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블랙수트, 노하은은 자신의 방에 돌아와서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옷에 뱀파이어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메스꺼운 냄새를 없애려는듯 그녀가 옷을 벗어 바스켓에 던져넣는다. 쇠락한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지만, 아직 요원들이 손빨래를 해야될 정도는 아니다. 자동 수거 시스템이 작동해서 지하의 세탁실로 그녀의 옷을 옮긴다. 아마 내일 아침 정도면 완벽하게 세탁된 옷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세면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손이야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깨끗했지만 손목부터는 미처 옷이 가리지 못한 곳에 피가 튀어있었다. 그녀가 따뜻한 물로 그 피를 씻어낸다. 세면대가 검푸른색으로 물들었다가 서서히 깨끗한 물로 바뀌어간다. 세면대 위의 거울 안에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자신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 일순 호기심이 생겨, 아까의 여성 뱀파이어에게 -레베카라고 했었지- 했던 것 처럼 친절한 표정을 지어본다. 아마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일했다면 이달의 사원으로 지정될 수 있을 만큼 좋은 인상을 주는 얼굴이다.
이번에는 남자 뱀파이어를 고문할 때 했던 것 같은 무표정한 인상을 짓는다.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칠것 같은 차가움이 그녀의 눈빛에서 묻어난다. 미칠듯이 몸부림치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눈이 짓이겨져 체액과 피가 줄줄 흐르고, 한쪽 귀 역시 져며지고 안쪽이 후벼파진 모습. 그 놈은 매 순간의 고통에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통각이 없었기에 고통은 없었지만, 아픈 것과 괴로운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그녀는 고문을 계속하며 딱 한마디만을 속삭였다.
"말해."
놈은 반정도 박살난 턱관절을 열심히 움직여대며 잘도 아는 것을 있는대로 뱉어냈다. 예전 근거지, 동료들, 자기가 어디 출신인지, 일행 중 뱀파이어는 몇이고 네판디-놈은 대신 '공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는 몇인지, 아는 것을 있는대로 불었다. 아마 녹화된 놈의 자백은 지금쯤 오퍼레이터 VI에 의해 분석되어 웨더스 소령의 책상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가 현실교란자를 심문해본것은 처음이었다. 일단은 성공하긴 했지만, 놈의 눈알을 짓이겨버릴때만 해도 성공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분명, 이 손으로 뱀파이어의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망가트려버렸다. 동시에 이 손으로 다른 뱀파이어를 속여 자신을 믿게 했다.
"무서운가?"
교관The Man의 목소리가 그녀의 옆에서 묻는다. 언제나 처럼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
"..."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든다. 그녀의 나신은 탄탄하게 균형잡인 운동선수의 몸 같다. 샤워부스 안으로 발을 옮기는 그녀 옆에서 교관이 다시 묻는다.
"무엇이?"
"..."
그녀는 고민한다.
"모르겠습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이 그녀의 몸을 씻어내린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그 여성 뱀파이어가 떠올랐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겠지. 아마 지금쯤 수혈팩을 빨며 잔뜩 희망에 겨워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안된 자들은 인간 시절의 가치관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인간이 아닌 것인가, 라는 의심도 가끔 들 정도가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인간성 그 자체와 멀어진다. 같은 인간을 사냥하고 피를 빨면서 서서히 밤의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녀도 몇년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되리라.
...수면자들을 보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뱀파이어를 제거하는 것이 유니언의 사명이다.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뱀파이어들을 위한다니? 셀레스쳘 코러스의 어휘를 빌리자면, 이단적이기 그지 없는 생각이었다. 고개를 흔드는 그녀. 만약 NWO의 요원 양성 과정을 완전하게 치룬 요원이라면 이런 생각 따위는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씻는데 집중한다.
"이것밖에 없더군."
웨더스 소령이 간결하게 말한다. 그는 방금 자백 내용에 따라 놈들의 전 본거지를 수색하고 오는 길이었다. 당연하게도 잡동사니 기기를 몇개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예상대로군요."
에이팍이 전혀 놀랍지 않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애초에 흔적을 남길정도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거, 분석해보겠습니다."
가방에 담긴 기기들을 받는 에이팍. 그가 기기들을 책상위에 가지런하게 놓는다. 그가 장비들을 노려보더니 백사장을 호출한다. 그는 이 컨스트럭트가 아니라, AP-25 아말감의 자체 예산 조달을 위해 그가 운영하는 수면자 사회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옛날이라면 포그롬을 수행하는 아말감이 자체 예산을 조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직이 완전히 망가졌음을 반증하는 사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다수의 아말감에서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백사장님. 지금부터 놈이 사용했던 기기들을 전부 분해해서,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부품들을 전부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부품들의 생산처를 알아봐주십시오. 벌써 몇개만 봐도 익숙한 것들이 있군요."
"어, 어어. 알았다네."
