 끼워넣을 수 있거든. 마스터가 생각한 그림에 맞지 않는다 해도 그 경우에는 최소한 '이런 상황은 잘 안 나올 거임ㅇㅇ'이라는 조언은 들을 수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 캐릭터는 어떤 선택을 할 지에 대해 문서화하여 정리함. 물론 플레이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그에 대해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할 거다 저렇게 할 거다를 일일이 정리해 둘 수는 없는 거긴 한데, 최소한 마스터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캐릭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컨펌을 줄 수 있을 만큼은 한다.


구체적인 백스토리는 저런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대강 이 캐릭터의 라이프로그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짧게 쓴다. A4 반 페이지에서 길어봤자 한 페이지 정도. 어차피 길게 써봤자 장문의 텍스트를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도 하고, 플레이 상에서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도 어려운 과거 설정으로 강력한 장점이나 메리트, 유니크한 장비를 덥석 집어가는 거는 나 자신부터가 별로 안 좋아함. 결과적으로 백스토리 설정은 짧은데 거기에 부속되어 있는 핵심 컨셉, 시나리오 상 써먹힐 만한 후크 관련 설정과 그것이 어떻게 써먹힐지에 대한 나 자신의 예상(내지 기대)를 정리한 텍스트 분량은 제법 많아짐. 


이 상태에서 플레이를 시작하고, 플레이 도중에 관심 가는 NPC나 장소, 물건 같은 게 나오면 마스터한테 '그거 내 캐릭터랑 관련 있다고 해도 되냐? 이러저러한 이유로 의미가 있을 거 같고,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써먹힐 거 같다'고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걸 즉석에서 과거사에 낑겨 넣음. 마스터가 별 말 없으면 은근슬쩍 '아는 장소다, 전에 여기 왔을 때 이러저러한 일을 겪었다'라고 플레이에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싶은 선에서 눈치껏 서술해 버리기도 한다.   



한줄 요약:플레이에서 써먹힐 가능성도 별로 없는 과거사 설정 길게 하느니 걍 캐릭터의 핵심 기둥을 명확히하고, 캠페인에 어울리는 후크 여럿 설치해 놓는 게 좋다. 굳이 백스 길게 쓸 때는 그냥 그거 자체가 재미있을 때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