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알피지 모르는 쓰는 티알피지 소설.



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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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로부터.

헬리아가 무언가를 다짐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무려... 10년!

한 문장으로 축약하기엔 긴 시간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의 장면 압축율을 고려해보면 평범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단... 10년!

그러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유년기를 네 글자로 조진다... 이런 화자 편의주의 전개는 당사자에게 미안한 짓이다. 듣는 이들 사이에서도 납득하지 못하는 자가 속출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요약판.

요약하자면, 헬리아는 이러저러해서 성장을 거듭했다. 살아온 날 만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장했다. 어른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이런 에피소드도, 저런 해프닝도 잔뜩 경험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애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렇게.

살갑게, 아련하게 10년은 뚝딱 지나갔고.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호프포.... 그럼, 항상 고맙네."

수염도 풍성, 뱃살도 풍성한 드워프가 말했다. 장소는 집이 아니다. 건물 안에는 헬리아와 풍성한 드워프 뿐이다.

"그래요~ 어서 가버리세요~"

헬리아가 드워프를 문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10년 전과는 다르다. 키는 물론이고 목소리도, 눈매도 다르다. 감도는 분위기가 휙 바뀌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부분이라곤 황금에 불꽃을 먹인듯한 머리칼 뿐이다.

"그... 그런데 어떤가, 헬리아? 방금 전 제안은?"

드워프는 뒷발꿈치로 퇴장에 저항하며 말했다.

"못 들은걸로 할건데."

"그렇지만 그만큼 요금을 치르잖나! 제안을 받아들이게! 두 배...! 아니, 세 배는 내겠네!"

"내 몸은 하나잖아. 그러니까 그냥 가요."

"어째서! 내 말을 듣고 찾아오려는 사람이 잔뜩 있네!"

"어쩐지! 영감이었어? 호객행위는 하지도 않는데 벼레별 놈들이 다 찾아오더라..."

요전부터 부디, 제발, 한 번만 해달라며 치맛자락 붙들고 애원하는 놈들이 늘어난 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쪽은 몸이 못버틴다.


"그럼...! 그렇다면 나만이라도! 한 두달에 한 번은 너무 뜸해! 좀 더 나만 봐주게!"

"아 됐다니까! 어제도 당신한테 맞춰준다고 밤샜잖아! 이거 안보여?"

헬리아가 가리킨 눈가에는 격렬한 수면 부족의 증거로 다크써클이 올라 있었다. 그 와중에도 진상 손님을 밀어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풍성 드워프도 저항한다.

"시러시러-! 이제 나를 만족시켜주는건, 헬리아밖에 없는데! 이거보게! 잘 보라고! 이렇게 크고 딱딱하게 만들 수 있는건 헬리아 뿐인데!"

"아 그거-!"

눈물나네!

헬리아는 기어이 풍성 드워프의 등짝을 걷어찼다. 풍성 드워프의 둥근 몸이 흙바닥을 굴렀다.

"다음에는 세 명이서 함께 찾아오겠네-! 부탁함세-!"

풍성 드워프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가며 외쳤다.

"더는 무리라니까~ 그대로 머리나 깨져버려 영감~"

헬리아는 손을 흔들며 손님을 배웅했다. 그리고는 냉큼 문을 닫아버렸다.

"후우..."

문에 등을 기댄 채로 주르륵 주저앉아버리는 헬리아. 온 몸은 땀투성이에 정신은 바짝 메말랐다. 어제 밤 내내 풍성 드워프의 까탈스러운 취향을 만족시켜주다보니 이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지. 어제 밤은."

헬리아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손만 아니라 온 몸이 저릿저릿하다.

저런 난잡한 요구를 해대는 손님은 왠만하면 받고 싶지 않다... 만은, 그 부분은 풍성 드워프의 말 대로다. 

