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직한 스페이스 마린 타카하시는 언제나 그렇듯이 작전 시작전 남극을 바라본다. 그는 월면에서 작전할때는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항상 월면을 감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첫 근무지가 남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극히 유능한 고참 스페이스 마린들과 초동멸균Incident Response Sterilization팀에서 5년간 근무하였으며, 그때의 공을 인정받아 지금은 월면으로 옮긴 상태였다. 전형적인 젊은 보이드 엔지니어의 커리어였다. 남극에서 현실의 막을 찢고 침투하는 수백의 움브루드를 처치하는 멸균 팀. 그 이후 유사하지만 훨씬 임무 강도가 높은 월면으로 근무지를 옮긴다. 거기서부터는 여러가지 길이 있었다. 


보이드 엔지니어의 초기 정신에 매료된 요원들은 함선 운용으로 보직을 옮긴다. 이내 그곳에서 어엿한 함장으로 승진한후 수많은 공적을 세우고나서도 살아있다면 함대 사령관Alpha Commander가 되어 자신만의 함대를 지휘하게 된다.


어떤 자들은 움브럴 렐름 -이차원까지 포함하여- 곳곳에 존재하는 주요 컨스트럭트를 운용하는 관리관이 되기도 한다. 분명 행정적인 업무의 강도가 높아지지만 무진장의 프라이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주요 근거지들을 관리하고, 효율성을 제고하며, 외계인과 머라우더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지루한 직군은 아니었다.


그러나 타카하시는 되도록이면 월면에 남고 싶었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월면기지 근처를 비롯해 월면 곳곳에 건설된 하이퍼테크 포트리스의 관리자로 승진하고,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의 몇 되지 않는 어두운 면의 수호자Guardian of Darkside of the Moon의 직을 맡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이곳에서라면 자신이 수호하는 지구의 모습, 그리고 아름다운 남극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의 날씨는 무척이나 쾌적한 것인지 남극 대륙의 모습이 아주 선명했다.


"작전개시 30초전. 시공파동이 감지됩니다."


그의 장갑복에 내장된 인공지능 오퍼레이터가 알려온다. 아이언맨의 자비스를 연상케 하는 그 목소리가 -사실은 아이언맨 영화 자체가 패러다임에 초과학을 포함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일환이지만- 그의 정신을 아름다운 남극 대륙에서 떼어놓는다.


"소대장님?"


"오늘은 네가 선두다, 타카하시."


소대장의 변조된 기계음.


"Taking Point."


일본계치고는 깔끔한 발음으로 말하며 선두에 나서는 타카하시. 소대장을 지나친다. 소대장의 장갑복은 정말 특이하게도 중세기사의 모습을 그대로 딴 모양이었다. 장갑복의 기초 디자인이 이성의 결사 시절 만들어진, 프라이멀 에너지를 동력원 삼은 극초기의 강화 갑옷을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그대로 따올 것은 없지 않은가. 


"15초전."


어쩌면 그도 자신의 조상님들을 따라 장갑복을 사무라이 모양으로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런 생각은 사치다. 장갑복의 위장색 기능이 작동한다. 하반신은 월면의 회색, 상반신은 텅 빈 우주공간의 까만색으로 칠해진다. 구형 플라즈마 라이플의 캐파시터가 빛을 발하고, 냉각기들이 폭주할지도 모르는 내부 시스템들을 진정시킨다. 


-우웅-


공기는 없지만, 발을 통해 진동이 전해진다. 운이 좋은 모양이다. 왜곡감지 부서가 탐지한 곳에서 그대로 움브루드가 튀어나올 모양이었다. 보통은 수백미터의 오차를 두고 현실을 침범하는 것이 버릇인 녀석들이 오늘은 특별히 정직한 모양이었다.


"새해 선물인가보-"


그 순간, 지면이 폭발하듯 튀어오른다. 동시에 공간 그 자체가 갈라지며 마치 수천장의 렌즈가 흩뿌려진것처럼 공간이 휘어지고, 팽창하고, 왜곡된 모습으로 변화한다. 소대원중 한명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벌레 다리 같은것을 간신히 피해 공중으로 뛴다. 


