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서사갖고 매달리는 거 보다 떠오른 트레물루스에 대한 잡생각. 

소개는 대략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26945를 참조하면 될 거 같다. 


키퍼 체제 

크툴루 계열 RPG의 마스터를 "키퍼/수호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폼나서가 아니고.... 원래 비밀의 수호자(Keeper of the Arcane Lore)에서 나온 명칭이다. 크툴루 계열 RPG는 거의 대부분이 어떠한 "초자연적인 비밀"이 감추어진 상태에서 시작하고, 플레이어들이 키퍼의 유도를 따라서 그 비밀을 풀어서 상황을 정리하거나 혹은 리타이어해서 이야기가 어둠 속이나 삼천포로 빠지는 전개가 전제된다. 트레물루스도 그 점에서는 다른 크툴루 계열 RPG와 똑같기 때문에 일단 키퍼가 틀을 잡아주는 게 전제되는 물건이고, 그만큼 키퍼의 영역을 플레이어들이 건드리는 걸 충분히 막아볼 여지가 나옴. 반대로 키퍼 역시 그 부분은 자기 손으로 때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현실적인 배경

크툴루 계열 작품은 윳툴루를 제외하고... 아니 어쩌면 윳툴루도 그럴지 모르겠다만 거의 대부분 멀쩡한 지구 내지는 미래의 태양계를 배경으로 하는 물건이므로, 온갖 중2병 병맛 설정을 붙여서 들고 오면 키퍼가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해 보실 수 있겠나요"등의 발언으로 비교적 쉽게 제압할 수 있다. 물론 자기가 말하는 걸 실연해 보이거나 실제로 가능하다는 예시를 제시한다면 상황에 따라서 인정해 주자. 다만 무성이나 자웅동체는 진짜로 이 물건 캐릭터 성별 선택지에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그거는 따로 토 달지 마라.  


플레이어간 백스토리 합의

던월의 인연 개념 비슷하게 Trust 스탯이 있고, 이게 0~3까지 찍히는... 그러니까 AWE 기본형에 더 가까운 구조임. 이거의 장점은 뭐냐... 각 탐사자 캐릭터마다 다른 탐사자 캐릭터를 대상으로 이걸 별개로 찍는 구조인 대신, 양쪽은 서로 어느 정도 배경 설정을 합의한 결과로 Trust 수치를 가져야 한다는 거. 예를 들어서 생판 남으로 설정된 캐릭터끼리 시작부터 친한 친구 관계인 Trust 2를 찍는다면 좀 웃기잖냐. 


쉽게 말해서 제멋대로 남의 캐릭터와의 인간 관계를 설정할 기회 그딴 거 없고 그 부분을 상호 합의해서 서로간의 Trust 수치를 맞추던가 아니면 생판 남이라는 설정으로 0부터 시작하면 된다. 둘 중 하나라도 Trust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둘 다 사이좋게 0으로 찍어맞춰주자. 


쉬운 배경 설정과 서술의 주도권 

트레물루스의 플레이셋은 키퍼 / 플레이어가 논의할 필요 없이 그냥 플레이어쪽에 몇 개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질문 2개가 나오는 차트를 주고, 그 선택 결과 조합에 따라서 배경이 설정되는 구조를 택함. 따라서 플레이어들이 고른 설정에 따라서 키퍼는 마을이 어떤 상황이고, 뭐가 암약하고 있고, 그 외에도 주민 중에 누가 탐사자들의 행동을 지원 / 방해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기본 구성이 주어지니까 그걸 보고 그걸 잘 살려서 서술해 가면 된다. 


이게 어떤 메커니즘인지 예를 들어보자. 

기본 플레이셋인 Ebon Eaves는 마을 분위기 / 마을 소문에 대해 각각 3개를 고르는 질문을 던지는데, 일단 예시로 선택해 봄. 

마을 분위기 - 마을 사람들이 친절하다 / 오래된 마을이다 / 과거에 비극이 벌어졌다 

마을 소문 - 이상한 불빛이 보인단 소문 / 대규모의 살인이 있었단 소문 / 날아다니는 생물 소문이 돔 


<탐사자 측 정보>

75년 전에 마을 주변에 운석이 떨어졌던 마을로, 60여년 전에는 웬 미친 놈이 이웃 사람들 20여명을 살해하고 천사가 시켰다는 헛소리를 하다 감옥에서 자살한 전적이 있다. 또한 대략 50여년 전에는 공장 폭발사고로 난 불이 마을에 옮겨붙어 3일간 마을을 불태운 적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 현재 공장 자리에는 양조장이 들어서 있고 마을에는 꽤 큰 소방서가 들어서 있다.   


<키퍼 측 정보>

75년 전에 지구 외부에 살던 옛 것(Elder Thing)이 우주선을 타고 왔다가 추락해서 동굴에 숨었고, 이후 마을 주민에게 발견되자 주문으로 얘 정신을 망가뜨린 결과 연쇄살인마가 되었다. 50여년 전의 화재는 공장 지하에서 공장주 가족이던 사교도가 의식을 치르던 도중 불의 흡혈귀(Fire Vampire)를 소환했던 여파고, 의식의 결과 사교도는 60대인대도 아직 별로 안 늙어보이는 외모에다 아직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음. 


키퍼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화재를 일으킨 사교도와 그 가족 / 주정뱅이 마을 주민들 / 소방수들 / 우주선을 타고 왔던 옛 것 등의 위험 요소들을 취사선택해서 스토리를 엮을 수 있다. 어떻게 스토리가 엮일지는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달린 거지. 예를 들어서 다들 동굴 / 운석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대신 사교도 쪽에 초점을 맞추면 되고, 혹은 그 반대의 상황으로 엮을 수도 있고.... 둘 다 관심이 없어하면 떡밥을 던져서 스토리를 끌어가고.... 일단 허허벌판이 아니라 기본적인 틀은 주어져 있으니까 상황에 맞춰가면 된다. 

 

그러면 이 룰의 단점은 뭐냐고? 

뭐긴 뭐야 서사형 RPG에 대한 망상을 버리면 이거보다 지원 빵빵한 크툴루 계열 RPG들이 널리고 널렸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