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봐도 딱히 합의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랑 별 상관이 없어. 그리고 다들 하는 방식도 다르다.


마스터가 플레이어가 모르는 시나리오(줄거리?)를 세세하게 짜고 + PL이 모르는 비밀도 알고 있느냐?


아니 애초에 마스터가 필요한가?


가 좀 중요하다.


던전월드는 시나리오를 짜지 않지만 플레이 방향은 합의해서 정하지. 첫세션에서도 플레이에서도 질문도 많이 하고... 아무래도 협력적으로 설정을 만든다.

하지만 설정을 정하는 건 기본적으로 마스터의 몫이다. PC설정을 반영하고, 질문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질문이 필수는 아니다.

"플레이하며 알아낸다"가 전제라서 하다보면 마스터도 모르는 전개가 나온다. 룰 북만 읽어봐도 아는 거지. 다들 던월이 즉흥이라서 어렵다고 하잖아?

"플레이어가 아니라 캐릭터에게 말을 건다"고 해서 플레이 외적인 대화도 자제하길 권하는 편이다.

마스터가 숨기는 정보도 있고, 준비하는 것들도 있다. 국면만 해도 공개 안하는 게 기본이지. 그리고 어떤 일이 나올 법한지는 '마스터 액션'으로 미리 정해두는 편이다.


사실 던전월드는 준비 안 하고 즉흥하는 룰이 아니다... 정말 즉흥해도 되긴 한다. (나도 자주 하지...)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게 뭐 있겠나. 플레이 방향, 줄거리, 캐릭터 설정만 열어두면 된다.

마스터가 뭘 준비하는지는 던전월드 가이드의 캠페인 국면 예시나 던전 스타터를 한 번 보면 이해가 쉽다. 워게임 전투랑 준비의 방향이 다를 뿐이지, 던전월드 마스터는 준비를 좀 해야 한다.


반면에 페이트 코어도 처음 플레이 준비할 때 합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장르도 세계도 캐릭터도 함께 정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마스터 혼자 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여전히 마스터가 많은 걸 정한다. 세계의 자세한 설정은 기본적으로 마스터의 몫이다. 던전월드처럼 질문을 하거나 물어보기도 하지만... 선택이다.

시나리오를 짜긴 하는데 적 + 도입부 느낌이다. 이건 캐릭터 면모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이 쪽도 줄거리나 어떤 장면이 나와야 한다고 정하지 말라고 한다. 좀 즉흥적이다.

게다가 비밀도 없다. 일단 괴물의 면모 같은 건 PL에게도 다 공개한다. 적의 면모를 발현하거나 해야 하니까. PC는 모를 수도 있지만 PL은 안다.



예를 들어 용에게 [두꺼운 가죽과 부드러운 배]같은 설정이 있다고 하면, 던전월드에서는 비밀인데, 페이트에서는 공개한다. 작지만 큰 차이다.



13시대는 설정에 여백이 많다. 13개 표상이랑 지역 설명도 아주 간단하고... 사실 그 자체로는 플레이 못한다. 그 지역이 어떤 곳인지 같은 걸 직접 정해야 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묘사하는 부분도 많고... "묘사를 시키라"고 시나리오에 적혀 있기도 하다.

시나리오? 그렇다. 상용 시나리오도 있다. 줄거리가 있단 말이지. 하지만 PC 설정에 따라 시나리오도 고칠 걸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엘돌란의 그림자]에는 황제의 아들인 사제가 나온다. 그러면 도입부에 만나기로 한 NPC가 사실 왕자의 여동생이라던가... 그 공주는 대마도사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던가 하는 설정을 넣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진행하는데도 그냥 듣보잡 모험가 3명이 수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러가지로 차이가 생긴다. 왕자가 누군지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좀 직위가 있는 분들은 왕자가 수사하는데 함부로 막기가 어렵겠지. 플레이하다가 뒷골목의 한 노숙자도 예전에 수도에 살 때 왕자를 본 적이 있었다던가. 그런 설정이 계속 생기는 거다.


