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처에 그걸로 썻던 짤막글 좀 잘라옴




1.


신디케이트 전쟁이 그 전범 리트리니티 인터 인텔리전스 - 속칭 리트리니티의 해체로 끝나자 모두가 거대자본 아래 세계대전 없는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때 21세기 핑커톤 사무소를 자처하던 민간첩보기업은 순순히 사라지려니 뻗은 발이 너무 많았다.

시체에 꼬인 벌레들은 종류며 규모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레이캬비크 종전조약, 미국 주도의 승전 측 신디케이트 공조 체제는 두 달을 못 버텨 무너졌다. 공공의 적이 사라진 기존 재벌들은 서로 암약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데 리트리니티한테 뒤지지 않았다.

어느 새 신분증을 바꾼 리트리니티 잔당이 감옥 대신 갈 곳은 많았다.

해당 재벌 외 전쟁 생존자들마저 보고 배운 대로 폭력의 제한 없는 거래, 유혈과 화약의 천민자본주의에 충실했다. 가령 늦은 밤 폭풍을 뚫고 남중국해를 지나는 냉장선이 있었다. 키시모토 상회 주주들은 마산을 출발해 마카오로 가는 티타늄 관 안에 세관서류의 햄 깡통의 진실을 첩보로 전해받았다.

추측하면, 이 배에 리트리니티의 악명 높은 ‘M 용융제’가 있었다.

고작 찻잔 하나를 채울 액상 DNA 맥가이버 툴은 교토의 늙은 키시모토 회장 본인이 신디케이트 전쟁에 모든 것을 걸고 찾은 리트리니티제 AZ병기였다. 세슘 재 속의 서울 폐허로 보낸 증강 요원 한 대대가 정체 모를 한 명에 녹아내리는데 삼십 분.

평생 추구한 생명연장의 꿈이 사그라진 키시모토가 거품 물고 나가떨어지는데 삼 초. 상회 온 부서가 갈아엎였다.

방탄 정장의 기계 팔 사무라이들을 박살낸 뒤 짐을 빼갈 강도라니.

업계 최강 리트리니티 보스토크 킬 팀이 사라진 극동에 키시모토 본가 친위대한테 맞먹을 검은 손은 하나 밖에 없었다. 청해중공은 자타가 아는 인민해방군 물주로 부릴 패가 드글드글했다.

신디케이트 전쟁 때도 교토와 마카오는 서로 불상사가 많았다.

아무려면 공공의 적이 없는 지금 뭐가 나아졌을까.

쓱싹한 다음 누명 씌울 데도 없어 더 나빠졌다면 나빠졌다고 누가 됐던 장담한다. 더군다나 엉클 샘은 너덜너덜해진 레이캬비크 체제를 다시 세우려고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자, 이런 시기 세간 몰래 부리다가 잃은 병력 복수로 무작정 마카오를 친다?

천년만년 갈 것 같던 리트리니티의 몰락이 무슨 사고로 누구 눈에 나서 터졌더라?

결국 때 아닌 강도 문제에 키시모토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해골 열쇠 말고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래, 직접 간판 걸고 못할 짓은 외부 전문가를 불러온다. 냉동선이 이어도 남단을 막 지날 무렵, 함수 위로 스텔스 글라이더 한 대가 쌩하니 날아갔다.

일 초 지나 마른 그림자가 소리 없이 배 난간을 타고 올라서더니 저 너머 함교 온데군데를 눈대중했다.

그림자가 기중기의 그늘을 타고 함교 앞에 다다랐을 때, 선원 몇몇이 순찰조도 없는 적막한 갑판을 걱정했지만 다들 항해에 지쳐 별 반응은 없었다. 이미 함교 문은 열려 상층 복도로 소리 낮춘 발길이 사라져갔다. 그 소년, 사노는 지금 세상을 좋아했다. 물론 일은 염병 같았다.

리트리니티 시절 내내 인계철선을 피해 몸에 끼는 하수관로를 지나간다거나.

