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포서 서향(書香)은 오늘도 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 본토 출신에 싱가폴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긴 흑발에 동양인 치고는 키가 큰 편인 여성이었다. 


전통적인 미녀상인 것은 아니었지만, 여느 카지노 딜러가 그렇듯 나름의 매력을 풍기는 여성이었다.


"폴드."


툭툭,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카드를 던지고 테이블에서 떠난다. 중앙에 수북히 쌓인 칩을 건너편의 이상하게도 혈색이 좋은 남자가 쓸어담는다.


"딜러 아가씨, 어때?"


뱀의 차가움을 연상시키는 그의 목소리는, 얼굴색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서향은 그를 무시한다.



그녀는 신디케이트, 그리고 인포서 내에서도 독특한 직책인 '퀸 딜러' 였다. 


퀸 딜러의 임무는 현실교란자들이 그 능력을 이용하여 도박판에서 부당한 이득이 취하지 못하게 막는 것. 


따라서 도박 규칙의 숙지는 물론, 초자연체들의 눈을 속일 만큼의 손놀림, 초인의 범주마저 초월한 눈썰미, 


만일을 대비한 전투 능력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만 임명되는 직책이었다.


장점이라면 더러운 무덤이나 구르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애초에 이 대륙에는 산간벽지에 카지노가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단점이라면 뻔뻔한 현실교란자들이 파산하기 전까지 응대해줘야한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놈의 대가리도 날려버리고 싶었다.


"딜러 아가씨?"


뻔뻔하게 들이대오는 그를 제지하듯, 누군가가 앉는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카드를 셔플한다.



샥, 샥, 샥.



카드가 순식간에 섞인다.


그녀가 아무말 없이 카드를 던진다.


첫 두판은, 방금 앉은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헹, 쉽구만?"


또 다시 칩의 무더기에 칩들이 더해진다.


블랙잭과는 달리 포커로 거머리들을 거덜낼때는 두 가지의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거머리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테이블에 앉은 일반 시민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블랙잭과는 달리 딜러가 플레이어를 '이길'수 있는 게임이 아니니까. 한마디로 대리전을 준비 하는 것이다.


두 라운드가 지나자, 그녀는 시민의 성향을 파악한다. 한마디로 소신있는 겁쟁이, 인가.


다시 카드를 섞는다.


샥.


샥.


그녀의 증폭된 초감각이 카드를 하나씩 집어낸다. 천분의 일초가 일분처럼 느껴진다. 


하나씩 그녀의 손끝을 스치는 카드를 쌓아간다. 인간의 눈에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다. 고속 카메라로 찍어도 보이지 않을 속도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덱을 쌓아간다.


계몽된 요원 가운데서도 이런 능력을 몇년간 훈련하는 요원은 거의 없다. 


카드에 무엇인가 수작을 부려놓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수면자들이 눈치챌지도 모르니까.


대신 동체시력과 단기 기억력을 수십배로 증폭시켜, 라운드가 끝나고 카드를 모으는 순간에 어떤 카드가 몇번째 '층'에 쌓이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 덱을 원하는대로 재배열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카드를 만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상관 없었다. 시작 순간만 기억하면 되니까. 눈동자로도 알아차릴수가 없다. 동시에 모든곳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인공 안구 덕택이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잭, 10, 세 장의 카드, 다시 퀸, 10, 잭, 다시 10-



바닥에 카드가 깔린다. 거머리에겐 투페어를 던져준다. 시민에게는 트리플을 던져준다. 바닥에 깔린 카드로는 도저히 시민이 트리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거머리가 걸려든다.


"트리플."


시민이 담담하게 자신의 카드를 공개한다. 거머리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진다.




"투 페어."


그리고 65분뒤, 거머리는 말 그대로 빈털털이가 되었다. 현실교란자 중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초감각, 날쌘 손놀림,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 .


그것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심리전, 자신의 대리인인 시민의 정신을 보호하는 간단한 어구의 프로시져, 마지막으로 '운' 앞에 여지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제기랄..!"


놈은 그렇게 외치며 떠난다. 먹이라도 찾으러가는 것이겠지. 추격대를 붙이긴 하겠지만 최근 유니언의 상황을 생각할 때 이 도시에서 놈에게 미행을 붙일 정도로 인원이 남을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축하합니다. 전 그럼."


그녀가 가볍게 말하고는 테이블을 떠난다.




"후우."


