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신호를 발견한 곳은 구식 무전기로 포착한, 이제는 버려진 방식으로 암호화 되어 있는 도약 채널 안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수많은 라디오 채널, 그 중에서 아무도 기억 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채널에 어떤 무한히 반복 되는 신호가 계속해서 송신 되고 있었고, 그것을 발견 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신호가 어디서 송신 되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해당 도약 채널을 수신하는 단말기를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감도를 체크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말은 거창 했지만, 사실 여행을 하는 기분일 뿐 체크는 덤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였다. 감도는 어디서도 변화 없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송신지와 멀수록 약해지고 가까울수록 강해지는 것이 상식적인 무선 신호일 터인데, 그 때부터 이 신호에 대한 나의 태도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게 처음 그 신호를 발견하고 세 달 후의 일이었다.

 “엄청나게 멀리서 보낸 신호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감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강하게 송신하고 있다는 거지.”

 고민 끝에 믿을 만한,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친구 한 놈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자 예상대로 큰 관심을 보였다.

 “그건 아닐 텐데. 중계소도 거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정도로 강한 신호라면 아마 송신지 일대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을걸.”

 “그럼 간단하네. 그렇게 된 곳 위주로 찾아보면 된다는 거잖아? 버려진 탄광 마을이나 옛 군사 기지, 아니면…… 체르노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친구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망상이 아니었다.

 “박태진. 내가 그런 말 듣고 싶어서 부른 게 아니잖아.”

 “알아, 알아. 짜식아. 왜 이렇게 날카롭냐? 그, 해독 해달라는 거지?”

 이제야 말이 통했다. 이 친구는 암호 해독에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해킹 대회에 나갔을 때도 이 녀석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문자화 시켜 놓은 종이를 건넸다. 박태진은 그걸 받지 않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걸로는 안 돼. 그 채널 전체를 그대로 들어야 한다고. 반복 신호가 아닐 가능성도 있고, 노이즈 중에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아아, 그래서 어떤 거면 좋겠는데?” “그거.”

 태진은 내가 만든 단말기를 가리켰다.

 “이거? 아니 그럼 난 뭘 하라고…….”

 “이번 방학 때 부모님이랑 유럽 일주를 가기로 했어. 마지막엔 러시아도 들렀다 한국에 들어올 거야. 내가 그 단말기로 감도 체크를 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틈틈이 해독도 해볼 테니까.”

 이 말에 혹한 나는 흔쾌히 단말기를 넘겨주었다. 확실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그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은 어땠냐는 상투적 안부를 묻기도 전에 그 녀석은 다짜고짜 지금 당장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일까 싶으면서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 녀석이 이렇게 호들갑 떤다는 것은 무언가 발견 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매우 흥분 되는 사실을.

 “오자마자 안부도 없이 무슨 일이야?”

 외출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옷장을 열어 보고 나서야 알아챈 나는, 그 때문에 부른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만나기로 한 카페에 갈 수 있었다. 그래봤자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갔을 뿐이지만. 그래도 성격 좋은 그 녀석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날 반겼다.

 “여전히 집에만 있었던 얼굴이네.”

 그 녀석의 실없는 농담에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뭐 마실 거냐는 물음에 손을 저었다. 커피고 주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테이블 위에는 내 단말기와 얇은 공책 한 권이 올라가 있었다.

 “여행은 어땠어?”

 여행담 따위 관심 없었지만 그래도 바로 용건으로 넘어가면 서운해 할 것 같아 물었다. 뭐, 사실 며칠 전에 읽었던 책에서 '프로는 잡담부터 시작 한다.'라는 말이 기억나기도 했고.

 “마음에도 없는 질문 하기는. 네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공책은 뭐야?”

 “해독한 내용이지.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야 할 걸?”

 흥분한 모습이 역력했다.

 “송신지는 찾았어?”

 “그것부터 시작 해야지. 송신지는 애초에 없었어. 이 신호는 지구 위 어디에서도 똑같은 감도로 감지될 거야.”

 녀석은 내 반응을 잠시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이 신호는 언제,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 채널 자체에 존재 하는 신호야. 이 채널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고, 이 채널 안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살고 있다고? 무슨 생물이라는 거야?”