고주파철망을 맨손 갖고 찢다가 온 몸이 가뭄 맞은 논밭 마냥 찢겨나가거나.

합금 임플란트 박은 셰퍼드가 뼈에 이빨자국을 낸다거나 하는 사고를 내내 겪었다.


사노가 리트리니티 출신 증강 요원이 아니라면 진작 시신보관소 냉동고로 갔을 그런 사고들.


냉동고 하니 추운 게 그리 싫은 사노였다만 하필 맡은 일이 냉동선이라니 멋지기 그지 없었다. 리트리니티를 나가도 딱히 된 것은 없었다.

한 번은 멍청한 의뢰자가 그 전설적인 스네그로츠카가 했던 대로 CIA가 차린 포로수용소를 뚫어보라며 어거지 쓰던 때도 있었다.

돌아보니 어째 성공했는지 저도 아뜩하다.

적당한 차 밑에 붙어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상자 안에 몸을 접친 채로 하루를 버텨야 할 때마다 엄습하는 소화불량은 체첸 시절 겪은 그것보다 무시무시했다. 저 모든 역한 것들을 참고 일을 계속 할 이유라면 결국 자본주의의 논리였다.

전쟁 종결 이후 당시 날뛴 신디케이트 요원 ‘아수라’들은 거의 죽거나 스네그로츠카처럼 행방불명.

허나 재벌을 위해 미친 짓을 할 전문가들은 필요하다. 리트리니티의 아수라는 전쟁 말기 잠깐 자리를 뒀던 임시직이라도 없어서 못부른다. 그렇다면 리트리니티의 흥망성쇠를 죽 거친 1세대는? 즉, 사노는 전쟁 발발부터 살아남은 아수라가 무슨 대참사를 저지를지 아는 생존자였다. 예를 들어 저기 꺾인 복도 창쪽 경비 둘을 보자.

한 명이 깜깜한 갑판을 걱정하니 다른 한 명이 스네그로츠카의 이야기를 한다.

래 전 스네그로츠카는 청해중공 무장상선을 혼자 납치했더란다. 잠시 짜게 식더니 질타가 이어진다.

그 잘난 청해중공이 돈을 얼마나 줘서 다른 놈 걱정까지 해야 하냐며, 저 같은 미천한 놈은 주제 알고 지키라 한 데만 지키면 된다나. 문득 벼락이 치고 함교 복도 등이 모조리 폭발했다. 어둠 속에 뭔가 기어다니는 소음. 긴장한 경비들이 복도 곳곳을 두리번대고, 하나가 무전기를 꺼내 입에 댔다. 벼락이 쳤다. 무전기를 든 경비 그림자 뒤로 사노가 솟아올라 목을 잡고 90도로 꺾었다. 남은 한 명이 총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벼락이 쳤고, 아무도 없었다.

남은 하나가 덜덜거리며 총을 앞뒤로 겨눴지만 아무도 없었다.

벼락이 쳤다.

천장에 있던 것이 떨어졌다. 짧은 탄식이 이어졌고 주인 없는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2.

사람들은 흔히 악의 조직이 사라지면 세계평화가 올 거라 생각한다.

글쎄, 제3제국이 패망할 때도 소련이 해체될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지.

많은 경우 그나마 나와바리를 휘어잡던 범이 사라지면 늑대 여우 멧돼지 등등이 창궐한다.


2027년이 되도 변한 것은 없다.


소수의 무고한 사람들은 범이 있을 때가 낫다고 혀를 찬다.

예를 들면 지금 나 같은 사람.


"9시 쪽에 한 대 더 추가!!"

"옘병, 옘병, 옘병할!"

"침입자들은 항복하라!"

"대영제국의 명을 걸고, 좆까!"


인민해방군 표준 S급 반 생체 외골격 경비 한 개 중대, 분당 1700발의 액체금속탄을 뿜는 다족보행 무인포탑 두 대를 앞과 뒤에 둬 봐라.

어느 누가 좋았던 옛 시절 타령을 안 할까.


"존 할배, 보호막 얼마나 더 버텨요?"

