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틀고 보시면 좋음)



'신입' 요원 노하은은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신입이더라도 완벽하게 교육과정을 이수한 NWO 요원이라면 쉽게 볼 수 없는 모습.


단발에 전형적인 NWO의 블랙 수트를 연상시키는 복장. 조금 떨어져서보면 정장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장 재킷 및 바지와 비슷한 모양일 뿐 재질부터가 격한 활동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운동복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마찬가지로 넥타이 역시 매고 있지 않다. 


그녀는 디멘셔널 아노말리 이후 키워지고 있는, 이른바 '새로운' 세대였다. 2000년도 이전의 엄청난 기술력과 자원, 인원을 잃어버린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 남아있는 자원을 가지고 키워낸 새로운 계몽과학자들. 그들은 흔히 '2세대' 요원으로 불리곤 했다.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하고, 바이오모드나 사이버네틱스의 이식도 되어 있지 않은 하은이 요원으로 완성되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유니언으로서는 슬프게도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디멘셔널 아노말리, 금융 위기, 중동 지방의 연이은 내전 등 연이은 위기가 몰려왔기에 모든 것이 후순위로 밀렸던 여파다. 


극동 아시아의 소규모 연합 아말감 중 하나인 AP-5의 지휘관인 웨더스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기 그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컨스트럭트에 배치해서 심문요원으로나 써야 딱이지만 상부에서는 "현장 요원"으로 키우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항의할까 생각했지만 당장은 손이 부족하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였지만..


덕분에 그녀는 이번 임무에서는 옵저버에 불과했다.

웨더스 소령이 두개골에 내장된 VDAS를 작동시킨다. 그의 눈 앞에 증강 현실이 펼쳐지며 수백개의 관련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허름한 도축 공장의 지하에 마련된 클럽. 웨더스 소령이 천장에 메달린 고깃덩어리를 밀쳐내며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고깃덩어리들은 전부 가짜다. 아무리 수면자들의 취향이 더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하더라도 생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테니까. 

그는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서는 가짜 고깃덩어리들을 밀어제끼 솜씨 좋게 지하로 가는 계단을 찾아낸다. 하은은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그녀가 쓴 안경 역시 VDAS 장비다. 예전의 유니언이라면 신입 -그것도 NWO의 - 요원에게 '벗어버릴 수 있는' VDAS 장비 따위는 절대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용 자원, 그리고 몇달어치가 밀려있는 사이버네틱스 수술 대기자 목록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계단에 나뒹구는 페인트 조각들이 일정한 박자로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전자음, 묵직한 드럼과 베이스가 엉망진창으로 울려퍼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계단의 코너를 돌자 서늘한 온도에도 민소매 옷만 걸치고 있는 바운서가 팔짱을 낀 채로 철문앞에 서있었다.

웨더스의 VDAS가 그의 다양한 정보들을 읽어낸다. 주위 온도와 혈색을 비교한 체온, 눈동자의 미세한 흔들림에서 보이는 중독 증상, 비정상적으로 새파랗게 불거진 정맥, 골격구조를 감안했을 때 거의 유지가 불가능한 근육량. 뻔했다. 구울이다.

"뭐-"

웨더스는 망설이지 않고 번개 같은 속도로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사람의 몸에서는 들릴 수 없는 금속음과 피스톤의 소리가 코트 속에서 들려온다. 바운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리가 휜다. 다음 순간, 웨더스가 체격 차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 자의 몸을 들어올려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꿈틀댔다.

"놀랐나, 요원?"

"아, 아닙니다."

놀랐다는 말투에 고개를 내저을 뻔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하은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웨더스. 예전의 블랙 수트 요원이었다면 아무리 경험이 적어도 저 정도로 평정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문 뒤에는 미친 놈들의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거다. 난 자넬 보호해 줄 수 없어. 알았나?"

"ㅇ..예."

웨더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철문을 열어제낀다. 그것은 은행 금고에나 쓰일 법한 거대한 철문이었지만 웨더스는 가볍게 그 문을 열어제꼈다. 하은은 그 뒤를 따라들어간다.