"곤충형 놈들이로군."


소대장의 재빠른 판단. 그와 함께 소대원들의 캐스터가 산탄형으로 즉시 전환된다. 땅굴을 판다던가, 무리로 달려든다던가, 외골격으로 실탄병기를 튕겨내던가 하는 흉악한 놈들이기에 산탄형 에너지 병기가 즉효다. 드디어 한놈이 지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Sick Fuck..."


소대원 한명이 신음을 흘린다. 마치 메뚜기 같은 몸통에 흉측하게 달려있는 인간의 얼굴. 몸 위쪽에는 박쥐를 연상케하는 날개들이 수천개가 돋아나 아무렇게나 펄럭이며 역겨운 물결을 자아내고 있었다. 뒤쪽의 다리는 곤충의 외골격이 아니라 인간의 허벅지뼈와 똑같이 생긴 모양이었다. 관절에서는 타르색의 액체가 질질 흐르고, 앞쪽의 다리에는 거머리나 구더기 같은 역겨운 곤충들이 붙어있었다. 얼굴의 눈구멍에서는 이빨이 돋아난 혀가 휘적대고, 뼈가 드러난 입에서도 역겨운 액체를 질질 흘리는 혀가 세 개.


발성기관도 찢겨나갔을 모습이지만 무언가 중얼거린다. 원한과 저주를 담은 주문들. 진동의 매질을 통하지 않고서도 머릿속으로 침투해 두개골 내에서부터 울리는 말들.


"하. 지랄이군."


타카하시의 욕설과 함께 플라즈마 산탄이 불을 뿜는다. 곤충놈들이 지표의 구멍에서 쏟아져나온다. 플라즈마 산탄이 네마리를 찢어발기고 불태운다. 그와 동시에 스무마리가 타카하시를 덮쳐온다. 그는 재빨리 리펄서를 작동시켜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그가 있었던 곳을 덮치는 놈들을 그대로 녹여버린다.


"큿!"


한놈이 등에 붙었다. 놈이 장갑복의 관절을 앞발로 감싼다. 대응할새도 없이 수천마리의 거머리와 구더기들이 장갑복의 관절부위를 통해 침투한다. 


"경고. 내부 이물질 감지."


"제기랄, 인플러쉬 소화 시스템 작동!"


그것과 동시에 장갑복 내부가 새하얀 소화 기체로 가득 채워진다. 원래는 내부의 소화를 진화하기 위한 시스템이지만 이렇게 작은 생물이나 나노머신을 침투시키는 움브루드 상대로는 즉효다. 타카하시가 그대로 낙하하여 놈을 바닥에 처박아버린다. 산산조각나는 놈의 체액이 튄다. 다행스럽게도 부식성은 아니다.


"타카하시. 주의해라."


"예, 소대장님."


그렇게 말하며 그가 장갑복의 거대한 손으로 한놈의 얼굴을 찌부러트린다. 만약 부식성이었다면 그는 즉시 후퇴했어야할 것이다. 사실 타카하시는 소대장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보통 소대장은 월면기지에서만 근무하다가 급한 출동시에만 오기 때문이었다. 보이드 엔지니어중에서도 극도로 유능한 인재인 소대장은 몸이 다섯개라도 부족할 정도의 분량의 임무들을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장갑복 내에 샤워실이라도 완비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심지어 목소리 변조 때문에 진짜 목소리마저 들은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서른마리는 될직한 놈들이 그에게 다시 달려든다.


"플레이머로 전환!"


그의 외침과 함깨 캐스터가 산탄을 뿜는 것을 즉시 그만두고 마치 화염방사기의 화염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플라즈마의 흐름을 내뿜는다. 그 속에 갇힌 모든 놈들이 즉시 재로 변해버린다. 이렇게 위력적이지만, 분명 사정거리의 문제와 에너지의 문제가 있기에 낭비할 수는 없다. 그가 프라이멀 에너지 잔량을 체크한다. 아직 충분하다.


"소대장님!"


소대장을 문득 본다. 열다섯은 되는 놈이 소대장의 등에 붙고, 스무마리가 앞을 덮친다.