개인 손님을 받으면 평소보다 압도적으로 돈이 된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일수록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손님을 맞이할 때 마다 세상에 부자도 많고 눈에 뵈는게 없는 머저리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도 이렇게 삭신이 고생이면... 봉 잡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네. 저 나이에 체력도 좋아. 오히려...  싸게 먹힌다는 느낌 아닌가? 나? 옆집은 옆집대로 밤에 잠을 못잔다고 불평불만이고... 으차아-!"

헬리아는 기지개를 피듯 팔다리를 쭉 뻗었다. 키는 클대로 컸지만 인간에 비하면 꽤 짧다. 남자는 당연하고, 같은 나이대의 여자하고 비교해도 머리 하나 쯤은 키가 작다. 드워프 특유의 볼륨감은 군데군데 잡혀있지만, 이게 언제 근육으로 변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이 최근의 고민이다.

"아야야... 내 허리..."

헬리아는 남은 힘을 짜내 일어났다. 바닥에는 축축한 가죽 끈이나 용도 불명의 철제 기구 등이 산재해있다. 영업 도구를 요리조리 피해서 헬리아는 욕실로 들어갔다.


흐음.

갑자기 10년 뒤.

가타부타 설명 한 줄 없었지만.

지난 10년, 헬리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 헬리아는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걸까.

대화를 들어보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것 같은데...


쏴아아아-.

망~치 나가신다

명~치 부수신다

강철의 불꽃 댄디남

뜨끈한 목욕물에

방벽도 헤롱헤롱


정작 설명을 해줘야할 헬리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피로를 씻어내고 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탁자 위에 펼쳐진 두꺼운 책에 힌트가 있다.

붉은색으로 꼼꼼히 마감된 양장본은 얼핏 보기에도 평범한 책이 아니다. 심지어 페이지 위로 적힌 글씨는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한다.

최신 마나 기기에 예민한 얼리 어댑드워프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24인치 와이드 페이지! 손목을 배려하는 바이오디자인! 발열/소음을 동시에 잡은 최적 설계! 잘못볼 리 없어! 마나북 아케인 프로3-! 그렇지마안... 저장 용량과 장비 호환성이 약간 아쉽고, 무엇보다..."

라며 한없이 긴 설명에 들어갔겠지만.

어쨌든 [아케인 프로3]다.

노련한 드워프 광부의 월급을 털어도 사지 못할 아이템이 여봐란듯이 탁자 위에 놓여있다. 여기서 일단 그녀의 수입을 가늠해볼 수 있고, 저절로 갱신되는 글 내용으로 그녀의 직업을 파악해볼 수 있다.


[정성을 다해 터치하는 헬리아의 오피스]

공지 : 이번 달은 예약이 밀려있어 별도의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기본 관리 서비스 : 13만 포인트

고급 곤리 서비스 : 25만 포인트

특별 관리 서비스 : 50만 포인트

개인 관리 서비스 : 사이즈 보고 정해요.


"거미 여인도 보글보글 타임~ 이야~호~ 새로 태어난 것 같네 진짜."

흰 샤워 타올을 두른 헬리아는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탁자에 앉았다.

-25건의 새로운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귀찮은 자식들이네. 예약은 꽉꽉이라고 적어놨을텐데. 글씨를 선별해서 읽는건가?"

쪽지를 대충 훑어보면 죄다 나부터 해달라는 아우성인지라, 헬리아는 눈을 비비며 페이지에서 눈을 뗐다.

"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말을 잇지 못하는...

"아!악!! 그놈의 영감...! 이렇게 별여놨으면 좀 치우고 갈 것이지!"

블로그는 블로그대로 시끄럽고 공방은 공방대로 처참했다. 뒷정리도 못하게 쫓아낸 것은 자신이지만 화풀이는 자유다. 그야 내 공방이니까.

"흑흑... 피곤해서 눈치 못챘어... 완전... 폴터가이스트도 도망갈 판이잖아..."

헬리아는 입을 가리고 믿을 수 없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곱게 상자에 들어가 있어야할 온갖 수리 재료들이 폭발적으로 흩어져있다. 어제 만들다 실패한 검은 멋대로 바닥에 꽂혀있다. 한 두 자루가 아니라 미칠듯이 흉흉하다. 그와중에 창문은 왜 깨져있는지도 모르겠고...

