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그냥 게임 설정의 차원에서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썼다. 나는 별로 PC함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물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게임의 틀을 넘어선 실제 PC함에 대해서는 열심히 댓글 달아봤자 그냥 넘긴다.


 참고로 게임 진행하는 데 시스템적으로 적용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냥 재미용 설정이라서 쓰든 말든 수용자 마음대로인 부분이다.




 아마 다들 알고 있겠지만, WoD W:tA에는 겟 오브 펜리스라는 늑대인간 부족이 있다. 얘들은 늑대인간 부족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동시에 강함을 숭상하는 부족이다. 느낌은 스칸디나비안-게르만 늑대인간. 진짜로 중세 암흑기에는 바이킹처럼 돌아다니면서 세계 곳곳을 약탈하고 그러다 조우하는 웜의 종복들을 찢어죽이고 그랬다.


 겟 오브 펜리스들 사이에서는 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은 리타니를 어기는 걸 제외하면 거의 무엇이든 허용된다. 심지어는 무슨 짓을 해서든 강함을 증명했다면 그 행위는 존경을 받는다. 호전성은 곧 자랑스러워 할 만한 덕목이다. 이 호전적인 성향은 피아구분을 안 가리기 때문에 같은 늑대인간들 사이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고대부터 다른 늑대인간 부족이 약한 틈을 보이면 떼로 가서 두들겨 패고 쫓아내서 케언 뺏는 건 아주 흔한 일일 정도였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약한 혈통은 솎아내야 한다"면서 나치에 동조하기도 했는데, 그 일로 부족 내에서도 친-나치파와 반-나치파가 나뉘어서 서로 죽고 죽였다. 그 때문에 21세기에는 수도 줄고 늑대인간 부족들 사이에서 발언권도 꽤 줄어서 세력이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겟 오브 펜리스가 네오나치 사상에 물들어있기도 하다.


 이처럼 호전성과 힘을 숭상하는 부족의 문화 탓에, 겟 오브 펜리스 사이에서 아룬(Ahroun; 늑대인간들 중의 전사 계급으로, 보름달이 뜬 아래 태어나 가장 호전적인 기질을 가진 늑대인간들이 아룬이 된다)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이들의 부족 전승에 따르면 최초의 늑대인간들 중 자기네 선조가 최초의 아룬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아룬이야말로 늑대인간의 본질인 전투에 가장 충실한 '순수한 형태'라고 보며, 다른 어스피스들은 그저 늑대인간들이 목적에 제대로 봉사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보조적 역할'들이라고 본다. 겟은 이러한 아룬을 '모디(Móði; 토르의 아들 이름인 동시에 "용감한"이라는 뜻)'라고 부르고 그 역할을 거의 신성시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겟 오브 펜리스 부족 내에서는 근세 이래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세에만 해도 겟 오브 펜리스는 의외로 가장 성별에 따른 차별이 적은 부족들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에서 지위와 존경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전투에서의 힘이었으므로, 강하기만 하다면 남자든 여자든 대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씨족 단위의 사회를 이루어 얼어붙은 황량한 야생에서 살아가던 시절이 지나고, 겟 오브 펜리스 중 많은 이들이 독일에 정착해 '문명화'됨에 따라서, 이들은 인간사회의 많은 문화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이 받아들인 문화 중 하나가 바로 남존여비였다.


 겟 오브 펜리스의 남존여비 문화는 수세기에 걸친 시간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부족 내부에 녹아들었다.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얘기다. 호미드 태생 늑대인간은 대개의 경우 인간사회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자신이 속했던 사회의 문화를 내재화한 채 자란다. 후에 자기 정체를 깨닫고 늑대인간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해도, 결국은 자기가 어린 시절 내재화한 문화적 틀을 기초로 새로 배운 문화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늑대인간이라도 그 시대의 지배적 문화에서 자기만 예외일 수는 없던 것이다.


 다만 특별한 것은 겟 오브 펜리스는 남존여비 문화를 자기들 부족의 문화로 더욱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강함을 최고 가치로 치는 문화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고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은 여성 부족원의 지위를 극단적으로 열화시켰다. 서서히 여성은 부족 내에서 전투원의 역할을 기대받지 않게 됐다. 대개의 겟 킨포크 여성들은 그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씨받이로 간주됐다. 그 탓에 여성 겟 오브 펜리스 늑대인간들은 첫 각성 이후 대단히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자신이 싸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여성 겟 늑대인간들은 결국 남성 전사들을 보조하는 주술사나 치유사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물론 근세~근대에도 여성 겟 전사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 그들은 '소수의 특별한 존재들'로 인식됐다. 그들은 자연법칙이 정한 규칙, 즉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존재이지 싸우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무시하고 남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오만불손한 자들로 규정됐다. 물론 이런 여성 전사들은 자주 경멸의 대상이 됐고, 힘으로 지도자의 지위를 쟁취한다 해도 빈번한 모략과 도전을 당해야 했다.