"제길, 소대장님!"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흉측한 곤충놈들 사이에서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검이 솟아나와 다섯마리를 베어버린다. 장갑복의 어깨에서도 파괴적인 플라즈마 파동이 뿜어져나와 놈들을 구워버린다. 일회성인지, 백팩에서 새하얗게 연기를 뿜는 카트리지가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소대장의 장갑복의 손가락이 붉어진다. 수천도로 달아오른 장갑복의 손톱이 놈들의 내장을 잡아뜯고 구워버린다. 5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소대장은 사십마리가 넘는 움브루드를 처치해버린다.


"하."


그렇게 감탄반, 안심반의 한숨을 내뱉으며 타카하시가 두놈의 머리를 짓밟는다. 캐스터의 개머리판으로 한놈을 쳐내고 즉시 산탄으로 전환해 공중의 세놈을 구워버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천마리는 될 듯한 곤충놈들은 전부 죽어있었다. 형광색의 덩어리들이 사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수면자들이 혹시라도 지구에서 이 광경을 관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월면에는 위장 위성들이 몇개씩이나 떠다니고 있다. 이제 후속처리반이 -주로 비범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도착하여 이 광경을 깨끗히 정리하고 나면 위성의 위장막도 걷힐것이다.


"끝났군. 난 복귀하겠다."


"네. 저, 소대장님? 그-"


그 순간, 무엇인가 번쩍 빛난다. 방금 죽인 놈들도, 달의 어느곳도 아니었다.


저 멀리, 새하얀 남극 대륙에서 무엇인가가 빛나고 있었다. 


"저게...?"


즉시 남극 현장을 줌인한다. 장갑복의 간이 디스플레이로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마치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닮은 무엇인가 남극 대륙에 서있었다.


"기지, 지금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이쪽에서도 관측중이다. 지구측에서의 보고는 곧 포워딩 하겠다."


즉시 월면기지에서 대답이 돌아온다.


"...큰데."


장갑복의 디스플레이가 영상처리를 시작한다. 새하얗게 빛나는 인간형. 그 등에서는 본체보다 훨씬 긴 날개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본체는 확연하게 알아볼수가 없었지만 그 날개만은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날개까지 합하면 최소 몇킬로미터는 되겠군."


"소대장님?"


"복귀한다."


"전 대원."


그 순간 월면기지로부터의 메시지가 전송된다.


"라그나로크 작전이 발동. 전 대원은 즉시 월면 기지로 복귀. 현상유지팀은 XE 등급 이하의 모든 작업 중지. 현장 전투 요원은 즉시 각 아웃포스트에 보고 후 기지로 집결할 것."


소대장이 아무말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소대원들의 장갑복이 쿵, 쿵, 지면을 울린다.



"...큰가본데요. 혹시-"



그 순간, 종말이 닥쳐온다.


눈을 멀게 할정도의 빛이 남극에서 퍼져나온다. 수천개의 붉은 고리가 그 초자연체를 둘러쌌다가, 파동이 되어 우주로 퍼져나간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사이킥 비명이 대원 전체들의 머리를 파고든다.


"크...윽...?"


그 여파로 모든 소대원들이 자세가 흐트러진다. 오직 소대장만이 꼿꼿하게 서있었다.


"실드 최대출력!"


짧고 다급한 변조음으로 된 명령. 그 즉시 모든 대원이 프라이멀 에너지 잔량을 장갑복의 내, 외부의 실드에 쏟아붇는다. 그러자마자 남극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빛이 퍼져나온다. 빛의 파동에 모든 것이 휩쓸린다. 남극, 움브라, 위성, 월면기지, 타카하시와 소대, 모든 것이.





"잔량 최저. 잔량 최저. 잔량-"


"..큿..."


타카하시가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몸이 무겁다.


"뭐..지?"


천만 다행으로 그의 장갑복에는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눈을 뜬다. 소대가 있던 곳은 마치 운석이라도 맞은듯 패여있었다. 대다수의 소대원들은 그 여파에 휩쓸려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지고, 암석과 고운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소대장님?"