유니폼을 벗고, 락커에 걸어둔다. 


"지겹다."


그녀는 이 일이 지겨웠다.


거머리들의 뻔뻔함을 앞에서 보는 것도, 가증스러운 전통주의자 -트래디션- 놈들의 같잖은 속임수에 일부러 넘어가주는 것도 지겨웠다. 마음 같아서는-



쐐액-



그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몸을 날린다.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아까의 거머리가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합!"


돌려차기. 그러나 놈은 날랜 몸놀림으로 천장으로 뛴다. 아까의 혈색은 당연히 가짜. 지금은 거머리치고도 유난스레 창백한 얼굴이었다.


"역시 그렇군. 가증스러운 자칭 수호자들이신가본데."


아까의 목소리가 그녀의 전신을 휘감아온다. 그녀는 속옷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너희들의 피는, 훨씬 맛있거든!"



콰직.



그녀가 방금까지 있던 곳이 산산조각난다. 의외로 육체파라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어떻게든 락커룸을 벗어나려고 한다.


"왜, 도망가시려고? 그럼 내 돈이나 토해내고 가라고!"


놈이 문을 막는다. 


'...불리한데.'


장비도, 동료도 없다. 아무리 유니언의 요원이라 하더라도 맨몸의 무술로는 한계가 있다. 잠깐 시계를 벗어놨으니 표준행동규약에 의해 그녀가 5분 이후에도 시계를 착용하고 있지 않으면 즉시 대책반이 출동하겠지만-


'그 전에 당하겠군.'


그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쇄도하는 손톱.


어깨를 찢어놓을 듯한 그 손을 피해 다시 바닥을 구른다. 


"컥-"


그러나 다음 순간 복부를 채여 락커에 내동댕이쳐진다. 금속음이 락커룸을 울린다.


"얕봤나본데."


다시한번 채여 천장을 친다. 그러나 일반인과는 달리, 이 순간에도 그녀의 정신은 멀쩡하다. 그렇게 훈련받았으니까. 그녀가 반동을 이용해 놈의 등을 내려찍는다.


"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차여 락커에 머리를 박는 거머리. 



그녀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생각이 흐른다.


'이런건 지겹지 않은데.'



자신의 락커로 향해, 유니폼을 찢어내듯이 낚아챈다. 그 주머니에서 작은 캡슐을 꺼내 자신을 쫒아오는 놈의 손에 던진다.


"피익-"


공기새는 소리와 함께 캡슐이 깨지며 놈의 손가락에 새까만 끈끈이들이 달라붙는다. 이것으로 왼쪽의 손톱을 쓸 순 없을 것이다.


"..."


놈이 잠시 물러나서는 손을 쳐다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친다.


"아까와는 눈빛이 다른데."



과연, 이런 건 지겹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뭐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 


고통 받는 것? 


이기는 것?


아니면 고통을 주는 것?



"너, 나와 같은 부류구나?"



일순간 동요한다.



-퍽


순간의 동요만으로도 흡혈귀에게는 충분했다. 차여서, 벽에 부딪힌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끈끈이가 달라붙지 않은 손이 그녀에게 뻗쳐온다. 거머리의 기분 나쁜 손길이 그녀의 목을 감싼다. 들어올려지는 그녀.


"네놈들이라면 금방 지원군이 오겠지? 범해준 다음 먹어치워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먹-"



콰직.



피가 튄다.


놈의 피에서는, 썩은 철의 향기가 난다.


그렇지만 어떤 향기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이 붉은색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니, 괜찮아요?"



친절한 목소리가 묻는다. 회색빛의 눈동자를 한 소녀다.


"응. 괜찮은가봐 언니."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그녀의 팔이 흡혈귀의 가슴을 꿰뚫고 있다. 그 손에는 마지막으로 검은 피를 내뿜는 심장이 들려있다.


철퍽.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놈과 그 심장이 바닥에 떨어진다.


"응. 이런건 역시 안 지겹죠? 재밌는거야. 그렇지?"


소녀가 그녀의 마음을 읽듯이 말한다.


"언니, 나랑 가요. 이런 거 많이 하게 해줄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는 소녀.


서향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채로 출근할 때 입었던 옷을 재빨리 입고는, 그녀를 따라나선다. 




비릿한 피 냄새가 떠오른다.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젖어오는 것 같다.



"기대해도 될까."


"응."


카지노에서 나설때까지 둘의 질답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