백사장이 대답한다. 에이팍이 동시에 날랜 손놀림으로 기기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도저히 분해되지 않을 것 같은 기기들이 케이스가 벗겨지고, 기판이 분리되어 가지런하게 놓인다. 하나하나씩 분해되기 시작한 부품들을 뒤져 어떤 것은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고, 즉각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리스트에 넣는다.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거의 90% 정도의 부품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백사장에게 전송했다. 이제 그가 신디케이트 전용 전산망을 통해 그 부품들이 신디케이트의 산하 기업에서 공급되었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먼저 머큐리 로지스틱스의 물류 정보 시스템을 이용해 운송비용, 생산지, 판매처, 유통망 정보등을 통해 어느 회사에서 생산되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에서 언제 팔렸는지를 알아낸다. 그 정보만 있다면 대충 이 기기들이 어디서 언제 조립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를 통해 표트르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프로파일링을 통해 놈의 다음 목적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운이 좋다면 놈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분석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웨더스 소령은 AP-25 아말감의 상부조직, 즉 AP 심포지움Symposium의 간부들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AP-25 아말감의 성과에 꽤나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웨더스 소령. 우리 심포지움에서 오랜만에 듣는 좋은 소식 고맙다네. 그렇지만, 자네가 아는대로 상부에서는 아직도 포그롬Pogrom의 규모를 늘릴 생각이 없어.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몇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걸세."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예산 부족, 그리고 인원 부족에 시달릴 거라는 말이었다. 결정적인 단서를 잡더라도 상부에서는 히트마크를 포함한 타격팀을 지원해주는 정도일 것이다.
"심리전 요원의 추가 배치는 없는겁니까? 최근 현실교란자들이 외과적 수술방법을 통해 자백제 자체를 무효화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링을 포함한 심문과 심리전에 능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완벽하게 교육을 받은 요원이라도 있다면..."
"미안하네, 소령.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네만..."
"알겠습니다. 그럼 신입 요원으로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알겠네."
홀로그램 통신이 끊어진다. 웨더스가 깊은 한숨을 쉰다. 문득 창고에 처박혀 있는, 구형 히트마크가 생각난다. 한때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히트마크나, 페이퍼 플랜으로 남아있었던 나노머신을 운용하는 최신형에 대한 소식을 듣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남아있는 것을 보존하는데 급급한 지경일 것이다. 심지어 그의 아말감에서 운영하는 MK-V 히트마크는 프라이멀 에너지를 공급하는 섬세하고, 제일 비싼 부품이 파괴되는 바람에 작년부터 창고 신세였다. 그것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웨더스, 그것도 이 아말감의 관리자인 그가 외골격수트를 입고 최전방에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제기랄..."
그가 투덜거린다.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다. 스탠드에 걸려있는 그의 옛 군번줄을 집어든다. 선명하게 "VOID ENGINEER, NSC"라고 새겨진 태그가 형광색으로 빛난다.
이 군번줄을 걸치고 있을 무렵 그가 알고 있었던 수많은 능력있는 요원들은 전부 죽었다. 외우주에 나가있던 자신의 동기들은 디멘셔널 아노말리에 휘말려 자신들이 지휘하는 함대와 함께 연락이 두절되었고, 월면기지는 박살났으며, 수많은 딤 움브라의 자산들이 소실되었다. 그가 캐비넷을 열고 오래된 사진들을 꺼내본다. 지금은 사치품이 된 홀로그램 액자다. 단순한 3D 뿐만 아니라 찍힌 사람들의 말, 그때의 행동, 그리고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이 물품은 보이드 엔지니어의 발명품이었다. 딥 움브라에서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들과 싸우다 보면, 어딘가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디멘셔널 아노말리 전까지만 해도 모든 보이드 엔지니어들은 이런 물품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보통은 장갑복 안에, 또는 함장실 안에, 아니면 연구실 안에 놓여진 홀로그램 앨범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이 무너지지 않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디멘셔널 아노말리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그 가운데, 그의 옛 연인이 있었다. 그녀 역시 외우주에서 연락이 두절된 보이드 엔지니어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함장이 하고 싶었나."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녀는 무의미하게 죽지는 않았으리라.
디멘셔널 아노말리로 인해 깨져나가는 현실을 틀어막고, 자신들의 부하를 어떻게든 구출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소령님?"
"아, 백사장."
"예. 추적 완료 되었습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군요. 대도시란 대도시는 싹 돌았는데요?"
"알겠네. 데이터를 정리해서 컨스트럭트로 보내주게."
"네."
이제 또 신입요원에게 기대야할 상황이 되었다. 더욱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소령이, 한숨을 쉬며 액자를 다시 캐비넷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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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 추적: 데이터2, 물질1, 프라이멀 유틸리티1 (+엔트로피1~2) (+정신 2~3)
이 프로시져를 통해 테크노크랏은 어떤 기기의 모든 부품들의 생산처와 유통 내역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내역과 유통 체계 및 비용을 통계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물품이 언제 어디서 조립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엔트로피와 정신 스피어를 더한다면 해당 기기의 제작자가 어떠한 환경에서 기기를 제작할 것인지를 읽어내 다음 행선지를 예측할 수 있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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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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