귀가 먹먹해지는 음악.

레트로 테크노의 비트에 EDM을 잔뜩 얹은 하드 코어 테크노가 귀청을 때린다. 하은은 이것이 단순한 음악이 아님을 알아챈다. 와드Ward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안에 들어오는 인간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단순한 사고 밖에 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교란자의 술법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재빨리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 귀에 꽂는다. 금속으로 된 귀마개 같은 그것의 둘레가 붉게 빛난다. 그녀가 정교한 손놀림으로 그 디바이스의 둘레를 살짝 몇번 돌리자, 어느새 칼리브레이션이 완료된다. 이제 그 음악은 유니언의 초급 요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감각 필터에 의해 걸러져, 잡담 수준으로 그 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 목소리는 들리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목소리는 깨끗하게 잘 들려온다.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자, 웨더스 소령이 대기하라는 제스쳐를 짓고 성큼성큼 인파 속으로 들어선다. 두꺼운 코트가 그를 보호해주기라도 하는 것인지 미친듯이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의 인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DJ와 헐벗은 댄서들이 올라서있는 단상으로 다가가는 그.

VDAS가 미친듯이 데이터크롤링을 시작한다. 그러나 소령의 시선은 처음부터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거머리들의 존재를 VDAS들이 알리지만 그는 무시한채 DJ만을 노려본다. 웃음짓는 해골 모양의 가면을 쓴 DJ가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어댄다. 서서히 다가가는 소령.

그러나 이런 복장의 그가 눈치채이지 않을리가 없다. DJ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는 순간, 노래가 정지하고 클럽이 침묵에 빠진다. 불이 꺼지고, 그 다음 순간-


끼야아아악-


괴성과 함께 다시 노래가 미친듯이 클럽 전체를 흔들어대고 붉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광란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그것과 동시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소령을 덮쳐온다. 마치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굶주린 맹수처럼 몸을 던져 그에게 부딪히고 체중을 실어 그를 깔아뭉갠다. 그가 순식간에 광란의 무리 안으로 사라져버린다. 그 위에 또 다른 인파가 덮쳐와 인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더미가 만들어져간다. 방금의 음악은 그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수면자들의 공격성을 극대화시키고 조종하여 마치 좀비처럼 만들어버리는, 음악으로 된 현대의 사술이었다. 

"소려-"




하은이 멀리서 소리치려고 하기도 전에 그 더미에서 다섯명은 되는 사람들이 날려져 단상에 처박힌다. 그 다음은 일곱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은의 방향으로 날아온다. 그녀는 날래게 사람들을 피한채 웨더스 소령이 인간의 무리로부터 뛰쳐나오는 것을 본다. 손에 의해 찢겨져버린 코트 속에서 강철의 갑옷이 스스로를 조립해간다. 등 뒤에서 외골격이 뻗어서 그가 입고 있는 바디 수트 위에서 결합되고 가슴쪽에서는 외피가 펼쳐져 순차적으로 가슴, 어깨, 팔, 허리를 덮어간다. 그는 두꺼운 코트가 아니라 자체수납형 알란슨 R-25 하드수트를 아주 얇은 코트로 가리고 있던 것 뿐이었다. 그가 막 완성된 왼팔로 자신을 덮쳐 오는 자를 찍어버린다. 그 운 나쁜 거머리는 그대로 두개골이 부셔져 바닥에 쳐박힌다.

하은의 VDAS가 이제야 막 DJ를 스캔하여 정보를 띄우기 시작한다.

전 이터레이션 X의 프로그래머Programmer -조직 개편전의 계급 명이었지만- 였던 표트르 슈릭. 사운드 엔지니어 중에서는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그가 네판디로 타락한 것은 대략 30년 전이었다. 각지에 광란의 레이브 파티를 열어 수면자들이 서로를 살해하게 하고 식인 축제를 벌여왔던 그. 거기에 쉽게 먹이를 얻을 수 있고 죽어가는 자신들의 말초신경을 꽉 채워주는 것에 흡족한 뱀파이어들까지 달라붙었기에 그는 보통 골치가 아니었다.

