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마스터링하면서 울컥한 뒤 똥글 하나 싸질러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좋은 추억들 역시 셀 수 없이 많았고,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추억에 대해서 쓴다.
PC들이 수치적인 면으로 성장하는 것을 따라가며 인카운터의 강도와 퍼즐을 조율하는 것은 마스터링의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러한 요소들보다 내게 더욱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은 플레이어들이 내가 만든 세계에서 영웅이 되었을 때라고 자신한다.
개인적으로 난 플레이어가 마스터를 감동시킬 비로소 그것을 이뤄낸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비장한 대사를 남발하거나 홀로 독백을 읊는 것이 아닌, 캠페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게 하거나, PC가 기존의 자신을 뛰어넘는 결정을 택했을 때에 마침내 일어났다.
(여담이지만 난 현재 북미의 작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이곳 역시 RPG를 즐기는 사람들은 nerd로 보지만, 활동인구가 한국에 비해 많고 다양하기도하고, 남들이 뭘하던 별로 개의치 않는 국민성 또한 내가 이 취미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게 해준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2013년에서 작년 말까지 AD&D 2판으로 진행했던 캠페인은 내게 정말로 많은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단 한 사람의 플레이어와 내가 끝마친 캠페인이었으나, 내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이다. 편의상 이 플레이어를 A라고 하겠다. (현재 내 던전월드 캠페인을 함께 준비중인 플레이어들은 일부 용어와 지명이 낯익을 수 있다)
난 보통 남성 플레이어들이 여성 PC를 플레이하는 것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었는데, 그들이 아무리 진지하게 플레이에 임한다고 해도 정말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즐긴다고 해도 오래 플레이를 하다보면 티가 나기에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A는 진실된 여성상과 여성들간의 우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해가며 플레이를 했고, 그의 생각들은 내 캠페인 내에서 현실이 되었다.
A의 PC는 에레라스 페거슨. 인간 여성 Thief였다.
에레라스는 그녀의 고향인 항구도시 애쉬번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를 아버지의 뱃일을 도와주는데 보냈다. 어부들은 열심히 아버지를 도와주는 그녀를 매우 귀여워했다.
그녀가 성장하여 자신의 작은 배 한 척을 갖게 되었을 때 무렵, 다크 엘프들의 음모로 인해 애쉬번에 대화재가 일어났다.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항구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며, 혼란과 비명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웠다. 에레라스는 아버지와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배에 실은 뒤 더 많은 이웃들을 구하기 위해 밧줄을 잘랐다. 하지만 밧줄을 자르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드로우들이 나타나 당황한 사람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드로우들의 끔찍한 전쟁기계는 항구를 벗어나려는 배들에게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드로우들이 긴 갈고리가 달린 사슬을 에레라스의 아버지와 아이들이 탄 배에 던졌고. 검은 갑옷을 입은 드로우들은 배 위에 올라타 그들의 날카로운 무기를 꺼내들었다.
에레라스는 배에 탄 아버지와 아이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도시의 외곽을 향해 달려나갔다. 우리의 첫 세션은 바로 이 때 시작되었다.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에레라스는 드로우의 공격을 받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알고 지내던 NPC인 드워프 파이터 스타웃암의 도움을 받아 도시의 외곽을 거쳐 서쪽 정문에 도달한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성벽을 넘어 탈출하기 위해서는 옆 건물의 부서진 창문에 걸쳐진 사다리가 필요했다. 에레라스가 힘겹게 사다리를 밖으로 꺼낼 동안, 건물 안을 살피던 스타웃암은 폭약을 발견하고 이를 챙긴다.
에레라스는 스타웃암과 사다리를 성벽에 올리려하지만, 멀리서 드로우와 드라이어들이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고, 스타웃암은 서둘러 사다리를 성벽에 올린 뒤 에레라스의 말을 거부하고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 그녀를 먼저 성벽 위로 올렸다. 성벽 위에서 에레라스는 스타웃암에게 빨리 오라고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화살이 날아와 스타웃암의 다리에 박혔고, 울음을 터뜨리는 에레라스를 뒤로하고 스타웃암은 너털웃음을 터뜨린 뒤 폭약에 불을 붙였다.
