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을 보고 여운에 잠겨 도타 2를 늦게까지 하며 잠든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발에 채이며 일어났다. 다 큰 놈이 늦잠 잔다는게 한이 맺히셨는지 울분을 토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잠이 덜깬 머리로 멍하니 생각했다. 그래, 떠나자. 떠나자 세상으로. 발 닿는 곳 까지 걸어가자. 솔직히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직전에 여친한테 깨진 상태라 멘탈이 정상은 아니다. 거기다 부모님은 속도 모르고 자꾸 "니가 나이가 몇인데 슬슬 결혼 생각도 해야지..."라는 말로 박살난 멘탈을 곱게 갈아 가루로 빻고 계셨거든.


 아무튼 먼저 여비를 마련해야했다. 백수건달인 내가 여행갈테니 여비를 달라한들 돌아오는 것은 에콜론 코팅으로 열효율을 한층 더 높인 후라이팬 바닥면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 취미관련 상품들을 전부 정리하라는 부모님의 엄명이 떨어져 있었겠다, 어차피 버릴 것, 내 친김에 싸들고 갈 수 있는 만큼 싸들고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한 시간 동안 낑낑거리면서 가지고 가는데 무거워 죽는줄 알았다. 거의 60권 좀 넘...지 않을까. 영수증 받았는데 무심코 버려서... 돈은 6만원 정도 받았다. 모아둔 돈이랑 합해서 12만원이니 이 정도면 일주일 여비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되겠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계획을 짜고 준비물을 체크해봤다.


 여행 일정은 이번 주 일요일까지. 왜냐면 일요일 오후에는 티알피지를 돌려야 하거든. 이번 세션 준비를 끝내뒀기 때문에 피시방에서 돌려도 되지만, 역시 옆에 룰북이 있는 편이 안정된다. 그러니까 화수목금토 5일간 이동해야 하는데... 걸어갈거니까 시속 6km를 잡으면 최대 이동거리는 하루 72km, 5일간 360km다.


 그래서 최초 목표는 서울로 잡았지만... 뭐, 그렇게 쉽게 풀릴리는 없으니. 목표를 대전으로 바꿔 잡았다. 양산에서 대전까지는 약 260km. 5일간 열라게 걸으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 현역시절처럼 행군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때처럼만 행군하면 서울까지도 충분할 것 같다.



 준비한 준비물은 갈아입을 옷 두 벌, 휴지 하나, 가죽장갑, 보온장갑, 지퍼백 열장 정도, 상비의약품, 물티슈 2팩, 손전등, 속옷 양말 8벌씩, 세면도구, 우비, 바람막이,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스마트폰. LED 손전등이랑 나침반이 없는게 너무 아쉽다. 전에 있었는데 막상 찾으니 안 나온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역시 아날로그가 더 신뢰가 가서....


 이렇게 준비를 끝내고 집을 빠져나오다 잡혔다. 나이 먹은 놈이 밤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혼났다.


 그래서 출발은 내일 아침으로 미뤄졌다. 아마 아침 6~7시쯤 출발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