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물어보는 말임. 내 시선이 객관적이지 못한 건가 싶어서 말이다.



내 친구 중에 라노베 쓰는 녀석(출판사랑 1권 완성하면 바로 계약하기로 된 걸로 들음)이 있는데,

이 녀석이 중증 액션영화 광이라 이것저것 많이 보고, 나에게도 많이 보여주는 편이다.

때문에 이 녀석도 라노베형 모에 캐릭터는 깊이가 없다... 라면서 엄청 연구를 하는 쪽인데,


웬걸, 내가 보기에는 그냥 '라노베 캐릭터의 행동원리에 디테일을 입힌 것 뿐인' 걸로밖에 안 보이더라고.

이것 때문에 이 녀석이랑 좀 싸우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사실 소위 '라노베 캐릭터의 얄팍함'에 대해서 논할 때마다 난 의구심이 듬.

나 역시 라노베 캐릭터 조형이 얼마나 안일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기는 하지만,

동시에 난 그게 라노베 최고의 장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 말이지.


물어볼 걸 분류하자면, 대충 세 가지임.




1. 라노베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가 엄격히 구별되는가?

예컨대, 최근에는 코믹스 원작 영화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지.

그리고, 이런 코믹스 캐릭터들은, 분류상으로 따지자면 영화 캐릭터가 아니라 라노베 캐릭터로 분류돼야 해.

왜냐하면, 애초에 라노베가 지향하는 것이 '만화 같은 캐릭터를 사용한 캐릭터 소설'이었으니까.


단순 현실성의 측면에서만 봐도, 조커 같은 캐릭터가 '현실적인' 조형이냐면 결코 아닐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이런 캐릭터들은 현실감이 아니라 캐릭터성을 위해서 만들어지니.


그리고 꼭 코믹스 원작 영화가 아니더라도, 틀에 박힌 캐릭터라면 다른 영화에서도 많던데?

내가 '베테랑'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한국 영화의 형사 캐릭터는 하나의 스테리오타입이 되었구나' 였음.

마찬가지로, 싸가지없는 재벌 2세나 비굴한 2인자 캐릭터도 영화에서 스테리오타입으로 성립되었고,

그걸 역으로 라노베에서 흡수하기도 했음.


아니, 라노베적 캐릭터 조형의 70% 정도는 기존 소설/영화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임.

그 기존 캐릭터들 중에서, 인상에 깊게 남은 캐릭터들을 재조합해서 만든 게 라노베 캐릭터라고.

이런 상황에서, '라노베 캐릭터'라는 별도의 구별기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거임?




2. 라노베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라노베적 상황' 그 자체가 아닌가?

1에서 이어지는 질문임. 정리했다시피, 나는 '라노베 캐릭터나 영화 캐릭터나 차이 없다'고 믿음.

하지만 명백히 라노베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와 영화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는 차이가 남.

그게 왜일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음. '캐릭터성'이란 것은 별개의 수단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작중의 상황과 그에 따른 인물의 행동에 따라서 전달된다는 부분임.



그러니까,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을 해 보자.(중요한 장면은 아님)

내가 감독이라면, 여기서 그냥 둘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장면 몇 개 잘라서 몽타주 기법으로 때울 거다.

왜냐고? 런타임은 길어야 세 시간이거든. 그리고 아무도 액션영화에서 달달한 데이트 같은 거 기대 안 하고.


하지만 내가 이걸 라노베로 쓴다면,

당연히 여캐가 뺨에 크림 묻힌 거 닦아주고, 롤러코스터 타려고 했는데 신장미달이라서 못 타고,

부루퉁해져 있는 여캐 달래주려고 솜사탕 사 줘서 나눠 먹고,

여캐가 뜯어말리는데도 동심 발동해서 같이 회전목마 타고,

여캐는 부끄럽지만 같이 있다는 게 즐거워서 화도 못 내고...

이런 세세한 '모에 묘사'로 지면을 채울 거임. 최대한 밀도 있게.


왜냐고? 라노베 지면은 꽤나 여유있을 뿐더러, 독자들이 그걸 기대하거든.

여캐가 모에한 행동을 하는 걸 말이다.



같은 장면에 같은 캐릭터가 있더라도, 영화와 라노베는 이렇게 묘사 방법이 달라진다.

그런데 둘을 봤을 때, 어느 쪽이 '현실적이고 건조한' 인물로 보이고,

어느 쪽이 '개성적이고 과장된' 인물로 보일 거 같아?


그러니까, 라노베 캐릭터들이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냥 과장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질 때는 무조건 가슴에 손이 가고, 친구란 놈들은 연애질에는 죽창을 진짜로 날려대며,

악당들이 장광설에 일일히 반응해 주는 '가벼운' 세계관에서는,

아무리 현실적인 인물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과장된' 반응밖에 할 수 없잖아.


그리고 독자들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 작가들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캐릭터들을 집어넣는 거고.

여기서 '캐릭터의 깊이'를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상황의 깊이'라고 부르는 게 차라리 맞지 않을까?



내가 친구 소설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그거.

친구가 쓴 소설은, 결국 '참신한 상황'을 제시했다뿐이지, 그 캐릭터의 탄생 과정부터 같이 봐 온 나로써는,

결국 그냥 라노베 독자들이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 라노베 캐릭터들을 밀어넣었을 뿐이었던 거야.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보자면,

결국 라노베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를 구별하는 건,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3. 왜 라노베 캐릭터 논란은 여캐 관련으로만 논의되는가?

내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부분.

물론 하렘물이 정석이 된 현재 오타쿠 업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여캐의 수가 남캐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여성향 라노베는 인지도가 별로 없고...


하지만 지금까지, 라노베 남캐를 따라한 사람이 당연히 있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캐릭터들은, 중2병이라고 까였지 라노베스럽다고 까였단 소리는 못 들었다.



사실 참고하려고 들면 라노베에서도 참고할 남캐는 넘쳐난다. 중2병 말고도.

완전체 성인 카미조 토우마라던가, 귀찮음의 화신 오레키 호타로라던가...

그런데 이런 캐릭터들을 가지고 PC를 짜는 걸 지적하는 사례는 턀갤 하면서 본 적이 없다.

아니, 사실 지적하면 뭔가 이상하다. 토니 스타크나 캡틴 아메리카랑 뭐가 달라?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라노베 캐릭터성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의식적으로 '라노베 모에 여캐'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근데 어째서지?




덤으로 하는 소리다만, 나는 라노베 캐릭터들을 매우 좋아한다.

왜냐하면, 라노베 식의 극단적으로 과장된 캐릭터 조형은, 어떤 신념의 화신,

혹은 그걸 초월해서 관념의 물화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이나 악역을 만들 수 있고,

이건 강렬한 주제 의식을 박아넣을 수 있거든.


개인적으로 이런 방향성으로 좋았단 예시라면 카미조 토우마나 카이키 데이슈.

카이키 데이슈는 진짜로 '라노베에서만 가능한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고평가한다.



동시에 그렇다 보니, 라노베 캐릭터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하기도 하고,

웬만한 작가들보다도 많은 캐릭터들을 창조해 왔을 턀갤러들에게 조언을 듣고 싶기도 하다.

딱히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의견을 묻고 싶은 거니, 가볍게 답해줬으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