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월을 보자.

판정법 솔직히 좆도 없다. 왠만한 상황은 전부 위험돌파로 땡치고 넘어가기 일수니까. 그런데 정작 룰북 안에는 위험돌파 하나만 딸랑 있는게 아니라 직업별로 추적이니 불굴이니 하는게 잔뜩 써져있다.

따지고 보면 이리저리 퉁쳐서 위험돌파로 넘길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런데 굳이 이러저러한 액션을 만들어 둔 이유는, 그 액션들로 각 직업에 개성을 부여하고, 그 직업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지나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적당히 위험돌파로 들키지 않고 지나갈 것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한 캐릭터에게 자장가 액션이 있다면? 변장 액션이 있다면? 이 캐릭터의 플레이어는 단순히 위험돌파를 쓰는게 아니라 자기 액션을 쓰기 마련이다. 왜? 단순히 수치적으로 이득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 액션이 있기 때문에' 역시 큰 이유가 된다.

룰은 플레이어가 하고싶은 일을 할 때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플레이어가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그 자체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되기도 한다. 플레이어의 모호한 생각을 정립된 룰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내가 겁스의 겹쳐입기 룰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겁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룰을 문제삼을만큼 겁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겹쳐입기 룰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겹쳐입기라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어떤 발상에서 어떤 밸런스를 갖추고 만들어졌는지와는 상관없이, 겹쳐입기 룰은 겹쳐입기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만약 겹쳐입기가 겁스 속에서 꽤 효과적인 방어력 증강 방식이라면 (내적 개연성이 충족된다면), 이런 룰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법이나 다를게 없을테니까. 헌데 그렇지 않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겁스를 할 때 갑옷을 겹쳐입는 것은 멍청한 짓이고, 시피적으로 손해고, 가장 뛰어난 초인조차도 갑옷의 무게에 깔려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존재는 하지만 적용할 일이 없는 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룰이 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쓰일 일이 없는 룰을, 쓰일 수도 없게 페널티를 잔뜩 먹인 룰을 그대로 둘 이유는 무엇인가? 룰을 읽는 플레이어에게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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