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대전제는 대충 이렇다.


1)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 비슷하게, 초능력이나 마법, 기타 슈퍼 파워 보유. 다만 지나치게 파워가 강하면 세계관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적당선에서 커트 필요.

2)한복이니 태권도니 김치 같은, '높으신 분들이 생각할 법한 나름 한국적 요소'는 내가 오글거려서 배제하고프다

3)애초에 슈퍼 히어로 장르는 민간인도 강력한 무력(총)을 비교적 손쉽게 갖출 수 있고, 시민 개개인의 무장 및 자기 보호 권한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땅이 넓어서 보안관이나 기병대 같은 공인된 무력 조직이 산적이나 야생 짐승의 습격에 일일이 손 쓰기 힘드니까) 미국적 분위기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총기가 금지되어 있고 중앙 정부의 권력과 영향력이 강하며 땅도 좁은 한국에서는 자경단 개념으로서의 슈퍼 히어로가 존재하기 어렵다. 있더라도+정말로 정의롭다 해도 법적으로는 얄짤 없는 범죄자다. 한국에서는 공권력이 아닌 개인이 강력한 힘(굳이 물리적 파괴력이 아니어도)을 가져선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그런 걸 감수하고서라도 자기한테 특별한 힘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걸 볼 수 없다! 하는 무허가 슈퍼 히어로가 없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한국식 슈퍼 히어로로서 일단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일종의 특수 경찰로서 공무원 지위를 갖고 월급을 받으며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공식 조직에 속해서 일하는 것이 될 듯.

*공무원 슈퍼 히어로 이외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경비회사 직원. 하지만 이 쪽도 어디까지나 초인이기 전에 한국인으로서 국가의 통제 범위 하에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주민등록, 의료보험 등등. 

*초인 동맹이나 타이거&버니에 나오는 설정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대기업에 소속된 커미셜 히어로'는 존재하기 어려움. 한국은 리얼리티 쇼가 인기 없다. 다만 '존재하기 어렵다'는 거지 아예 있을 수 없다는 아니므로 어떻게 조건을 거냐에 따라서 실현 가능성도 있음.   

 

이하는 이미지를 잡기 위해서 짧게 써 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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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최윤석. 한국 출신의 초인이다. 난 20톤을 들어 올리는 괴력, 권총 탄환 정도는 웃으면서 튕겨낼 수 있고 저격용 라이플에 눈알을 맞아도 눈 앞에서 별이 번쩍하고 마는 수준의 내구력, 그리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날 수 있는 비행 능력이 있다. 그렇다, 난 초인이다.

 

지난 2012년의 마야 달력 세계 종말설은 그 당시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시기를 기점으로 세계 각지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들은 지금까지 존재가 규명되지 않았던 특별한 힘을 갖고 있었다. 괴력, 염동력, 텔레파시, 순간이동, 기타 등등. 다른 나라였으면 상황이 좀 달랐겠지만 한국 정부는 의무적으로 채취하게 되어 있는 지문과 출생 기록, 전 국민들에게 부여되는 주민 등록번호를 통해 그 시기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관리할 수 있었다. 정부는 반쯤 강제적으로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모아서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일하는 일종의 특수 경찰 조직을 창설했고, 그 조직은 ‘기관’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난 그 갓난아기들 중 하나였다.

물론 초인들로 이뤄진 특수 경찰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출 방법 따위는 없다. 지금은 21세기고, 인터넷과 화상 통신 기술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존재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차라리 이러한 특수 경찰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능력을 과장해서 선전하고는, 그 대신 구성원들의 신상 정보와 ‘기관’의 위치를 철저하게 숨기는 걸 선택했다.


한 낮, '기관'의 로비는 한산했다. 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잔을 꺼내려고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빈정대는 목소리가 내 귓전을 두들겼다.

 

“이거 이거, 초인은 커피 잔 정도는 손대지 않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안 그래, ‘투모로우 맨’?”

 

난 잔을 꺼내서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음모론을 소재로 하는 미국 영화에서 튀어 나온 듯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냉소를 머금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괴력과 내구력, 비행 능력을 가진 내가 ‘투모로우 맨’이라는 암호명을 갖고 있듯 텔레파시와 기억 조작 능력을 가진 그는 ‘맨 인 블랙’이라는 암호명을 갖고 있었다.

 

“염동력은 희귀한 능력이라는 것 알잖아. 최근에 초상능력 연구소에서 올라온 보고서 읽어 봤는데, 정신력으로 타인의 정신에 간섭하는 건 가능하지만 물질에 영향을 주는 건 훨씬 어렵다고 적혀 있던데, 박동팔.”