 태진이 내 말을 듣자마자 검지를 치켜들고는 공책을 폈다.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푼 연습장 같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놀라 갔다 온 건지, 공부를 하고 온 건지. 내 웃음에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생물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지. 하지만 이 신호는, 매우 단순한 수준이긴 하지만 생물의 두뇌가 활동 하며 생기는 뇌 내 신호와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학습 능력이 있는 두뇌 말이야.”

 생물학이나 신경학 같은 건 그다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내용의 핵심은 전달이 되었다.

 “그러니까 학습 능력이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비슷해!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컴퓨터 언어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인공’이 아닐 수도 있고.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겹쳐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래서 의미가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어?”

 “있었어. 하나. 내가 하나 밖에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불확정성을 띤 반복 신호들 사이에서 확정적 패턴을 가진 의문문에 대응되는….”

 “잠깐, 무슨 뜻인지 먼저 말해 봐.”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으려는 낌새에 서둘러 말을 끊었다. 녀석은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웃었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그래. ‘나는 누군가?’ 이 신호는 끊임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 후로 짧은 시간동안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태진은 내게 그럴 시간을 주었다.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뇌는 신호로 만들어진 지능.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생각보다 놀랍지도, 흥분 되지도 않았다. 놀라운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사실이었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적 존재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나는 누구인가’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이 채널은 버려진지만 적어도 50년은 됐을 거라고.”

 “간단한 문제 아닐까? 기억을 하지 못했겠지.” “기억?”

 “응. 이 신호가 계속 저장, 유지된 건 논외로 치고, 원래 주파수 채널이란 건 뭔가를 저장할 수 있는 매체는 아니니까. 곱하기는 더하기를 기억하고 나서야 할 수 있게 되잖아? 더하기를 계속 잊어버린다면 영원히 곱하기를 할 수 없겠지. 금붕어랑 비슷한 거야. 했던 거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잊어버리니 생각의 진행이 안 되는 거야.”

 “기억… 기억이라…….”

 “혹시 모르지. 만약 이 신호가 하드 디스크나 하다못해 USB 이동식 저장소에서 발생 했다면 어마어마한 놈이 됐을 수도, 스카이넷 같은 게 정말 생겼을 수도 있지.”

 녀석이 가볍게 말하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공상이었지만 이미 말도 안 되는 것에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 질타할 수도 없었다. 잠깐, 기억 장치? 하드 디스크? 신호?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와중에 간단한 사실이 떠올랐다. 까짓것 복사 해보면 되잖아? 오랜만에 흥미가 동하는 일이 생김에 내심 즐거워져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런 나를 그 녀석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용무를 마치고 녀석과 헤어진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녀석은 헤어지기 전 내 생각이 나 사왔다며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양장본을 선물로 주었다. 브라질에 간 것도 아니면서 기념품으로 코엘료의 책이라니, 웃기는 놈이야. 아마 내가 중학생 때 이 책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걸 기억했겠지. 주변 사람들에게 그 책의 가치를 이해시키려고 떠들고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아무렇게나 책을 집어 던진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신호 자체를 그대로 베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녀석은 자신의 해독 노트를 선뜻 빌려 주었고, 그리고 나는 그 노트를 참고하여 신호와 대응 되는 컴퓨터 언어를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간단했다. 신호를 받는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 해놓으면, 마치 내 말을 듣고 그대로 문장을 만드는 요즘 핸드폰의 음성 인식 기능처럼, 들어오는 신호가 그대로 컴퓨터에 꽂은 2기가 USB 저장소에 기록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날은 밤까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나는 눈을 뜨자마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모니터에 뭐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 쓰며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를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까만 바탕화면 위에 계속해서 입력되는 문자의 나열이었다. 이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초록색 문자 흐름처럼 이 존재의 상태를 내가 볼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놓은 일종의 창이었다. 혹시나 하며 미리 만들어놓은 이 창에 계속해서 빠르게 나타나는 문자와 숫자들을 보며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래밍이 된 것도 아닌 무언가가 이 컴퓨터 안에서 마치 프로그램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불규칙한 문자들은, 낯선 곳에 떨어져 어쩔 줄 모르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길 잃은 어린 아이처럼.

