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지배하는 지저분한 골목. 창백한 LED 불빛이 엉킨 전선줄과 함께 흩어진다. 여인과 사내가 그 아래에 서 있다. 검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인은 항상 어둠만을 찾아 모습을 숨긴다. 허나 그것으로는 순간순간 드러나는 여인의 곡선을 숨길 수 없다. 그녀는 인간의 육체가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살아있는 한계였다.


그에 반해, 사내의 얼굴은 밋밋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여인의 찬란한 빛에 가려지는 바람에, 여인의 곁을 걷는 그의 얼굴은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남는 것은 평범한 얼굴과 차가운 무표정의 어렴풋한 흔적뿐이었다. 아무런 표식도 달려있지 않은 검은색 유니폼 파카 역시도 기억에는 도움이 안됐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의 허리에 감기듯 매달려 있는 녹색 방독면 주머니가 그것이었다.


“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어요.”


여인이 발랄하게 말했다.


 사내는 파카의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난도질당한 폐의 사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흐물거리는 비닐 팩의 옆구리를 힘 있게 때려주자 한 개비가 튀어나온다. 터보라이터는 힘차게 그 끝을 불태운다.


“이봐요, 듣고 있어요?”

“듣고 있습니다, 소영씨.”


사내는 담배를 문 채로 우물우물 말한다.


허연 연기와 불꽃의 파편이 골목 안을 채운다. 소영이라 불린 여인은 짜증으로 눈살을 찌푸린다.


“서울의 거리는 금연이에요. 아무리 이런 곳이라 할지라도.”


소영은 가슴 위로 팔짱을 끼며 몸을 홱 돌린다. 


길게 묶은 양갈래 머리가 화려하게 흔들린다. 사내는 연기를 다시 한 번 깊게 빨아들였다가 뱉어낸다.


“저도 담배꽁초가 인경의 종소리를 끌어들인다는 것쯤은 압니다. 하지만 서울 자체가 거대한 재떨이인데, 꽁초 하나가 간에 기별이나 가겠습니까.”


사내는 또 다시 우물우물 말한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실려 있지 않다. 소영은 그 얼굴을 보자 또 다시 짜증이 솟아올랐다. 더 이상 담배의 유혹을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한 개피를 받았다.


“라일락?”


소영은 라이터를 건네받으며 투덜거린다. 사내는 답하지 않는다. 소영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이래서, 공익들이랑은 일하기 싫었던 건데.”


아니나 다를까, 한 모금을 삼키자마자 참을 수 없는 기침으로 온몸이 전율한다.


“라일락이 500원 쌉니다. 향도 좋고요.”


사내는 느긋하게 말한다. 


“하여튼,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잠깐만 말 걸지 말아봐요.”


소영은 말없이 연기를 빨아들인다. 거칠고 지독해도 니코틴은 니코틴이었다. 먹이를 받은 뇌는 빠르게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샅샅이 훑는 소영의 눈에는 화살에 벌집이 된 전광판과 LG 실외기가 들어왔다. 그녀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리고 손톱 하나 정도 길이만큼을 단숨에 빨아들였다. 소영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다.


“이모네 고등어.”


소영이 말한다.


“이모네 고등어?”


그 뜬금없는 단어에,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소영은 담배를 버리며 벌떡 일어선다.


“이모네 고등어요. 서북 280 피트 지점이 느껴져요?”

“느껴집니다, 소영씨. 쥴리엣 포인트잖습니까.”

“따라와요.”


소영은 골목들을 돈다. 우로 한 번, 좌로 두 번, 악취와 어둠에게 빼앗긴 서울의 스프롤 사이를 자신 있게 걷는다. 그리고는 멈춰서고 위를 올려다본다. 사내는 작은 탄성을 내지른다. 소영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술에 머금는다. 두 남녀의 앞에는 길게 뻗은 골목이 있었다. 묘진당 소속의 교회 간판이 중심을 지키는 가운데, 한쪽 구석에는 ‘이모네집’의 현수막이 숨어있었다. 그 모든 것을 훑고 나자, 눈은 자연스럽게 저 멀리 건물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종로타워의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사내는 담배꽁초를 버렸다.


“도라지꽃 외부서버에 돌던 사진이로군요. 이제 기억납니다. 하지만 사진에는 쥴리엣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사진에는 합성의 흔적도 없었고요.”

“데이터에 알을 깠던 거예요, 김익명씨.”


소영이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그녀는 어느새 스마트폰에 그 사진을 띄워두었다.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뒤덮여있고, 간판에는 중국어가 쓰여 있었기에, 서울의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사진이 찍힌 장소가 인천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소영씨. 이곳은 보시다시피 묘진당의 교구잖습니까. 저는 저기 있는 이모네집에서 온 간고등어도...”


사내는 말을 잠시 끊고 숨을 고른다.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종로 3가에서, 묘진당의 요원이 납치해온 간고등어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이모네집에서 온, 간고등어도 만나본 적 있단 말입니다. 이곳은 묘진당의 교구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옛 한양의 거미들은 묘진당의 거리에 알을 깔 만큼 멍청하지 않습니다.”


사내는 사뭇 엄숙하게 말한다. 소영은 빨갛게 얼은 두 손을 입가에 모아 숨을 내쉰다. 허연 숨이 누런 형광등 빛에 뒤섞인다.


“만약 묘진당이 알을 까는 것을 허락했다면 어떨까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호접이 죽은 지금, 묘진당에게는 자원이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 이런 작은 교구 하나쯤은 내어줘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이런 작은 교구의 현황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들킬 가능성도 낮고요.”

“호접이 죽은 것이 확실합니까?”


사내가 날을 세워 답한다.


“그건-”

“아니잖습니까. 호접이 죽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아니, 아예 호접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꺼내지 마십시오. 최소한 저랑 있을 때는 그렇게 하십시오. 알겠습니까?”


사내가 느긋한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쏘아붙인다. 그리곤 말없이 방독면주머니를 연다. 그 안에는 세 개의 렌즈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야간투시경이 들어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얼굴에 뒤집어쓴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오뚜기 소면이 한 봉지 들려있다.


“국수는 왜 꺼내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직접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당신 정말 제 말 듣기는 하는 거예요?”


소영이 언성을 높인다. 사내는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삼성제 스마트워치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 모습에, 소영의 언성은 더욱 높아진다.


“정말로 묘진당에서 알을 까게 허락한 거라면 어쩌려고 그래요?”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내는 소영을 향해 웃는다. 그리곤 당당한 발걸음으로, 소영을 지나쳐 교회를 향해 간다. 사내의 등을 향해, 소영은 한 손을 뻗는다.


“이봐요, 김익명씨!‘


소영의 외침에, 사내는 잠시 스마트워치를 살핀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이제 나익명입니다.”


사내는 계단 위로 올라간다. 소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곤, 울먹이듯 중얼거린다.


“이래서 공익들하고 일하기 싫었던 건데.”


소영은 사내의 뒤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