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다크랜즈는 RPG가 아니라 미니어처 게임이다. 다만 설정 만큼은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얘기 좀 해봄. 참고로 미니어처 게임은 규칙이 좆같이 복잡하니 별로 안 권장함. 방진 안 쓰고 병종 유형 종류도 적은데 왜 워해머 판타지보다 복잡한지 모르겠다. 영국 거라 그런가. 어쨌든 그냥 이런 것도 있다는 정도의 간단한 소개다.



 다크랜즈(Darklands)는 로마 멸망 이후 약 6~9세기경 서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도는 실제 서유럽과 비슷하고, 등장하는 민족들도 대부분 실제 당시 해당 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에 모티프를 두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각 민족전승에 등장하는 괴물들과 주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정도. 그리고 사람들도 대체로 그 괴물이나 주술들의 존재를 이해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위 그림은 앵글로 색슨 지배 하의 머시아 왕국을 습격하는 바이킹들. 꽤 대규모 워밴드여서 트롤, 요툰, 흐라픈만 등의 괴물들까지 동맹으로 데리고 왔다. 앵글로 색슨족 진영은 라이칸스로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싸운다.


 물론 실제 중세를 바탕으로 판타지 세계를 재구성한다는 건 90년대부터 흔한 일이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워해머 판타지도 초기구상은 중세 지구에서 모티프를 얻었었고, 포가튼 렐름즈도 비슷한 시도였으니까. 다만 이러한 시도들은 스케일을 무리하게 키워놓고 디테일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21세기 들어 서서히 중단됐다. 흔한 예로 이런 세계설정들이 꼭 중국이나 동구권 넣어놓고 결국 제대로 컨셉트 못잡아서 질질 끌다가 폐기했었다. 대신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대개 자기네 컨셉트에 맞춘 지역을 한정시켜서 지향하는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다크랜즈도 비슷한데, 얘들은 로마 멸망 이후 서유럽의 혼란과 민족간 충돌을 핵심으로 삼는다.



 다크랜즈의 무대가 되는 서유럽과 북해 일부는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실제 지도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당장 영국 북쪽에는 빙하기에 생성된 거대한 빙하지대가 붙어있고, 서쪽 바다 위에는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의 부서진 조각 일부가 군도를 이루고 있다. 참고로 빙하지대는 심해에 사는 크툴루스러운 고대 선주지배종족의 전진기지. 주로 빙하기에 붙잡은 육상동물들을 노예로 육종해서 보내는데 가끔 자기들이 직접 올라오기도 함. 인간들은 이 괴물들을 포모라익이라고 부른다. 아틀란티스는 기술과 주술이 극도로 발달했던 고대의 인류 제국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과거의 그림자만 남았다. 컨셉트는 빛바랜 영광의 아테네인 듯한데... 정작 그리스쪽 설정은 아직 없어서 그리스와의 연관성은 불명. 다만 이쪽은 노예로 쓰기 위해 자기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반인-반파충류인 크톤족의 반란으로 존립이 위기에 처했다. 포모라익과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을 제외하면 대체로는 실제 지역에 상응하는 컨셉트를 지닌 괴물들이 나온다. 웨일즈에는 실제로 거대한 붉은 용과 그 후예들의 비호를 받는 라틴화된 브레톤들이 산다거나 하는 등.


 본 미니어처 게임은 한 민족을 정해서, 정해진 포인트(골드)로 유닛을 고용해 워밴드를 꾸리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약탈과 정복을 통해 세를 불리며 군장이 되어가는 식.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워해머 판타지 캠페인이나 모드하임이랑 비슷한 식이다. 뭐 프로스트그레이브랑도 비슷한가. 프로스트그레이브는 직접 안 해봐서 잘 모르겠긴 하다. 그렇다 보니 의외로 세부적인 지역에 대한 설정들이 조금씩 써 있기도 하고, 제작사도 앞으로 조금씩 지역 설정들을 확장해나갈 예정인 듯.


 개인적으로는 중세 암흑기의 어둡고 전란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해서 흥미를 느끼고 샀지만... 규칙서를 보고는 미니어처 게임을 직접 하는 건 포기했다. 다만 설정은 마음에 들어서 RPG 하는 데 많이 차용해서 써먹고 있다.



 모델 조형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 특히 보병은 그렇다 치고 거대괴수 디자인이 꽤 괜찮다. 다만 레진이라서 소형 제품들은 기포가 있거나 사출선 때문에 손질을 좀 많이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창렬이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좀 모으기는 했는데, 과연 품질에 맞는 정당한 가격인가에 대해서는 살짝 회의가 있다.


 여담으로 내가 모으는 종족인 비잔티(Byzantii)는 모티프는 비잔틴인데, 컨셉트는 그냥 제정 로마다. 이유가 독특한데... 다크랜즈에서는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 힘을 모을 때 기독교와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반-기독교 세력인 디스 파테르 교단과 손을 잡았고, 그래서 저승의 악마들이 힘을 빌려줬다. 기독교가 로마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증오하는 듯하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계약의 일환으로 불멸자가 되서 계속 살아서 제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이후 역대 황제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비잔티 제국은 군제도 별 변화를 겪지 않았다. 악마들의 도움 덕분에 군제나 장비를 바꿔야만 할 필요를 못느꼈다는 듯. 대신 군단 단위로 디스 파테르 교단의 악마술사들이 간부로 배속되고, 이놈들이 중요한 전투에서는 도제들의 도움을 받아 의식을 집전해서 악마 군단을 소환해 동맹으로 쓴다는 듯. 그 외에도 악마의 피로 마인 부대를 만들어서 종심타격대로 쓰거나, 동방에서 붙잡은 낙타 괴물이나 거대 전갈, 타라스크 등의 괴물을 전술병기로 운용하는 야수 보조병단(Auxilia Bestiarii) 따위를 데리고 와서 싸운다. 어쨌든 여기서도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하던 서방 재정복 계획은 계속 진행 중이고, 의외로 역병에도 불구하고 악마술로 꿋꿋하게 개기면서 루그두눔까지 재정복에 성공한 걸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