 겟 오브 펜리스의 남존여비 문화는 고의로 강화되기도 했다. 그러한 조치 중 가장 중대했던 것은 바로 '여성은 모디(아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겟 오브 펜리스들에 따르자면 여성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성별이 아닌데, 아룬은 싸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어스피스이므로, 여성이 아룬이 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데이터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nPC 중에도 겟 오브 펜리스 여성 아룬은 굉장히 드물다. 아무리 봐도 아룬처럼 생긴 근육 떡대 깡패도 필로독스나 씨어지다. 하지만 어스피스는 기본적으로 한 늑대인간이 태어난 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여성이라 해도 보름달 아래서 태어났으면 그냥 아룬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겟 오브 펜리스는 "자연적으로 겟 오브 펜리스의 여성은 보름달 아래서 태어나지 않는다(다른 부족에 대해서는 겟 오브 펜리스 만큼 순수한 전사 부족이 아니라서 여자 아룬도 난다고 함)"고 주장하지만, 이건 척 봐도 개소리고...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가 W:tA 단편집인 When Will You Rage에 실린 Coyote Full Moon에 나온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욱테나 부족의 셉트에 '달의 창(일방향 차원문을 열어 전사들을 침투시키는 공습용 주술의식)'이 꽂힌다. 이 빛의 기둥에서 나온 것은 어느 겟 오브 펜리스 전사들. 즉각 방어태세에 돌입한 욱테나 부족의 늑대인간들은 이 침입자에게 무슨 이유로 이렇게 불손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인지를 묻는다. 그에 대해 겟 오브 펜리스 전사 중 우두머리는 지금 이 욱테나 부족에 편입된 여성 중 하나가 사실은 겟 오브 펜리스 부족의 도망자이고, 자신들은 그를 잡으러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야기인즉 어느 젊은 겟 오브 펜리스 씨어지 여성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어떤 미친소리를 듣고 자기가 아룬이라고 믿어서 문제를 일으키다가 도망을 가서 지금 여기 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족의 수치인 이 여자만 포획하면 자신들은 평화롭게 떠나겠다고 한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결국 늑대인간들은 문제가 되는 여자를 찾아 진실을 가리는 재판을 벌인다. 결국 그레이트 펜리르까지 소환한 재판 결과 드러난 것은 이 여성이 아룬이 맞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겟 오브 펜리스들은 고의적으로 그 여성이 태어난 날을 속이고 씨어지로 양육했던 것. 쉽게 얘기하면 태생이 Int 딸리고 Str이랑 Con은 개쩌는 전사 캐릭터인데, 무기 다루는 법이나 육탄기술 등은 안 가르치고 마법사 주문만 줄창 가르친 것이다. 그 여성은 겟 오브 펜리스들 사이에서 아룬 기프트를 배우는 것을 금지 당한 채로 씨어지 기프트만 배웠고, 그래서 당연히 씨어지로의 실력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여성 겟이 진실을 말해줘서 고향 셉트를 탈출한 끝에 욱테나 셉트로 흘러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진정으로 아룬이었음이 드러나자, 겟 오브 펜리스들은 분노해서 그녀를 부족에서 영구히 추방한다. "어쩌면 네가 정말로 모디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결코 겟 오브 펜리스가 될 수 없다. 너는 앞으로 영구히 부족에서 추방될 것이다."


 이 소설은 겟 오브 펜리스가 얼마나 아룬을 신성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여성이 아룬으로 인정받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는 그냥 여성에게 진짜 어스피스를 속였을 뿐이다. 즉 그 여성은 자기 어스피스가 뭔지 모르는 채 씨어지로 교육을 받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아룬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더 강한 조치가 가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든다면 어떠한 명분으로든 Rite of Renunciation을 반쯤 강제로 실행시켜서 여성 아룬의 어스피스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한다면 그 여성은 다시는 아룬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룬 기프트를 배울 수도 없게 된다. 이를 테면 아룬으로서 거세된다고나 할까.


 이처럼 집요한 여성에 대한 겟 오브 펜리스 전사사회의 박해는 결국 부족 내에 한 집단을 탄생시켰다. 이 캠프(Camp; 부족 내에서도 특별한 목적을 공유하는 일종의 이념공동체 내지는 정당)는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이라고 불리는 여성 전사들의 집단이다.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은 겟 오브 펜리스 내에서 여성 전사들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결사다. 이들은 다른 여성 겟에게 용기를 고무시키고 자기 권리를 찾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부족의 전반적인 시각은 곱지 못하다. 호미드 태생의 장로들은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이 약해빠진 젊은 여성들이 자기 역량도 모른 채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스칸디나비아의 가장 전통적인(그래서 고대와 중세 암흑기의 성적 평등이 어느 정도 계속 지켜지고 있는) 셉트나 루푸스 태생의 늑대인간들은 딱히 여성에 대한 차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이 웜과 싸우는 대신에 부족 내부의 정쟁으로 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만약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전사들이라면, 부족 내부에서 불화를 키울 것이 아니라 나가서 싸우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뭐... 사실 애초에 여자가 아룬이 된다는 것도 인정 안 하는 사회니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여건도 안 주는 셈이긴 하지만... 어쨌든 결국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의 명분과 기능은 부족원 대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은 블랙 퓨리와는 차별화된다. 사실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은 블랙 퓨리를 거의 증오한다. 이들은 남성에 대한 뒤틀린 증오심으로 미친 블랙 퓨리들이 겟 오브 펜리스 내부의 '동족'들을 꼬드겨 블랙 퓨리 부족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적인 차별을 받고 멸시를 당한다 해도,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겟 오브 펜리스인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단지 공정한 대우를 원할 뿐이지, 여성이기 때문에 보호받거나 권익을 신장받는 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이야의 발키리들'은 블랙 퓨리와는 차별화되게도 이렇다 할 페미니즘 운동과 연관되는 일이 거의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러한 설정들은 딱히 게임 내에서 규칙에 따라 이득이나 제한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배경 설정일 뿐이다. 그러나 겟 오브 펜리스 내부의 마초이즘은 꽤나 자주 캐릭터 스토리로 활용되는 편이다. 5랭크 남성과 3랭크 여성 사이에 메티스 쌍둥이가 생겼는데, 여성이 남성의 지위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혼자 덤태기를 쓰고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리지 않은 채 얻어맞으며 도망가 애 키우는 얘기도 나오고 말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라,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자기 의무를 다하고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가 좋아서 이 설정은 마음에 든다. 그럼 이만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