"영감... 기어이 모루마저 녹여버린건가..."

쭈글쭈글하게 울상을 짓고 있는 모루를 보며 특별 요금을 청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헬리아였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니 보고도 모를 수 있으니 설명하자면 헬리아의 특기는 수리 및 재가공이며 여기는 그녀의 공방이다.

헬리아 본인은 리터칭Re-touching이라며 그럴듯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본질은 숨길 수는 없다. 전문으로 삼기에는 좁디 좁은 영역이다. 포장을 해본들 고치는 일은 만드는 일의 뒷바라지다.

장비 수리... 그러니까 리터칭할 무기가 눈 앞에 있다고 치면.

형편없는 드워프 스미스라도 쓸만하게 손보는 것은 가능하다.

어지간한 드워프 스미스는 새것처럼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뛰어난 드워프 스미스는 새것과 똑같이 벼려낼 수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주인공 헬리아. 헬리아의 블로그가 미어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헬리아 손에 리터치된 무기는 기존보다도 월등한 무언가가 된다.

그리고 어젯밤.

그녀의 특기와는 별개로, 무릇 어떤 물건이던 만들고 나서 손을 대는 방식보다는 만드는 와중에 손을 거드는 쪽이 당연히 성능이 좋다. 근육 트레이닝 대신 골격 구조부터 튼튼히 짜올리는 셈이다.

풍성 드워프로 말하자면 골격을 구성하는데 도가 튼 장인. 그의 몇몇 명작은 신조차도 두려워한다는 낯부끄러운 소문이 돌 정도다. 그런 그와 밤새도록 신나게 망치질을 해댔으니... 굴욕적이다 싶을정도로 온갖 요청을 다 들어준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다.

"그치만... 굳이 나한테 보조를 맡길 필요가 있나...?"

헬리아는 다 쓰러져가는 공방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대장장이.

그 업의 정점에 선 자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냥 짜증나는 일이다. 이 넓은 대륙, 그의 제자가 되고자 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자들이 수두룩하다고는 하는데, 헬리아로서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서 흘러가는 공정을 이해할 수 없다. 10단계 이상 수준이 다르다보니 영감의 노하우 따윈  써먹을 도리가 없다.

"이름이 뭐지? 모르니까 함부로 욕도 못하잖아."

맨날 영감이라고만 부르니.

알 필요도 없지만.

공방 꼴은 애써 무시하고(꽂혀있는 검만큼은 어떻게든 해야하는데.) 다시 블로그를 훑어본 결과 천만다행으로 납기가 빠듯한 주문은 없었다.

"그런데... 자기랑 한 번 해달리는 손님이 많아졌다 싶었어... 망할 풍선영감..."

했던 대사를 다른 느낌으로 한번 더.

서술 트릭이라는 것이 그렇다.

쓰는 입장에선 엄청 재미있고, 참신하다고 생각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속이 뻔하게 보이는데다가 식상한 것이 바로 서술 트릭...

결국 일방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그럼 하루의 마무리를 지어볼까?"

왠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줄곧 혼잣말이다.

왜 그럴까.

17살이라서 그런지도.

당장 눕고 싶지만 침대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 근래 상당히 바빠졌음에도, 그녀가 공방을 닫고나면 꼭 하는 일이다. 그녀의 손이 바빠졌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나북의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다가 이윽고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모험가가 되자!]

'모험가가 되자!' 페이지는 마나넷 상의 모험가 구인구직란이다.

헬리아는 인상을 팍 쓰며 자신의 게시물을 검색했다.


글쓴이 : 내멋대로 마법사

제목 : 마법사(견습 ᄒᄒ~) 드워프가 가족처럼 지낼 파티를 모집합니다. [오늘의 화제글!]

조회 수 : 1687


"천... 천육백!"

매일마다 글을 올렸으나, 오늘처럼 조회수가 높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겠지이. 드워프 마법사라는 문구를 보고 득달같이 읽어본 것인가. 헬리아는 기분나쁜 웃음을 지었다.