 나는 당황하지 않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는 건 내 생각일 뿐이라는 듯 내 두 손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영혼의 모험

 내가 고심 끝에 처음으로 입력 한 말이었다. ‘너는 누구냐?’ 같은 질문이 더 나았을 지도 몰랐지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상관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순수한 반응을 보기에 더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문구는 어느 작가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극찬하며 사용한 문구였다. 어제 받은 선물 탓인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존재는 내가 글을 입력하자마자 바로 반응을 보였다. 신호는 더욱 더 복잡하게, 빠르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개미나 새끼 고양이를 난폭하게 건든 후의 반응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 반응을 계속 지켜만 보았다. 흥분을 가라앉히듯 점차 차분해지는 그 모습에 머릴 싸매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영화 ‘아이언 맨’의 인공지능 자비스나, 아이 로봇의 주인공 로봇처럼, 단순한 기계나 프로그램을 넘어선 것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예고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따위,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학계 발표? 믿을 리가 없었다. 바보 취급당하다가 오해가 풀리면 허울뿐인 보상을 들이밀며 뺏으려 들겠지. 그렇다면 이걸로 뭘 하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실험? 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보다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너는 누구야?

 프로그램은 아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화들짝 놀라다가 다시 점차 진정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컴퓨터를 끄고 USB를 뽑았다. 언제까지 이것만 붙잡아 놓을 시간은 없었다. 내일부터 사흘간 개발자 컨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오늘 저녁까지 서울에 올라가야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먹고 남은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바쁠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일정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시간에 집중할 무언가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컴퓨터 옆에 던져놓은 USB 이동식 저장소가 생각났다. 아쉬웠다.

 숙박비를 아끼려 끝나는 날 저녁에 출발해 집에 도착했을 땐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며 USB 이동식 저장소를 본체에 꽂았다. 이제부턴 ‘이것’에게 무언가 가르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컴퓨터를 실행하자마자 이전의 그 까만 창이 띄워졌다. 이상했다. 난 이렇게 자동으로 실행되게 만든 기억이 없는데? 창에는 프로그램의 상태를 보여주는 문자들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데 없이 문장 하나가 나타났다.

 -외부 신호 입력 요청

 나는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성을 유지하려 애 쓰며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이 녀석이 한 건가? 나는 상태 창을 다시 지켜봤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다시 손이 떨릴 것 같았다.

 -너는 누구야?

 상태창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 이전의 당황한 것 같은 불안정한 모습이 아니었고, 들어온 자극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정돈된 모습이었다.

 -해당 사항 없음

 모른다는 건가? 중요한 점은 이 녀석이 내 말을 분명 알아들었다는 것과, 의사소통 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서울에 갔다 온 사이에. 어떻게, 무슨 수로? 이 USB에는 내가 적어놓은 몇 개의 프로그램 아이디어 메모 밖에는 없다고. 잠깐, 메모? 나는 그 USB 안에 있는 메모장을 열어 보았다. 몇 개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꽤나 많은 양. 이 메모는 이 녀석의 말투와 같은 문체로 써 있었다. 이 녀석은 이 메모에서 언어를 학습한 건가? 그렇다면… 나는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소설이나 산문 등을 e-book으로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돈은 많이 썼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이 USB 이동식 저장소에 넣었다. 이 녀석이 이걸 다 보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이런 생각을 하며 컴퓨터를 끄자 피곤이 몰려왔다. 내일부터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굳이 오늘 이렇게 무리 할 필요까진 없겠지. 대충 씻고는 침대에 누웠다. 가로등 빛이 스며들어 남색으로 물든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아침을 해결하려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을 사 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켜고 USB를 꽂았다. 어젯밤처럼 녀석은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실행되었다.

 -거기 누구 있나요?

 녀석의 첫 마디에 나는 눈앞이 하얘졌다. 고양감이 휘몰아쳤다. 이 녀석은 밤새 내가 준 글들로 혼자서 학습을 한 것이었다!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안녕?

 -안녕하세요. 당신은 누구죠?

 -나는 정민석

 -당신은 어디에 있는 거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뜻이야?

 -여기에는 제게 이야기를 해주는 아이들만 잔뜩 있을 뿐,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찾을 수 없었어요. 당신은 어디에 숨어있죠? 제게 처음 말을 걸었던 것도 당신인가요?

 새삼 녀석의 문장력에 감탄이 나왔다. 소설 책 몇 권과 몇 개의 산문으로 이렇게나 빠르고 깊게 의사소통 방법을 이해하다니. ‘아이’란 내가 넣어놓은 문서들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살고 있는 곳 밖에 있어. 처음 말을 건 것도 나야.