“...쪽팔리니까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그는 얼굴을 붉히며 버럭 성질을 냈다. 난 그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왜 일 안 하고 나와 있냐, 과장이 뭐라고 안 해?”

 

그는 다가와서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어차피 우리 진짜 임무는 따로 있잖아. 죽일 듯이 노려보긴 하던데, 뭐 여기서 우리 정체를 아는 건 소장뿐이니까. 그보다, 윗선에서 명령 내려왔어.”

 

난 새로 커피 한 잔을 뽑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엔 좀 보람이 있는 일이면 좋을 텐데. 내가 저번에 한 일은, 광화문에서 모여 있는 시위대를 퇴거시키는 임무였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날로 심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가문으로 대표되는 소득 상위 1%만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대출 한도 상한 규제 완화 등의 특례를 통해 더욱 배를 불렸다. 참다못한 서민들은 양극화 완화를 비롯한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10만 명이 넘게 모였지만 내가 그들 머리 위에서 맨 손으로 버스 한 대를 잡아 찢어 보이자 순식간에 겁에 질려 흩어졌고, 전경들에게 잡혀서는 차곡차곡 포개져 닭장차에 태워졌다.

 

“이번엔 좀 정상적인 임무야.”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최진석이란 새끼 알지? 우리랑 동갑이고, 물체 순간 이동 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 빌런. 그 새끼가 인천 공항에서 일본 나리타 항공 소속 여객기를 인질로 잡고는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바다 한 가운데로 수 백명이 탄 여객기를 텔레포트 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최진석.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요구 사항이 뭔데?”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운영하던 한국-중국-러시아 위안부 위령단체와, 위안부 후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 그리고 자기 부하들의 석방.”

“......”

“미친 놈, 그 문제 정리된 게 언제 일인데.... 아 물론 나도 한국인으로서 기분 더럽긴 한데 언제까지고 과거에 매여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냐. 좋으나 싫으나 일본은 이웃 나라고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도저히 척질 수 없다고. 얼른 준비해. ...근데 너 왜 그러냐?”

 

박동팔은 약간 눈치 없이 물었다. 그는 텔레파시 능력자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키울 만한 평범한 눈치나 감 같은 게 전혀 없었다. 그리고 까칠하고 빈정대기 좋아하는 태도와는 달리 같이 일하는 동료의 마음을 억지로 캐는 악취미도 없는 인간이었고. 난 억지로 웃어 보였다.

 

“별 거 아냐. 바로 출동 준비할게.”

“그래, 과장한테는 외근 나간다고 말해 둔다.”

 

난 짐을 꾸리고 박동팔과 나란히 건물을 나서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시골 면사무소일 뿐이고,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자신 바로 옆 책상에 초인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컴퓨터와 씨름하는 평범한 지방직 공무원들이다. 하지만 사실 이 건물은 ‘기관’ 소유의 언더커버였고, 나나 박동팔과 같은 초인들은 이런 관공서나 공기업에 분산되어서는 높으신 분의 입김으로 낙하산을 탄 하급 공무원이나 말단 직원으로 위장해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상황이 떨어지면 출동하게 되어 있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면사무소 앞에 펼쳐진 시골길과 논밭을 바라보았다.

 

“너, 뭔가 좀 이상하다?”

 

묵묵히 차를 몰던 박동팔이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어지간히도 눈치가 없는 박동팔이 이런 질문을 할 정도면 티가 많이 난 모양이다. 난 쓴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최진석은 내 쌍둥이 형이야. 어릴 때 헤어진.”

“!”

 

차가 덜컹, 했다. 난 차창을 좀 열고 바깥으로 펼쳐진 논밭의 풍경 위로 담배 연기를 훅 뿜어냈다.

 

“...걱정마라, 가족으로서의 정 따윈 없으니까. 내 입장도 잘 알고 있고. 허튼 짓 안 할 거다.”

“....어, 그래.”

 

내 이름은 최윤석. 한국 출신의 초인이다. 난 20톤을 들어 올리는 괴력, 권총 탄환 정도는 웃으면서 튕겨낼 수 있고 저격용 라이플에 눈알을 맞아도 눈 앞에서 별이 번쩍하고 마는 수준의 내구력, 그리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날 수 있는 비행 능력이 있다. 그렇다, 난 초인이다.

 

하지만 난 결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