의견 148개.

[ 펜을 쥐기 전에 잠시~ '모험가가 되자!' 독자 여러분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며 의견을 달아주세요! ]

148개?

조금 많지 않나?

헬리아는 침을 삼켰다. 정신 바짝 차려, 헬리아. 일으키고 만거야. 자신이 게재한 글이...! 고착화된 모험가 세계에, 일대 파문을!


집나간 고양이 : 엄마 뒤짐?

싸늘.

흥분에 몸이 떨리는 것도 잠시. 헬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각오는 했지만 대망의 첫 의견이...

"네거티브는 흘려넘기도록 하자... 열 개중 아홉 개는 네거티브일거야..."

헬리아는 다음 의견으로 눈길을 돌렸다.

방구석 기마병 : 에미 뒤짐?

척추척만 도깨비 : 아빠 터짐?

꽈아악.

딴게 아니라 헬리아가 주먹을 쥐는 소리다. 기마병새끼건 도깨비새끼건 옆에 있다면 울 때까지, 아니 울어도 봐주지 않고 패버릴텐데. 이런 부분은 마나넷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참자... 익명성에 기대서 악의를 표출하는 놈들 따위..."

심호흡을 하는 헬리아. 실망하기는 이르다. 그녀 앞에는 아직 145개의 의견이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부자되세요 : 씌...불... 난장이... 썅... 너매... 이기가... 으데라고... 언넝... 쇳물이나... 끌이라...!

호루라기 매지션 : 드워프는 어떤 마법을 쓸 수 있죠? 참.고.로 마법은 재능이 전부인 세계입니다만? 저는 파이어볼트를 익히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보기에만 멋지다고 뛰어드는건... 무척 가.련.하.네.요. 비참한 광대같으니...

멍큥멍큥 : 위에 있는 놈 말은 무시해. 근데 혹시 여자임? 마법사용 미니스커트 입고 각잡힌 튼실 허벅지 드러내고 다니면 진심 죽이고 싶을듯...

너의 여름은 : 멍큥멍큥 // 어... 후...

촌철살인도 뭣도 아니고, 대검으로 몸을 싹뚝싹뚝 잘라버리는 의견 뿐이었다.

"우으으..."

더는 못보겠어.

흐엥.

헬리아는 탁자에 얼굴을 묻었다.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쳤다. 남들보다 빠르게 사회에서 인정 받았으나 17세. 아직 소녀(턱걸이).  감수성 풍부. 마나넷 배틀 경험 없음. 그러나 상대해야할 자들은 직업도, 특별히 할 일도 없어 하루 종일 마나넷 상에서 남을 헐뜯으며, 어떻게하면 남에게 효과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을지 탐구하는 어둠의 유열집단...!


따라서.

141개의 의견이 남은 시점에서, 포기!

"상대를 배려하기는 개뿔...! 모험가가 아니라 모함가들이잖아! 왜 계정 밴 안시키는거야?"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마나북을 덮는데, 읽지않으려고 해도 140번째 의견이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하이브리드 만화가 : 관심 있습니다.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헬리아는 덮으려던 마나북을 조신하게 다시 펼쳤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함정 아닐까?"

이미 오늘치 의욕은 전부 사용했다. 내일치 의욕을 끌어와야할 판이다. 만약 쪽지를 봤는데...! 함정이라면! 내일치 의욕까지 바닥나버린다. 그녀의 장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우선 헬리아는 [하이브리드 만화가]의 개인 정보를 페이지에 띄웠다.


[하이브리드 만화가]

개인정보.

가입일 : 228757일 째.

"엉...?"

처음에는 사이트 오류인가 싶었지만 개인정보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종족 : 엘프

인삿말 : 안녕하세요~ 초보 만화가 지망생입니다. 진로 땜에 엄마랑 자주 다퉈서 요즘 집 분위기가 별로 안좋네용 @_@ 일탈하고픈 분들은 스스럼없이 연락주세요~


"엉...........?"