"끼야하하! 어쩌시나! 여기 사람들을 전부 죽이지 않으면 안될텐데!"

그의 음악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닌 기괴한 목소리가 클럽 전체에 울려퍼진다. 동시에 어두운 구석에서 뱀파이어들이 나타나 하은을 향해 쇄도한다.

"큿..!"

그녀가 옷 속에서 플라즈마 피스톨을 꺼내 가장 가까운 한놈의 머리를 녹여버린다. 그 다음 녀석은 재빠른 동작으로 등으로부터 받아넘겨 쓰러트린다. 그렇지만 그 틈을 노리고 한놈이 하은의 품으로 파고 들어 기분나쁜 송곳니를 그녀의 목덜미에 박아넣으려한다.

콰직.

간발의 차로 놈의 머리를 무엇인가 잡아 끌어당기며 산산조각 내버린다. 보랏빛의 피부를 지닌, 마치 외계 생물의 것과 같은 촉수와 그 끝에 달린 세 개의 손톱 사이로 부서진 거머리의 뼈 조각과 뇌수가 흘러내린다. 그 끝에는 이런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있었다. 만약 이 장소가 조용하고 정상적인 조명이 있었다면 그녀의 흰 가운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있음이 보였을 것이다. 어머, 더러워라, 하는 말과 함께 그 촉수가 순식간에 수축해서 그녀의 왼팔로 되돌아간다. 그 모습은 어딜봐도 구분이 가지 않는 인간의 팔이었다.




"자아, 방출 끝~"

경쾌한 목소리 -아니, 조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목소리- 와 함께 방 안의 수면자들이 전부 쓰러져버린다. 서 있는 것은 표트르, 소령, 하은, 방금 들어온 의사, 그리고 몇몇 영향 받지 않은 뱀파이어들 뿐이었다. 이미 그녀가 방출한 무색무취의 생물병기가 수면자들의 청각신경을 모두 마비시켜 순식간에 소리를 통한 세뇌를 풀어버린 것이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수면자들은, 우습게도 그대로 쓰러져서 자고 있는 것이다.

"죄송해요, 소령님. 현장에서 합성은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서요!"

그녀가 강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한다. 그러다가 아직 그 끝에 흡혈귀의 뇌수가 묻어있는것을 알아차리고는 툭툭 가운에 털어버린다. 그녀의 가운에 또 다른 불유쾌한 자국이 추가된다. 웨더스가 끄덕인다. 

"...하, 그럼 소령. 다음에."

"도망가는거냐, 표트르?"

"무슨 소리신지. 난 애초에 거기 있지도 않았다고. 꺄하하하하!"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동시에 조명도 음악도 모두 꺼진다.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있는 두 명의 흡혈귀와 쓰러진 수많은 수면자들, 그리고 소령의 팀밖에 그 자리에 남지 않았다.

"제기랄, 프로젝션이었군."

웨더스가 허탈하게 웃음 짓는다. 그럼 그렇지. 30년이나 도망다닌 놈이 이렇게 쉽게 추적당할리가 없었다. 이번은 장난, 아니면 그의 아말감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살펴보기 위한 케이스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이 자식!"

쥐어짜내듯 외치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흡혈귀를 한손으로 잡아채 바닥에 내려꽂는다. 죽이지는 않는다. 심문의 대상이니까. 여기에 모인 흡혈귀들은 도시에서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카마릴라의 녀석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약하고 한심한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네판디의 얄팍한 술책에 넘어가서 '추종'자가 되어버렸겠지. 뱀파이어의 기준에서 제정신인 놈들이라면 절대로 이런 단순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 흡혈귀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필시 얼마 전까지 인간이었던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이상 그녀에게 유니언이 보여줄 자비는 없었다. 정말 정말 운이 좋다면 심문 후 프로제니터에게 샘플로 제공되어 말소 당하기 전까지 그 구차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클린업 팀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하은은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은 넋이 나간 상태로 서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죽임당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옵저버로서 첫 작전을 지켜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