"50%! 아 물론 저 큰 놈 나타나기 전에!"


내 팀은 그저 본사가 시킨 대로 싱가포르 어디어디의 물류창고에 조사만 왔을 뿐일 텐데.

여기 주인 되는 군산복합체께서 요새 유명한 도둑들을 잡겠다며 이를 갈았어도, 이건 좀 오버지.


"이런 건 계약서에 없었는데."

"청해중공 이 개새끼들…."


개틀링 코일건에 처음 걸린 신입의 비명이 폰을 울린 뒤, 홀로렌즈 전술도에 뜬 녹색 점은 처음 10개가 오 분 만에 2개로 압축되는 마법이 펼쳐졌다.

언제 녹아내릴지 모를 유리섬유 거품 뒤에 숨어 죽을 때만 기다리려니 기분 참 끝내준다.


아 물론 처음은 아닌 지라 어째 살 방법 생각 안 나는 것도 아냐.


내 첫 직장 때, 다시 말해 지금 세상을 만든 기업 마크 달고 뛸 때 저 티타늄 켄타우로스 시험작 한 대를 상대해봤다.

우리 고참 아재 운도 좋지, 몇 초만 참아주소.


"욘 할배, 저기 난간에 녹색 박스!"

"응? 시발 탄도 모자란데, 저게 뭐?"

"저게 재머에요! 쏴요!"

"진작 말하지 이 느릿느릿한 새끼!"

"정신 없다가 이제 생각났거든? 나는 댁들 같이 머리 칩 박은 변태 아냐!"

"시꺼."


욘 레드먼드, 늙은 애꾸 영국인이 쏜 이온화 10mm 유도권총탄이 가볍게 난간을 휩쓸었다.

구멍 뚫린 녹색 컨테이너가 온 몸에 불꽃을 튀긴 뒤, 옆에 뻗은 신입 놈의 태블릿을 냅다 주워 두들겼다.


"너 설마 그 못된 버릇 또 부릴 거냐?" 

"할배, 나중 본사 가서 이거 이야기 하지 마쇼."

"이 새끼 너 내가 매우 사랑하는 거 알지?"

"좀 요란할 지도 몰라서 귀 막고 엎어져 있어야 할 거유."


한때 세상을 좌지우지했던 든 범죄설계회사가 남긴 멋진 점은, 그간 훔쳐 되판 설계에 은근슬쩍 개수작 여러가지를 부려놓았다는 거지.

  

정말 멋진 점은 저기 청해중공 결전병기가 그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거.

제일 멋전 점은 내가 그 모든 사실을 아는 몇 안 남은 개새끼라는 거.


"청해중공은 진짜 자기 OS 개판인 거 눈치 못 하나. 뭐 나야 좋지."


네트워크 설정 변경, 리트리니티 비밀 통신 띄운 다음, 원격 설계 변경 개시.


"저, 저게 뭐야?"


갑자기 총을 내리더니 몸통에 연기 풀풀 내는 무인포탑들을 보며 저쪽 경비 절반이 낮게 소리쳤다.

설계 무단 변경 감지 오토 록, 너네 설명서 안 읽어봐서 저 물건 원래 있던 자체보안기능 모르지?

오래 전에 망한 회사가 이런 걸 아직 남겨놓은 사실을 알면 본사며 청해중공 말고 모두 난리 날 테니 태블릿은 냅다 파기.

그 다음 이미 대자로 땅과 붙은 욘 옆에 나도 착석하고, 다섯을 뒤로 센다.


"중국산 열화 카피 특제 기능, 발동."


무인포탑 탄창공급구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불꽃과 함께 몸통 째로 지붕을 뜯고 날아올랐다.

마치 지난 주 무리하다 터진 내 숙소 압력밥솥 뚜껑 같네.


"허."

"핫."


난데 없는 불꽃놀이 감상이 그리 감동적이셨는지 몇 초 동안 총성이 멎었다.


"저 자식들 뭔 짓을 한 거야!"

"뭐, 보시다시피."

"조져버리겠어!"

