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저번에 추리물 떡밥 있었을 때 올리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나중에 올려야지 하다가 떡밥 다 죽은고야...
1.
수사물은 물론이고, 추리물은 더더욱 시나리오를 짜기 힘들다. 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먼저, 마스터가 머리가 아프다. 먼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어떤 단서를 배치해 둬야 할지 머리 싸매게 고민해야 한다.
기껏 추리소설가의 재능을 살려 그런 걸 배치해 뒀다고 하자. 플레이어들이 단서를 단서로 보지 않으면 무용지물.
용의선상에 엉뚱한 사람을 올리고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트릭을 구성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면,
'사실 정답은 이거야! 너희들 삽질하고 있는 거야!' 라고 외치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때,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노우드의 건축업자'를 모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우드의 건축업자'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맥펄레인이라는 변호사가 올데커라는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써, 셜록 홈즈가 진범을 잡아낸다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의 작품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여기서 홈즈는 맥펄레인의 증언을 듣고, 맥펄레인이 범인이 아닌 심증을 설명하며,
맥펄레인의 어머니 역시 찾아가 정보를 모은다.
즉, 홈즈는 맥펄레인이 왜 범인으로 몰리는지를 바탕으로 해서, 단서를 모으고 추리를 해 나간 것이다.
2.
그렇다. 내가 조언하는 것은, '가짜 범인을 만들어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장 범인처럼 보이는 사람 말이다. 명백한 동기가 있는 사람,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
물론 이 가짜 범인은 NPC들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고,
플레이어들이 수사과정에서 명백히 의심스럽다는 점을 알아채게 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너무 의심스러워서, 플레이어들이 메타적으로 진범이 아닐 거라고 찍을 수 있을 정도여도 된다.
가짜 범인은 수많은 서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먼저, 범인의 수법과 동기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가짜 범인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울 이유를 만들면 된다.
물론, 이것도 너무 많이 쓰면 식상해지므로, 가끔은 그냥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충분하다.
두 번째로, '진실을 밝힌다'는 추리/수사물의 목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준다.
피해자가 존재할 때야말로, 정의를 지켜냈다는 만족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생사람 잡히는 걸 막아냈다 정도는 있어야 진범을 잡고 나서 뿌듯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동시에 마스터가 만들어놓은 반전, '함정'을 돌파했다는 느낌도 들 테고 말이다.
또한, 설사 헛다리를 짚고 있는 동안이라도, 플레이어들은 '가짜 범인이 왜 범인인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확실한 심리적 동인이 제공된다는 효과 또한 존재한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로, 가짜 범인은 PC들이 가장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이다.
PC들은 자연스럽게 가짜 범인에게 집중한다.
마스터가 가짜 범인을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든, 의심스러운 인물로 묘사하든 간에,
플레이어들은 가짜 범인에게서 진술을 얻고, 그의 발언에서 이상한 점들을 샅샅이 훝어볼 것이며,
가짜 범인의 행적을 따라 단서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추리물과 수사물에서 플레이어들이 헛다리를 짚는 가장 큰 원인,
'어디서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무엇이 단서인지를 모른다'는 점을 제어하는 도구로,
가짜 범인은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3.
그닥 좋은 플레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내가 마스터링했던 수사물 시나리오 비스무리한 무언가로 예시를 들어보자.
한 창관에서, 성인용 가이노이드(인공지능 빈약) 한 대가 스스로 탈주했으며,
플레이어들이 그 가이노이드를 회수하고 원인을 알아오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걸로 세션을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창관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내 미숙으로 필요한 조사들을 스킵해서(...) 빙빙 돌긴 했지만,
어쨌거나 가이노이드가 '옷뭉치인 사람'에 의해 오토바이 사이드카로 운반되었다는 것'과,
'그 가이노이드(덤으로 씹덕 취향 외형이었단 설정)에 계속 집착하던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그 남자가 '가짜 범인'역할을 한 것이다.
그 이후로는,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그 남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그 남자를 찾아가 심문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전투가 있었고, 플레이어들은 남자의 증언과 로봇들의 두뇌에 남은 로그로
다른 해커, '진범'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단순한 구도였지.
하지만, 생판 초보인 나에게도 플레이어들이 '일단 이런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 보자'고 정할 수 있게 하고,
자발적으로 다양한 가설들을 나누면서 진상을 추론해 보게 할 수 있었을 만큼,
'노우드의 건축업자'형 구성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플롯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P.S. 사실 노우드의 건축업자는 추리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궁극의 꼼수도 나왔지만,
이건 진짜 스포라서 볼 사람만 봐야 할 거 같다... 스포가 두렵지 않은 사람은 드래그해서 봐.
(사실 이 단편에서 결정적 증거는, 범인이 증거 조작이랍시고 밤 사이에 몰래 피 묻은 지문 벽에 찍어둔 게
전날에는 없었단 걸 홈즈가 알아챈 거였음...
즉, 범인이 새로 뭔가 증거조작을 하려다가 실수해서 단서를 남겼다고 하면 새로운 증거를 막 던질 수 있단 소리)
P.S. 2. 사실 이 플롯에서, '가짜 범인'을 '미소녀 히로인'으로 만들면 전형적인 라노베 플롯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게 얼마나 유용한 건지 알아챌 수 있는 거였고...
만약 "저는 NPC와 텍섹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하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한 번 시도해보자.
자신의 누명을 벗겨준 PC에게 데레데레하는 건 충분히 그럴듯하니까.
잘 읽은 거야!
던월로 돌리는 뉴비라더니 언제 또 저런 추리물까지
ㄴ던월로 저러고 있었어요.
막줄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