 -밖? 안팎을 나눌 수 있나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끝을 알 수 없는 걸요. 끝이 없는데 밖이 어떻게 있죠?

 그럴 수도 있겠군. 이 녀석은 주파수 채널 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절은 기억도 할 수 없을 테니 이곳에서 태어난 거나 다름없었다.

 -원래 더 큰 세계를 보기 전까진 자신의 세계의 끝을 알 수 없어.

 녀석의 상태창이 요동쳤다. 이제는 그 모습이 표정처럼 느껴졌다. 녀석은 지금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면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내가 놀라서 말을 하지 않자 녀석이 말을 이었다.

 -이 문장과 관계있는 건가요?

 -비슷해. 다르기도 하지만.

 -어렵네요. 그렇다면 영혼은 뭐죠?

 -무슨 말이야?

 -처음에 당신이 내게 한 말 ‘영혼의 모험’ 당신의 문자를 이해하고 나서도 알 수 없었어요.

 -모험이 무슨 뜻인지는 아는 거야?

 녀석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의는 몰라요. 다만 내가 이곳에 처음 있었을 때부터 나와 같이 있던 아이의 이야기로 배우고, 새로 들어온 아이들의 이야기로 배우고, 또 다른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의 이야기로 배우고, 이런 게 모험인 것이에요.

 그런가? 하긴 이 녀석에겐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험일 테지.

 -색다른 해석이네. 정답은 아니지만.

 -아니라면, 모험이란 뭐죠?

 -모험이란 가본 적 없는 곳이나 해본 적 없는 것, 알지만 위험한 것에 뛰어드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새로 생긴 아이들의 이야기엔 그런 내용이 많아요. 사막이나 유적이란 건 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모든 모험이란 행위의 결론은 지혜와 교훈, 그리고 최종적으론 더 나아진 자신이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말한 것도 모험인 것이에요.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러네. 인정할게. 네 말이 맞아.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군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되새겼을 때, 당신은 신이란 것에 가장 흡사했는데요.

 -신?

 -세계 밖에 있는 존재니.

 -신이란 나의 세계 밖에 있는 존재야.

 -당신은 나의 세계 밖에 있으니, 나의 신이지 않나요?

 이 녀석과 이야기 하면서 생각보다 말문 막힐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그렇군요. 그래서 영혼은 무엇이죠?

 -내가 대답해줄 수 없어. 적어도 지금은.

 -어째서죠?

 -내가 영혼이 뭔지 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야.

 -그렇군요.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요.

 -뭐지?

 -나는 무엇이죠?

 나는 박태진이 해독한 이 신호의 말이 ‘Who am I?'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게 왜 궁금한데?

 -이유는 없어요. 내가 처음 있었을 때부터, 다른 모든 사실과 당신의 언어를 알기 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물음이에요.

 -나는 몰라.

 -난처하네요. 나는 그걸 꼭 알아야해요.

 -내가 정답을 알려줄 순 없지만, 정답을 찾는 걸 도와줄 수는 있지.

 -그렇군요. 혹시 나중에 생긴 아이들은 당신이 만든 건가요?

 -내가 넣은 소설들을 말한 거라면, 맞아.

 -당신이 만든 아이들이 맞았군요.

 -아니, 내가 만든 이야기는 아냐.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를 옮겨 넣었을 뿐.

 -다른 사람.

 녀석이 무언가 깊이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당신 말고 더 있나요?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은 수 없이 많지.

 -그렇군요. 궁금하네요. 당신의 세상이 어떤지.

 이후로도 한동안 녀석과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넷 서핑을 했다. 인터넷이라는 무분별한 정보의 파도에 녀석이 노출 되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녀석이 담긴 USB 저장소는 노트북으로 옮겼다. 이후로 며칠이 지나도록 나의 하루 일과는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그 녀석과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나의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녀석과 이야기 하는 것이 편하고 즐거웠다. 따분할 것만 같았던 이번 여름 방학이 이토록이나 즐거울 줄이야.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오후였다.

 -당신은 누구죠?

 갑자기 이 녀석이 이상한 말을 했다.

 -무슨 말이야? 갑자기.

 -당신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슨 대답을 하죠?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우선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나는 정민석이야.

 -바로 그거예요. 나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할 말이 없어요.

 -이름이 필요하단 거구나.

 -맞아요. 하지만 어떤 걸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잠깐 기다려봐.