그러나, 대답은 없다. 암석이라 생각되는 것을 밀친다.


"소대장...님?"


그것은 암석이 아니라 소대장의 부서진 갑옷이었다. 안면부가 산산조각나 소대장의 맨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흑발의 소녀였다. 그녀의 눈은 영혼이 빨려나간듯 공허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녀의 장갑복에서 케이블이 뻗어나와 자신의 장갑복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제기랄."


에너지 잔량 기록을 체크한다. 아까의 폭발을 기점으로 급하강, 이후 급상승, 다시 급하강이 기록되어 있다. 소대장은 자신에게 에너지를 전송하여 타카하시를 살리고 자신은 죽은것이다.


"그 반대로 하셨어야죠, 소대장님."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을 중얼거린다. 이상하게도 소대장의 얼굴을, 그것도 죽은 얼굴을 보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우들이 모두 죽어버렸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


"기지. 여기는 즉각대응 5팀이다. 응답하라."


침묵.


"기지, 즉각대응 5팀이다. 구호반과 상황 업데이트를 요청한다."


타카하시가 소대장의 장갑복을 부드럽게 내려놓는다. 잔량을 체크한다. 이 정도 에너지를 가지고는, 중간에 산소재생시스템만 떼어내서 장갑복 내부표피만 입고 가야할 지경이다.


"다 죽었어요."


내려다본다. 


소대장의 장갑복이 열려있다. 그 안에서부터, 소녀가 일어난다. 소대장의 몸이 마치 줄에 달린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일으켜진다. 아까는 보지 못했지만 장갑복이 아까의 파동을 막아내지 못한것인지 무릎 관절이 산산조각나있고, 한쪽팔은 불타 없어져있었다. 타카하시가 반사적으로 물러난다. 진공에서도 소녀의 목소리는 그대로다. 아까의 텅 빈 눈동자는 부자연스러운 회색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넌 누구지?"


묻는다. 저것은 소대장이 아니다. 소대장의 몸을 차지한 무엇인가다.


"저는 당신이 지켜야할 것이에요."


불타 없어진 그녀의 팔이 다시 자라난다. 피부가 옷감이 엮이듯 뻗어나오고, 근육이 다시 자라난다. 뼈는 오히려 손 끝부터 시작해 허공에서부터 재생된다. 무릎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허공에서 자라난 뼈와, 불타오른 부분에서부터 자라난 피부와 근육이 합쳐져 온전한 팔이 된다. 손톱이 검은색인 것을 제외하고는 동일하다.


"..!"


타카하시가 장갑복의 히트 핑거를 작동시키려고 하지만 이런 에너지 잔량으로는 아무런 내장 병기도 발동시킬 수 없다. 캐스터도 어딘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걱정마세요."


소녀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다가와 그의 장갑복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검은 손톱의 색이 마치 장갑복을 물들이듯 퍼져나간다. 장갑복이 칠흑의 갑옷으로 변했을때, 이미 잔량은 평소의 몇배의 양에 달해있었다.


"잔량 540%..?"


이런 작업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해내는 소녀. 그녀는 바로 잡아죽여야할 움브루드다. 장갑복의 손가락이 시뻘개진다. 


"원하면 해봐도 좋아요."


그녀가 담담하게 말한다.


"..."


타카하시는 자신이 이 소녀를 파괴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넌 어디서왔지?"


"알고싶어요?"


"그렇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을것 같은데 너는."


"네."


"..."


타카하시가 말을 멈춘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는 탓이다. 기지로 복귀해야하나? 이 소녀와 더 대화를 나눠야 하나? 아까의 폭발은 뭐지? 생존자는?


"다 죽었어요. 당신이 돌아가야할 기지는 이제 없어요."


"코페르니쿠스 기지가..!"


그러나 타카하시는 그녀의 말이 옳음을 깨닫는다. 아마 달의 이쪽에서 살아남은것은 자신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가요. 왜 이렇게 됐는지 다 알 수 있게 해줄게요."


"..."


타카하시가 그녀를 무표정하게 내려다


본다.



"그리고, 전 지옥에서 왔어요.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