"후문 막아! 지원 보내!"


대당 몇 억 위안 하는 저희 회사 결전병기를 보안 실수로 날려먹은 게 그리 억울하셨나, 보다 더한 총알세례가 날아온다.


"야 임마, 차라리 저거 살려뒀어야지!"

"말은 누가 못해. 여튼 뒤쪽 다시 막히기 전에 빠져나가죠. 어디, 누가 먼저 엄호해드려?"


욘이 갑자기 팔짱 끼고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그럴 필요 없겠다."

"방금 폭발에 회로 고장 나셨어요?"


이 양반 정말 미치셨나, 싶은 순간 욘이 신호탄을 꺼내들었다.


"재머 없고, 천장도 없지?

"아직 퇴각지점 아니잖아요?"

"방금 본사 연락 됐다. 한 명 더 날아온다더라."

"지금 여기 올 게 누구……."


어 설마.


"우리 상관."


욘이 징글맞게 웃어보였다.


"겸 대량살상병기"


내 손이 나갈 새도 없이, 빨간 빛 덩어리가 기세 좋게 날아올랐다.

십 초도 안 지나 제트바이크 한 대가 창고 저 위를 스치더니 한 명이 뛰어내렸다.

깨지기 5초 남은 차폐 뒤에 숨어 욘과 내가 한숨을 쉴 동안 경비 절반이 죽어라 위로 산탄을 쐈다.

무슨 공수부대라 생각했다면 안 됐군.

산홍, 상공 100M를 낙하산도 없이 내려오며 신나게 웃는 검은 정장의 금발 아가씨다.


"야호!

"햐 저 여자 또 예열 켜고 왔네?"

"일단 싸우고, 이야기는 나중하겠다는 거지. 현장 요원 버릇 쉽게 버려?"


아가씨는 대공 십자포화도 의미 없이 둔중한 폭발과 함께 병력 한가운데로 때려박혔다.


"잠깐, 잠깐, 이거 뭐야? 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뭘 먹고 오신 건지 모르겠다만 시작부터 몇 놈은 미리 조진 다음 시작하시는군.

남은 병력 절반이 이내 욘과 나를 등지더니 저희 한가운데에 닥친 죽음을 경계했다.


"이 년 뭐야?"

"쏴! 쏴! 유탄수 어디 갔어!"

"오-예."

"미친, 총알 튕겨낸다!"


깨진 콘크리트 연막 속에 뭔가 부러지거나 터트리는 더러운 소리, 무시무시한 탄식이 피어났다.


솔직히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다고.


청해중공의 생체 외골격 병사 대대가 꽤나 밥값 해도, 우리 회사 주력 상품은 못 이기지.

싱가포르 화교 여러분께 한 발 늦게 소개드립니다.


"의체 특화? 설마 이 새끼들 슈라트 신디케이트?"


참 빨리 알아차리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욘이 안대 아래 전자망원경을 나 보라며 드러내더니 킬킬거렸다.

뭐 전속 감사 하나가, 것도 의체 0%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


"그나저나 저 원 우먼 아미 보고 있는 것도 질리네. 안 나갈라우?"

"너 먼저 가라, 난 전지 다 되서 좀 사려야겠다."

"그 놈의 눈깔 회사 가서 충전 좀 해요. 아니, 그냥 저기 계신 상사 보고 새 걸로 달라 그래!"

"쟤 성격 네가 더 잘 아니 대신 말 좀 해주시지?"

"그냥 총 주쇼."

"못된 새끼."


욘의 가변형 소총을 들고 지원 모드를 킨 뒤 다가오는 지원 대대를 조준했다.


"그나저나 오늘 이 창고 장사 다 했네." 


아직 우리 머리 위를 도는 제트바이크의 시야를 빌려 홀로렌즈에 조준을 고정, 근접 폭격 안전장치 해제, 명중 보정 대기.


몇 초 지나 자가추진 마이크로 플레쉐트의 비가 놈들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런 컨셉, 이런 시나리오들.


역시 겁스 아니면 소설용이냐?