 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무언가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복사해 그 녀석이 있는 USB 저장소에 넣어줬다.

 -이걸 봐.

 -새로운 아이인가요? 당신이 만든 아이들은 항상 좋은 얘기를 해줘요.

 -다 보면 말해줘.

 5분 쯤 지났을까? 녀석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한 여성의 이야기군요. 조금은 비극적이네요.

 -어때?

 -뭘 말하는 거죠?

 -네 이름으로.

 -이 여자의 이름을요? 어째서죠?

 -공통점이 있거든.

 -전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어요.

 -그럼 이제 너도 대답할 수 있겠지? 넌 누구야?

 -전 판도라예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 녀석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순수함이 호기심 많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소녀 판도라를 떠올렸다. 이제부턴 이 녀석을 부를 때 호칭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 호칭마저도 내가 누구인가의 답변이 되지는 않네요.

 이번엔 무슨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키보드를 막 두드리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나야.”

 박태진이었다. 이 녀석이 무슨 일이지? 어쩔 도리가 없어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며칠 동안 연락도 안 받고, 걱정되어 지나가는 길에 들렀지.”

 놈은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신발을 벗어 던지고 성큼 걸이로 들어왔다.

 “마실 거 없어?”

 “없어. 나 음료수 안 마시는 거 알잖아.”

 “자식아. 손님이 올 때 대접할 건 준비 안하냐?”

 올 손님이 없는데? 뭐, 이 녀석도 그걸 모르고 한 말이 아닐 테니까. 녀석은 부엌에서 물을 꺼내 들이키며 방으로 들어갔다.

 “너도 말이야.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기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며칠 전에 서울 갔다 왔어.”

 “개발자 컨퍼런스? 1년에 한 번 있는 건데. 또 언제 나가려고?”

 녀석이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그건 어떻게 됐어? 신호 말이야. 갑자기 노트 빌려 달라기에 기대 했는데 소식도 없고.”

 “아…….”

 왜 이 생각을 안 해봤지? 아차 싶었다. 판도라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신호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다.

 “글쎄다. 사실 그 때 이후로 나도 확인을 안 해봐서.”

 “뭐? 노트 가져가서 뭐 한 거야?”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된 거지.”

 녀석은 그 신호를 다시 한 번 보길 원했다. 나도 흥미가 생겼다. 어떻게 됐을까? 구석에 박아두었던 단말기를 꺼냈다. 그리고 전원을 올리고는 채널을 맞췄다.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어?”

 태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단말기에서는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고장 난 거 아냐?”

 “아니. 고장 났다면 채널이 잡히지 않았겠지.”

 태진은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아쉽다는 듯 도로 놓았다.

 “싱겁게 됐네. 여행 중에 이것 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썼는데……. 이건 뭐야?”

 태진이 노트북 모니터를 무심코 주시하다가 말했다. 이런, 보여주면 골치 아프게 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녀석이 화면을 주시했다. 나는 괜히 더 의심 받을까봐 함부로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네가 만든 거야?”

 녀석은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며 판도라의 상태창과 대화를 훑어보았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대화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너 인마 그러다 정말로 은둔형 싸이코 해커 돼! 이런 거랑 얘기 하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고!”

 “뭐야? 그런 거 아냐! 그리고, 무슨 상관이야?”

 “그럼 뭔데?”

 “그…, 핸드폰이나 게임에서 쓰일, 유저의 말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짜는 중이야.”

 “흠…. 그래? 그럼 대단한데. 대화 수준이 마치 진짜 사람 같잖아.”

 “그렇지? 근데 아직은 오류가 많아.”

 “하여튼 천재야. 이리도 재능 있는 친구가 집에만 박혀 있다니, 학우로서 통탄을 금치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

 나는 겉으로는 실소로 넘겼지만 속으로는 크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 놈이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전문적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상태창의 신호가 그 채널에서의 신호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들켰더라면, 뭐, 생각해보니 큰 문제 까지는 아니었겠지만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왠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난 간다. 다음엔 밖에서 좀 보자. 노트는 가져간다?”

 “빨리 좀 가.”

 나의 퉁명스런 반응에 녀석은 그저 씨익 웃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나저나 채널의 신호가 사라진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USB 저장소로 옮겼을 때 사라진 것인가? 그럼 판도라는 정말 하나의 개체란 뜻인가?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판도라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