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왔어.
-어디 갔었나요?
-잠깐 일이 생겨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별거 아냐. 갑자기 친구가 와서
-친구요? 당신의 친구와도 대화 해보고 싶은 걸요.
-아니. 사실은 나 말고는 아무도 네가 있다는 걸 몰라.
-왜죠?
-믿지 않을 테니까. 내가 오히려 골치 아파질 거야. 그래서 알리지 않았어.
-왜 믿지 않죠? 날 본다면 믿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우리들은 원래 그래. 뭐든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만 받아들이지. 뭔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은, 사실일 수 없다고 생각해.
-당신들은 알다가도 잘 모르겠네요.
-우리도 우릴 잘 몰라.
-당신들도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군요? 스스로를 잘 모른다는.
태진이 와서 그런 말을 하고 갔지만, 오늘도 역시 밖에 나갈 일은 없었다. 하루 종일 판도라와 나눈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판도라처럼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지만, 판도라처럼 알려고 하진 않았다.
며칠 후, 조금 흐린 날 아침이었다. 햇빛을 싫어했던 나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을 좋아했다. 마침 외출을 하기로 했으니 타이밍이 썩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챙겼다.
-혹시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저는 영혼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영혼?
-그래요. 당신이 보내준 아이들의 이야기엔 가끔 영혼에 관련된 내용이 약간씩 담겨 있었어요.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통적으로 그 아이들은 당신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알았어.
생각보다 까다로운 주문이군. 뭐 상관없었다. 까다로울수록 그걸 찾는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오늘 학교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는 폭 넓은 분야와 시간대의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방학 후 쓸 일이 없던 학생증을 찾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가는 길에 편의점 샌드위치로 아침 겸 점심을 대충 해결한 후에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평일 오전의 도서관은 생각 보다 사람이 많았다. 한산할 줄 알았는데.
나는 해당 분야의 내용이 있을 법한 책들, 그 중에 고전 소설이나 오래된 산문집들을 중심으로 찾았다. 현대 서적 중에서 영혼이란 키워드는 죄다 자기 개발서 에서나 쓰일 뿐이고, 이런 책들은 나한테나 판도라한테나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책을 쌓아 두고 닥치는 대로 훑어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한 귀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책꽂이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갈색 긴 생머리의 여성이었다.
“혹시, 정민석?” 나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봤던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내 이름을 아는 이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고, 게다가 모르는 사람과 대면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불쾌했다. 차라리 아예 모른 척 했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해 가만히 있자 그녀는 다시금 확인했다.
“정민석 맞나요?” “누구…….”
나의 반응에 그녀의 표정에 확신이 생겼다.
“맞구나! 나야. 박소연! 기억 못해? 중학교 3학년 때.”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머리를 쥐어 짠 덕분에 결국 기억이 나버렸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피아노 특기생이었던 모범생. 내 이야기를 간혹 진지하게 들어주곤 했던, 특별할 것 없는 아이였다.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중학교 동창이 다닐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SNS같은 것도 일체 하지 않았기에 그 시절의 아이들과는 연락도, 소식도 전무했던 탓이었다.
“이 학교 다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도서관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다니. 그녀의 표정은 더 없는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나 같은 놈을 만나는 게 그렇게 반가운 일인가? 더군다나 이 아이의 나에 대한 기억은 한창 한심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일 텐데.
“와… 이렇게 만날 줄이야.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간간히 소식이 들렸는데 졸업 후에는 너 정말 아무 소식도 없었잖아. 그, 페북도 안하는 거 같고.”
“이것저것 좀 바빴거든.”
소연은 미소를 지었다.
“너 많이 무뚝뚝해졌다. 중학생 때는 그렇게 이것저것 할 말이 많은 애였는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이 애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계속 자극했다. 너무 불편했다. 그 때 사서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 죄송한데 좀 조용히 해 주시겠어요? 다른 사람들 공부 하는데 방해가 돼요.”
