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 암살자, 탈리아는 막 명상을 끝낸 상태였다. 명상의 끝에는, 항상 그녀가 입회때 경험했던 가사 체험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거짓의 그림."
그 체험의 마지막, 삶으로 끌어올려지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속삭인 한마디. 그것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깨어나기Awakened 전의 그녀는 현실을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몰두하는 극사실화 작가였다. 그랬기에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일까.
의문을 접어두고 그녀가 일어선다. 희미한 촛불 빛 아래, 나체인 그녀. 애쉬 색으로 염색된 머리카락이 그녀의 허벅지까지 내려와 상반신의 뒷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거울 앞에 서서, 캔버스와 붓을 든다. 신중한 손놀림으로 스스로의 몸에 그림을 그려간다. 그러나 그녀의 몸을 덮은 그림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붓은 마치 자신이 어떤 색을 써야할지 아는 듯 색을 바꿔가며 그녀의 피부 위를 스친다. 피부 위에 피부색이 덧칠해지고, 눈썹 위에는 눈썹이, 손톱 위에는 손톱이 그려진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그녀는 손이 닿지 않는 곳, 즉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는 부위, 그리고 눈을 제외하고는 전신이 물감으로 뒤덮힌 상태였다. 그러나 누군가 와서 일부러 긁어내지 않는다면 절대 그녀의 피부에 정교한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그녀가 팔레트를 내려놓고는 심호흡을 한다. 허름한 모텔 방 안을 둘러보는 그녀의 시선 끝에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는 탈리아와는 정 반대로, 정장을 입은 상태로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극도로 평온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며 탈리아가 고개를 젓는다. 이내 그녀가 방을 나선다.
"..."
거리에 부는 바람. 탈리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그녀는 나체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눈치채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녀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그런것처럼이 아니라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녀의 피부를 덮은 가짜 피부는 수면자들의 눈에서 그녀를 완전히 감춰버리는 주박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윽고 도착한 곳은 한 제약회사. 그녀가 로비로 들어선다. 최근 이 회사는 잇다른 신약 개발에 성공해 로비를 개장한 상태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신약은 약이 아니었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수면자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 약은 어느 정도 인체에 축적되면 심각한 증후군을 일으키는 독약이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된것은 그녀가 긴밀하게 연계를 맺고 있는 컬트 오브 엑스터시 주축의 카발이 최근 그 사실을 알려왔기 떄문이었다. 그들은 주로 마약 중독에 시달리는 수면자들을 관리하는 일련의 치료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운영하는 시설에만 신약이 대량으로 공급되었던 것이다. 듣기로는 상당수의 환자들이 부작용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가 로비를 가로지른다. 막 야근을 끝내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문을 열때 몰래 숨어들어가는 그녀. 미로와 같은 통로들을 날래게 지나치던 그녀가 한 곳에 멈춰선다. 건물 뒷편의 외벽 바로 안쪽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퇴근한 시점이라 그녀가 보인다 해도 아무도 눈치채치 못하리라. 그녀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움큼 쥐어 마치 붓처럼 꼬아 손에 쥔다.
머리카락을 붓으로 삼아 벽에 무엇인가 그리기 시작하는 그녀. 문이다. 경첩, 손잡이, 그리고 열쇠 구멍까지. 아무리 수면자라도 극사실주의 화가라면 주의깊은 작업을 통해 적당한 각도에서 본다면 도저히 진짜 문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깨어난자, 메이지Mage다. 그녀가 그려낸 그림은 수면자가 그린 것과 아주 근본적인 면에서 다르다.
"후."
심호흡. 그녀가 문 그림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손이 손잡이를 잡아 당긴다.
"찰칵."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문 그림, 아니, 이제는 진짜 문이 된 그것이 열린다. 그녀 앞에는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동료들이 있었다.
"으앗, T! 제발 옷좀 입고다녀!"
그 말과 함께 제일 먼저 뛰쳐들어오는 한 소년. 그가 뺑뺑이 안경을 가린채로 그녀에게 소리친다. 누군가 자세히 본다면 그의 팔에는 혈관이 아니라 퀸티센스가 번쩍이는 관이 통과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녀 뒤로 양팔에 문신을 한 남성이 걸어들어오며 탈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문신들은 전부 동물의 형상이었다. 때때로 도저히 문신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듯, 그 문신들이 꿈틀거리고 피부에서 '뛰쳐나오려' 한다. 그때마다 남자는 그 문신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는 듯한 동작을 한다. 마지막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은 탈리아와 똑같이 생긴 여성이었다. 탈리아가 얼굴을 찌푸린다.
"칸나씨, 제발 악취미적인 짓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녀를 똑같이 닮은 형상이 씨익 웃는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이 원래의 동양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손에 화장거울을 들고있는 그녀의 눈은 아주... 맑았다. 마치 거울처럼.
"탈리아, 악취미가 아니라구."
"네, 그러시겠죠."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며 문을 닫는다. 문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닫혔다.
"어라, 데미안은?"
"지하층에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또 자?"
소년이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응."
탈리아가 대답한다. 그녀는 아직도 나체였다. 소년은 그녀를 힐끔힐끔 바라보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복도 전체의 빛이 일렁인다. 형광등의 빛줄기가 휘어 탈리아 일행을 향해 집중된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희미해지는 빛.
"...데미안이 침입에 실패한 모양이군요."
탈리아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희미해지는 형광등. 복도를 뒤덮은 그림자가 괴상한 형상들을 취한다. 현실 같으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이미지와 소리들이 휘몰아친다. 마치, 누군가의 꿈처럼. 이내 그 회오리를 뚫고 그림자에서 무엇인가 나타난다. 검은 안개 같은 그것은 점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그림자가 마치 그것 형상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붙들지만, 그 형상은 이내 빛 속으로 내딛었다. 아까 탈리아가 있던 방에서 자고 있던 남자였다. 그는 아직도 졸린 표정이었다.
"실패했습니다."
"어라, 데미안? 진짜로?"
소년이 명랑하게 묻는다.
"네, 니콜. 건물 지하는 저의 꿈시야Dreamsight로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각오해야할 겁니다."
그 말에 소년이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나는 꿈나라에선 뭐든지 되는지 알았는데."
그러면서 소년이 매고있던 가방을 열어 유치한 디자인의 총을 꺼낸다.
"...그렇다면 내 암흑물질 방사기로 전부 부셔버려야하지 않겠어?"
"제발, 니콜. 이런 좁은 곳에서 프로토타입을 쓰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데미안. 탈리아가 그 가운데서 한숨을 쉰다. 아무래도 쉽지 않을 모양이었다.
ㅡㅡㅡ
ㅡㅡ 가증스러운 트래디션들!
유치하다니ㅡㅡ
장난감처럼 생겼다고 해라!
나체주의자들 모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