엘프라면 가입일이 수백년 전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 물론 이상하긴한데,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인삿말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은 뭐지? 텍스트에서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아니... 아니... 나이랑 만화는 조금도 관련이 없지만..."

그래도.


그렇더라도...!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23만 번 보고도 아직 엄마하고 사는건가... 그보다 다툰다니, 엘프 엄마의 레임덕 아직 오지 않은건가...

"믿을 수 없는 정치수완이로군... 아니면 무시무시한 마마 의존성이거나..."

어느 쪽이건 엘프에 대한 선입견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더 알고 싶다. 엘프란 도대체 뭔지. 이 자는 뭐하는 엘프인지. 헬리아의 손은 자연스럽게 쪽지 보관함으로 가고 있었다.

"뭐... 뭐야, 진심인가? 이 엘프....?!"

흔한 리액션으로 경악하는 헬리아였다.



//


찰싹.

일어나 헬리아.

찰싹찰싹.

일어나 헬리아.

찰싹찰싹찰싹.

일어나...

"그갸아아아아아악!"

헬리아는 괴성을 지르며 침대에서 튀어나왔다. 이리도 지독히 헬리아를 깨울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뿐이다.


"내가... 내가 말했지? 그따위로 깨우면 내가 죽여버릴거라고 말했잖아?!"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으로 닌자처럼 착지한 헬리아가 이를 드러냈다.

아무리 대비해도, 아무리 위협해도 모자라다. 눈 앞에 선 상대는 그녀 인생 최대의 숙적. 사시사철 모히칸 스타일을 고집하는 망나니 드워프, 홀프림 L 휘스커였다.

"뭔 배짱으로 숙녀 홑몸으로 사는 곳에 침투한거지? 이제부터 내가 행사할 모든 폭력적인 언행은 전부 정당방위라고! 지하경찰서에 가면 그렇게 진술해!"

"어휴... 헬리아. 일어나자마자 기운도 좋구나. 귀가 쩌렁쩌렁하니까 조금 살살 말해."

홀프림은 커다란 코트에 양 손을 넣은 채로 차갑게 웃었다. 드워프인데도 수염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 뺨을 멋대로 때려놓고 무슨 소리야!"

"사랑하니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

홀프림은 못되먹은 발언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 어울리는 드워프였다.


"징글맞은건 여전하네... 아, 머리 아파. 지금 몇 시야?"

"오후 6시."

"흐음... 많이도 잤네."

"교묘하구나, 헬리아. 남일처럼 말하면 게으르다는 자각을 피할 수 있지."

"어머... 개열심히 산다고, 나."

헬리아는 머리칼을 뒤로 휙 넘기며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이 몇 일인지는 무서워서 물어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맞다.

그 엘프.

그 쪽지.

그 때, 기상천외한 내용을 읽고 있지나 둑터지듯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서 결국 침대에 꾸물꾸물 들어가서 결정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 엘프의 말, 어디까지 믿을... 음냐음냐'

결국 정하지 못했다...

헬리아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가렸다. 홀프림이 찾아왔다는건 고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홀프림은 자신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던지 꿰뚫고 있다. 기분 나쁘다. 무엇보다 드워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이 남자가 헬리아의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왔을 리가 없다.

"우선 거실... 네 작업장으로 나갈까? 네 말대로 여긴 소녀의 방이니까. 계속 서있기도 머쓱해."

홀프림이 문을 열었다.

"내가 언제? 숙녀의 방이랬지?"

오빠, 하고.

헬리아는 운명을 한탄하듯 덧붙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뭘하며 지내니?"

홀프림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악몽이 꾼 최악의 악몽같았던 공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공방이 저절로 청소를 시작했을리는 없으니 홀프림이 말끔하게 치워놓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뺨을 때려서 깨웠다... 뭐가 뭔지. 방심할 수 없는 드워프다. 아니면 그냥 정신병자일지도. 아무튼 조심해야한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보다시..."

"엄마랑 아빠는 건강하셔?"

