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 받는 연구원 올레그는 슬라브계 부모님께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분명 어제 자신의 '환자'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그녀는 생포된 현실교란자중 하나였다. NWO 내의 신원분석팀이 그녀의 소속, 연루된 사건, 인간 관계 등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생포된 지역 근처의 시장에 몇번 들린 기록이 전부였다.



소녀의 머리는 검었다.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도 새하얀 피부는 바래지도, 푸석푸석해지지도 않았다. 왼쪽 손톱은 온통 까만 색. 무엇인가 발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검은색으로 자라난 손톱이라는 분석결과가 올레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상대방의 뒤를 향했다. 마치 '당신의 등 뒤에 누군가 있어요. 그리고 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



"철컹."



그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는 그의 머리에서 살짝 빗겨나간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뒤에 뭐가 있지?"


올레그가 묻는다. 그는 부모님에게서 부드럽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있어요."


"하지만, 난 여기에 있다. 네가 쳐다보는 곳은 허공이야."


"아뇨. 지금의 당신이 아니에요."


"그럼, 넌 미래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것인가?"


그의 손가락이 태블릿을 살짝 터치한다. AN-T-01, 시간 관련 능력을 보여주는 현실교란자들에 대한 관리코드다. 01은 관찰만 할 수 있는 개체, 02는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의 간섭만 가능한 개체, 03은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정도의 간섭까지 가능한 개체를 의미한다. 갑자기 시큼한, 보랏빛의 냄새가 풍겨온다. 아마도 옆 블록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것도 아니에요. 저는, 지옥에 비춰진 그림자를 봐요. 당신의 죄가 드리우고 있는 긴 그림자를 볼 수 있어요."


"..."


언제나, 현실 교란자들의 현실에 대한 해석은 제멋대로다. 그것 때문에 올레그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렇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1년전 이식 받은 인공 안구가 방의 모든 곳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곳을 '동시에' 바라본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격리실을 손상 시킨것은 아닐까 했지만, 그 어떤 곳에도 손상된 흔적은 없다.


"당신은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올레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내일부터 이 소녀에게 하게 될 일을 떠올리자 무의식적으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재미, 즐거움, 고통, 슬픔, 지루함, 그 어떤 감정적인 평가도 붙일 수 없는 일들이니까.


"또 하나의 그림자가 생겨났어요. 뭔가 생각했군요?"


이러한 방식의 역심문에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올레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묻는다.


"내일부터는 강제적인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협조할 생각은 없나?"


그 순간, 그녀가 처음으로 올레그와 눈을 맞춘다. 갈색 눈동자와, 새까만 눈동자가 마주친다. 소녀의 검은 눈동자가 일순간 일렁이는 회색빛으로 변한다. 


"...당신은 절 찾을거에요. 이제 알았어요.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네요."



그는 알고 있었다.


어딘가,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뛰어난 프로제니터의 연구자. 


현실교란자들의 능력을 하나의 이론에 통합한 연구자일뿐만 아니라, 흡혈귀 기관 이식의 대가인 그였지만 무엇인가 이상함을 항상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정말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는게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당신이 지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녀의 손톱이 새하얗게 변한다. 


"지옥이 현실에 드리운 그림자가 당신인거죠."



화앗-



일순간 방이 불탄다. 올레그가 반사적으로 방을 뛰쳐나온다. 불꽃이 그의 등을 휩쓸고 지나가, 순식간에 공기중으로 사라져버린다.


"안녕, 여기는 재미없어요. 와서 저와 놀아요."


그의 귓가를 스치는 목소리.


올레그가 황급히 방을 들여다 본다. 소녀는 없었다.






"여기보단 지옥이 더 재미있었네요"



-그러니까, 와서 저와 놀아요.



그것은 지옥으로의 초대장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