당연히 정해둔 줄거리도 변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나리오들도 스타일이 좀 다르다. 엘돌란은 비교적 자세하고 이야기거리도 많은 편이지만... 시체왕의 왕관은 정말 데이터랑 전투랑... 핵심만 있다. 나머지 여백은 직접 채워야 한다.



피아스코는 말할 필요도 없지. 마스터가 없잖아! 그냥 플레이 세트 가져다가 즉석에서 설정짜고, 플레이도 한다.


이건 연기자랑 작가들이 쓰는 인터뷰도 컴패니언이 많이 나오고... 내 주변에서도 작가나 장르 덕후들이 주로 하는듯 하다.

 연기자랑 작가들이 피아스코를 어떻게 하는지는 윌 휘튼의 유투브 영상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영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설정/해결을 나눠뒀다는 거다. 장면의 도입부를 내가 정하면 다른 사람들이 해결을 정한다. 설정을 한 뒤에는, 캐릭터 시점에서 플레이(rp?)를 한다. 그런데 짜고 치는 게 아니다보니 어떤 결말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분위기를 봐서 결말을 정해준다.

내 캐릭터가 뭘 할지를 남이 정하게 하기 싫다? 그러면 설정을 고르면 된다. 하지만 내 캐릭터가 망할지 잘 나갈지는 남들이 정하게 된다. 해결을 고르면 반대지.


'모두' 합의해서 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


평온한 한 해 도 매우 이야기 중심적인 룰이다. 줄거리도, 마스터도 없다! 그런데 협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the QUIET year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대화를 하면 안된다. 금지다. 룰이 그렇게 정해놨다.

그래서 일부러 갈등을 조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면이 있다.


자세한 설명이 없는 이유는 안해봤기 때문이다. 모르는 걸 말할 수는 없고... 다음!



폴라리스도 비슷하다. 마스터도 없고 심지어 주사위도 잘 안 쓴다! 굴릴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식 문구라는 걸 써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폴라리스는 4명이 돌아가며서 주인공을 맡는다. 내가 주인공인 장면에서 나를 '마음',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을 '후회', 양 옆에 앉은 사람은 '달'이라 한다

후회는 적이다. 두 달은 심판을 맡는다.

            보름달

마음(나)         후회 (적)

            그믐달


적과 심판? 합의하고 협력하는 화목한 룰이 아니었나? 하하하. 폴라리스는 기본적으로 마음과 후회가 선언을 주고 받으면서 '갈등'을 조장하는 룰이다.

상대가 받아들일지 말지... 불확실한 선언을 하면서 밀어붙이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합의에 의해 진행된다. 자유 플레이라고도 하지.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갈등"이다. 의식문구가 등장하는 시점이지.


마음 A "브루스는 악마의 등에 칼을 꽂아넣어. 그리고 악마는 영원히 잠들게 되지."

A는 여기서 악마를 봉인하고 영웅이 되는 브루스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후회 B "하지만 그러려면 악마의 등에서 악귀들이 뿜어져 나와야해. 악귀들은 세상으로 퍼지겠지."


이게 바로 의식문구다. "그리고 또한"이나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으리라"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등등... 다양하게 있지. 이 의식문구들은 기본적으로 갈등을 조장한다.

자기 캐릭터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룰...이라 해도 갈등은 필요하다. 갈등 없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알피지는 게다가 함께 하는 놀이라서 내가 정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거기서 재미가 나온다. 의외성의 재미! 재미는 주사위에서도 나오고, 플레이어의 쩌는 설정에서도 나오고, 특이한 룰에서도 나오고,때때로 계획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재미를 위해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룰에 따라 모두 다르다. 짜고 치는 플레이와 마스터 레일로드만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대부분은 저 둘 중 무엇도 아니다.


새로운 룰을 사서 읽어보고... 플레이나 좀 더 해보도록 하자. 그러면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