"아빠는 어깨..."

"옷 제대로 안 입을거야?"

헬리아는 아직도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이다.

"왜? 왜? 왜애애? 하후훙! 혹시 성장한 여동생한테..."

"그럼 [모험가가 되자!]에 올렸던 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아까부터 뭔 소리야! 그렇게 잘났냐 너!"

헬리아는 아무거나 손에 잡힌 물건을 집어던졌다. 

이곳은 드워프의 공방. 어지간한건 전부 무겁고 뾰족하다. 적어도 던진 물건이 오빠의 눈알 하나정도는 채가길 기도했으나, 

척 하고.

장갑 낀 손으로 집게를 캐치하는 그녀의 오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한 표정이 굉장히 눈꼴시렸다.


"네가 올린 글을 봤어."

"내 글이라니?"

"닉네임 내멋대로 마법사."

"그, 그게 누군데?"

홀프림은 모히칸 헤어를 뒤로 쓸어넘겼다. 시작될 남매 대결에 앞서 한 숨 돌리려는듯이. 헬리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눈 앞의 드워프가 제아무리 추궁하더라도 잡아뗄 생각이었다.

"나도 간혹 들리거든. [모험가가 되자!]에는."

"그래? 그건 몰랐네. 오빠는 이제 딱히 모험가도 아니잖아?"

"새로운 조항을 입안할 때 참고하고 있어."

"참고? 참고라고 말했어? 드워프 대외 정책 괜찮은거야?"

"그 날도 이상한 글이 보이길래 기분내키는대로 의견을 달았지."

"이상한 글이라니..."

설마.

'근데 혹시 여자임? 마법사용 미니스커트 입고 각잡힌 튼실 허벅지 드러내고 다니면 진심 죽이고 싶을듯...'"

"멍큥멍큥이 너였냐아아아아-! 이 쓰레기! 드워프 말종! 수염도 안나는 반쪽 드워프! 제발...! 부탁이야, 제발 죽어-!"

공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던져대던(그녀의 오빠는 당연히 전부 잡아냈고) 헬리아의 눈에 모루가 들어왔다. 기합을 넣어 모루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번 더...!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허탈해진 헬리아는 그대로 풀썩 쓰러져서 엉엉 울었다.

"익명으로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악의를 표출하면 머리가 맑아져. 일하는데 도움이 되지."

"신님! 제발...! 비나이다... 제 오빠를... 가능한한 잔인하게 쳐죽여주세요...!"

힝힝.


"고개를 들라. 내멋대로 마법사."

당연히. 신님이 아니라 멀쩡히 살아있는 홀프림의 목소리였다. 헬리아는 홀프림을 이글이글 쏘아보았다.

"장난은 이쯤하고(도대체 어느 부분이.) 마법사.... 견습이지만 마법사라고 말했겠다. 거짓말은 아니었을테고."

"그... 그래! 진짜라고! 뭐, 내가 마법을 배웠다는데 오빠가 어쩔거야?"

"어쩌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니 넣을 수만 있다면 넣고 다닐.(헬리아는 몸을 떨었다.) 여동생의 성취잖아. 머리라도 쓰담듬어주고 싶어. 턱이라도 간질간질해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이해가 안돼. 드워프는 마법의 마 자도, 마법의 법 자도 모르는 퓨어 마나리스 종족. 어디서 어떻게 마법을 배운거야?"

침묵.

홀프림과 헬리아는 꽤 오랫동안 시선만 주고 받았다.

"...마."

"마?"

"...마나위키에서..."

충격 고백이었다.

"........"

그 홀프림조차 순간 말을 잃었고. 헬리아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빛이 나려고 했다.




4부작.

2화 끝.



이야~ 1편이 개념글에 갔네. 평은 없다시피한데도 @@. 주작 아니니까 비추준 애들은 책상 너무 치지는 말고.

이번 편은 루즈했으나, 다음편과 다담편은 아주 재미있을 예정. 무려 판타지 최강자 읍읍읍도 나올 예정이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