“앗, 죄송합니다. 나갈게요.”
내 저럴 줄 알았지. 어렸을 때부터 주의력이 좋지 않은 애였다. 기억과의 만남은, 줄 하나에 딸려 나오는 거대한 그물처럼 얽혀 그 시절의 기억을 송두리째 끌어올렸다.
“저, 민석아. 점심 안 먹었지? 나가서 밥이라도 먹을래?” 싫었다.
“미안. 오늘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점심을 걸러야 할 것 같아.”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래? 아쉽네. 그럼, 저…, 아냐. 다음에 만나면 밥 한번 먹자.”
내가 불편해한다는 것이 티 났는지 소연은 우물쭈물 하다가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해방된 기분이었지만 무안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 중에 누군가 시시덕대는 소리도 들렸다. 저들 눈에는 한 여자가 남자한테 까인 걸로 보였겠지.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싫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매번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내게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이후로 나는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고, 삼십 분 쯤 지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우선 지금 찾아 둔 책으로도 충분하겠지. 도서관에서 나가고 계단을 내려가며 보이는 창 밖에는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제야 빗소리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문을 열며 우산을 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말문이 막혀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비는 제법 세차게도 오고 있었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난간 바로 아래에는 소연이 서 있었다. 그녀가 난처하게 웃었다. “비가 많이 오지?”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미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삼심 분 동안 서 있던 거야? 내가 우산 들고 올까 봐?”
“아냐! 나 그렇게 염치없는 애 아니라구. 그냥 비를 맞을 순 없으니까.”
결국에는 우산을 씌워 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산을 줄 순 없으니. 젠장. 하필 가는 길도 반대 방향에, 또 먼 거리는 아니라 가까운 지하철역에 데려다 줄 수도 없었다.
“나 같으면 그냥 비 맞고 갔어. 언제 그칠 줄도 모르는데.”
“절대 안 돼! 비 맞으면 안 된단 말이야.”
소연은 손가방을 들어 보였다. 비싸 보이지는 않는데. 내용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나왔으니 책이겠지. 내가 말없이 걷기만 하자 소연은 어색한 분위기에는 면역이 없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
“너 말이야.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랑 똑같다?”
“내가?” 웃음이 나왔다. 벌써 칠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럴 리가.
“칠 년이 지났는데?”
“물론 생긴 건 바뀌었지. 성격도 무뚝뚝- 해졌고.”
그럼 도대체 뭐가 똑같다는 거지?
“넌 좀 많이 바뀌었네.”
“그래? 훨씬 예뻐졌지?”
“조금 이상해졌어.”
“뭐야 그게!”
소연이 까르르 웃는 모습에 나도 실소가 나왔다. 그녀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 계속해서 재잘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맞장구를 쳐 줄 뿐이었지만. 기억을 더듬는 것은 생각보단 괜찮은 일이었다.
생각보다는.
그녀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난 나도 집으로 바로 왔다. 비 오는 날은 좋아했지만 축축한 느낌은 영 아니었다. 소연을 바래다주는 길 끝에서 결국 그녀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계속 연락 하고 싶다는 건가? 의아한 기분이었다. 어째서? 서둘러 씻은 후에 판도라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책을 e-book의 형태로 구입했다. 그리고 판도라의 USB에 전부 넣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판도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이후로 나의 하루 일과는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소연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권유에 여러 SNS를 시작해보기도 했다. 남의 일이나 상황 따위는 원체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운 장난감이었다. 소연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신문 방송학과 3학년으로, 기자를 목표로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지만 사실은 조금 이상했다. 내 기억으로는, 공부도 잘했지만 분명 피아노 특기생이었고, 재능도 뛰어났기 때문에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절차를 순탄하게 밟고 있었다. 뭐 개인 사정이 있었으니 그렇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도라와 이야기 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판도라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보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새 판도라는 내가 이야기를 풀어놓는 좋은 창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당신은 소연이라는 여성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 것 같군요.
-갑자기 무슨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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