드로우들은 칼집에서 사악하게 뒤틀린 무기들을 꺼내들며 다가왔다. 스타웃암은 타오르는 폭약이 터지기 전 에레라스에게 드워프들 특유의 미소를 지은 뒤 마지막 힘을 다해 드로우들에게 달려가 그들과 자폭한다.
에레라스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성벽 위에서 계속 달렸고, 한 언덕과 성벽이 이어지자 언덕 위로 올라타 자신을 쫒아오던 한 고블린을 발길질로 차내고 언덕 너머의 숲으로 온 전력을 다해서 질주한다. 이윽고 탈진한 그녀는 다섯 명은 될법한 그림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정신을 잃었다.
이게 첫 세션이었다. 뒤이은 세션에서 에레라스는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한 나무로 이어진 벽으로 둘러싸인 방의 침대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방문을 열려고 다가가자, 흰 수염을 가진 한 노인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에레라스는 왜 노크를 하지 않냐며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노인은 얼룩진 로브에 손을 닦으며 이곳은 자신의 오두막이라 노크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짤막히 답한다.
자신을 다루비엘이라고 소개한 이 노인은, 에레라스가 애쉬번 사태에서 지금까지 구조된 유일한 생존자이며, 도시 전체가 드로우들이 남기고 간 알 수 없는 역병으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듣는다. 그녀는 분노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루비엘은 침묵한다. 방에 경비병들이 들어와 에레라스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방에서 나가려고 했고, 다루비엘이 마법으로 그녀를 침대에 붙들어 놓을 때까지 에레라스는 소란을 피웠다. 이 때 난 장난기가 돌아 한 경비병이 그녀의 행동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하자, A는 잠시 멍하게 생각하다가 이 NPC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NPC의 이름은 이안티르 실버킨이었다.
사실 그는 별다른 생각없이 내가 만든 NPC 중 하나로, 겨우 이름이 있을 뿐이었다. 원래 그의 목적은 애쉬번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이었지만, 다루비엘과 다른 경비병이 잠시 밖으로 나가자 에레라스는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이에 흥미를 느끼고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비병을 연기하는 대신에, 무언가 다른 캐릭터로써 그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난 A가 뭔가 생각이 있음을 파악하고 기존에 준비해두었던, Pelor를 섬기는 한 3레벨 팔라딘 캐릭터의 이름만 이안티르 실버킨으로 고치고, 곧바로 전투에서 A가 사용할 수 있도록 그에게 캐릭터 시트를 주었다.
2편에서 계속
내게 2편을 주어요 핫산!
갓양남!!
2편 가져와라 어서 - 플래티넘 스타즈
정석적인 스타트. 과연 이 캐릭터가 어떻게 영웅으로 각성할지...
영웅의 탄생 조건이 - PC가 PC 스스로와 PL 그리고 세계관의 한계를 초월하는 순간 (그리고 DM이 영웅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 - 이라는 것에 대해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저는 서너번에 걸친 캠페인을 하면서도 영웅 만들기에 전부 실패했기에 중간 과정이 정말 궁금하네요. 뭔가 배울게 많을듯...
예? 아다다 2판이요!?
ㄴㅇㅇ 그때까지만 해도 난 THAC0가 편했거든...
1:1이라 가능한 플레이군
ㄴ1:1이 아니어도 이와 같은 플레이가 가능하다. 4명의 PC와 진행했던 캠페인도 있거든. 그것도 상당히 재밌어서 나중에 시간나면 써볼려고
왜 난 오늘 올라온 이걸 오늘 읽은거지 ㅅㅂ... 개명도입부... 빨리 써주세요 현기증난단말이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